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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당신이 두려운지, 행복한지…냄새만 맡아도 감정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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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시대의 비극 중 하나는 어디서나 마스크를 써야 하는 탓에 우리 주변의 냄새를 제대로 맡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아침 출근길 물씬 피어오르는 풀 내음을, 세이렌처럼 뚜벅이족을 유혹하는 길거리 음식 냄새를,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손을 꼭 잡고 같이 걸어가는 연인의 체취마저 우리는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나간다.

베티나 파우제의 책 '냄새의 심리학'에 비춰보면 비극성은 더욱 명료해진다. 책은 "그 사람에게선 어떤 냄새도 맡을 수 없어(Den kann ich nicht riechen)"라는 독일 관용구 하나를 든다. 어떤 사람을 도무지 좋아할 수 없을 때 쓰는 말로, 그만큼 삶에서 냄새의 중요성이 크다는 뜻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다양한 삶의 의미를 찾는 데 후각이 크게 도와준다며 이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파우제는 30여 년 동안 후각이 인간 인지와 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몰두해온 후각적 의사소통 분야 권위자다. 독일 킬대학에서 심리학 학사·석사 과정을 이수하고 동 대학원에서 '냄새와 정서의 관계'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부터 독일 뒤셀도르프대에서 생물·사회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생물·임상·사회 심리학 통합 과정을 이끌고 있다. 생물 심리학은 뇌파, 심장 박동, 근육 움직임, 피부 전도성 등을 측정해 인간의 행동·경험과 생물학적 메커니즘 간 관련성을 연구하는 반면, 사회 심리학은 타인의 존재 여부가 인간의 행동 패턴이나 경험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학문이다. 두 분야를 아울러 탐구하는 데 있어 이곳이 독보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책은 저자의 그간 연구 성과를 쉽게 풀어낸 첫 번째 대중 교양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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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저자는 인간이 두려움의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두려움이 냄새로 전염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연구로 저명하다. 책에 그 연구 결과가 자세히 소개돼 있다. 파우제는 실험을 위해 사람들의 겨드랑이 땀을 활용한다. 구두 졸업 시험을 앞둔 학생 등 극도로 두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 두 시간씩 겨드랑이 땀을 화장 솜에 흡수시켜 달라고 부탁한 다음 이를 갖고 연구를 했다. 그 결과 실험 참가자들이 두려움의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나빠지고, 두려움의 냄새로 인해 후퇴 행동을 위한 운동 체계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파리나 설치류처럼 바로 도망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든 수월하게 도피할 수 있도록 방어적 반사가 준비되는 것이다.

MRI를 통해 뇌 활동의 변화도 관찰됐다. 두려움으로 가득 찬 얼굴이나 두려워하는 몸짓을 볼 때 활성화된 뇌 영역이 두려움의 냄새를 맡았을 때도 활성화됐다. 특히 파우제는 뇌섬엽, 쐐기 앞 소엽, 띠 모양 피질 등 정서적 공감 상황에만 반응하는 뇌 영역도 두려움의 냄새에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이 결과를 '감정 전이'의 개념으로 해석한다. 두려운 장면을 보고 듣지 않아도, 단지 두려움의 냄새를 맡은 것만으로도 감정이 옮겨간다는 것이다. 파우제는 이 연구 결과에서 심리 치료 활용의 가능성도 본다. 사회적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두려움의 냄새에 강한 반응을 보이는데, 이 양을 조절해가면서 환자들을 두려움에 둔감하게 만드는 식이다.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도 연구에서 확인됐다. 놀랐을 때 나타나는 반응인 놀람 반사 연구 등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두려움의 냄새에 똑같은 반응을 보였지만, 두려움의 냄새가 풍기는 환경에서 표정을 관찰하는 지각 변화 연구에서는 여성의 반응만 확인됐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의 모니크 스메이츠 연구팀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보고된 점은 연구의 신빙성을 높인다.

네덜란드 여성과 중국 여성이 같은 반응을 보이는 등 문화적 차이도 없었다. 파우제는 여성들만 두려움에 관한 화학적 의사소통을 한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면서도, 여성에게 화학적 의사소통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한다. 이후 저자의 '공격적 냄새'에 대한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냄새를 두려움의 냄새가 아니라 공격적인 냄새로 바꿨을 때는 남성들의 뇌파 변화가 여성들보다 더 확연하게 나타났다.

냄새가 인간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대목도 흥미롭다. 저자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거나 내향적인 사람들보다 사교적인 사람들이 미약한 냄새까지 잘 맡는 등 냄새에 더 민감하다는 사실을 밝혀낸 미국과 중국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친구나 지인이 많은 사람들 뇌를 살펴보니 감정의 중추인 편도체와 사회적 뇌인 중간 전두엽 간 연결이 특히 좋았다고 한다. 이들 부위는 후각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기도 하다. 파우제는 이를 직관적인 문장으로 요약한다. "알고 보면 우리가 선택한 배우자나 회사 직원, 믿고 의지하는 친구들은 모두 좋은 냄새가 나는 사람들이다. 논리적인 이유라는 것은 그저 '만들어' 붙인 것이다. (중략) 한마디로 우리는 우리가 풍기는 냄새, 그 자체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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