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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사람의 일생 닮은 아카시아…늙어 버림 받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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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남대의 은퇴일기(15)



비 온 뒤 날씨가 화창하게 개었다.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마치자 아내는 우면산에 가자고 유혹한다. 신록이 멋스러움을 뽐내자 그 숲속을 거닐고 싶어진 모양이다.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휴일이라 산책 나오거나 둘레길을 걷는 주민들이 제법 있다.

대부분 가족이나 친구끼리 가벼운 차림으로 걷는다. 녹음이 꽉 우거져 깊은 산중에 들어온 느낌이다. 가까운 곳에 이런 멋진 산이 있는 데도 자주 이용하지 않아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비가 온 이후지만 야자 매트를 깔아 놓아 질퍽질퍽하지 않아 걷기가 좋다. 오래된 매트도 새것으로 교체하는 등 주민의 편의를 위해 신경 쓴 부분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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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짙어진 우면산 산책로. [사진 조남대]



까치와 비둘기도 나무 위를 오가며 지저귀고 숲 저 위쪽에서는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랫소리도 들린다. 다람쥐는 돌 틈 사이 낙엽 밑에 있다가 불쑥 튀어나와 깜짝 놀라게 한다. 산책로는 도로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자동차의 소음이 별로 들리지 않고 조용하다. 아내 말을 듣고 따라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가 주로 이야기하고 나는 듣는 편이다.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하자 자유로운 분위기로 인해 할 말이 많은 듯하다. 며칠 전 친구와 등산했을 때 오간 내용이나 자식 문제를 비롯해 집에서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속내를 드러낸다.

등산객 중에는 맨발로 걷는 사람도 있다. 양말과 신발로 꽉 막혀 숨도 쉬지 못하는 발에 맑은 공기와 흙과의 접촉을 통해 자극을 주기 때문에 시원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뾰쪽한 돌멩이나 나뭇가지를 밟아 다치지나 않을지 걱정되기도 한다. 중년의 어떤 사람은 친구와 같이 걸으며 젊었을 때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정상까지 뛰어갔다는 이야기를 한다. 아무리 젊었을 때라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전에는 가볍게 다녔던 코스였는데, 이제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라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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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에는 걸어다니기 편하게 야자 매트를 깔려 있다.



내려오는 길에 연세 지긋한 분이 올라오면서 산에 올 때는 스틱을 가지고 다니라고 이야기한다. 젊지도 않은 부부가 미끄러운 산길을 스틱도 없이 내려오니까 걱정된 모양이다. 아무 관계도 없는 스쳐 가는 등산객일 뿐인데도 충고를 해 주다니 고맙다. 다른 사람에게 간섭하다가 봉변을 당하기에 십상인 각박한 세상에 훈훈한 인심이 느껴졌다. 나는 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이웃에게 얼마나 해주며 지냈는지 되새겨 본다.

숲이 우거진 우면산은 소나무, 참나무와 아카시아가 대부분이다. 소나무는 재선충 예방 약제 주사를 놓고 일련 번호표를 붙여 놓았다. 참나무도 시들병이 든 것은 잘라 비닐로 꼭꼭 씌워 놓은 것도 있고, 확산 방지를 위해 밑동에 테이핑 작업을 해 놓은 것도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 나무는 서로 키재기를 하는 것처럼 10m 이상 시원하게 쭉 뻗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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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듬병 확산 방지를 위해 밑둥에 테이핑한 참나무.



아카시아를 보자 어릴 때 생각이 떠오른다. 60년대는 산의 낙엽을 긁거나 나뭇가지를 잘라 땔감으로 사용한 탓에 마을 주변의 산이 헐벗은 민둥산이었다. 이런 산에 사방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번식력과 성장 속도가 빠른 아카시아가 아주 적격이어서 씨를 수매하기도 했다. 궁핍했던 시절이라 아카시아 씨 채취는 좋은 돈벌이였다. 초등학교 다닐 때 식구들과 함께 아카시아 씨앗을 따서 부대에 담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그런 연유로 고향 마을 인근의 야산은 아카시아가 많다. 가시가 많아 다루기도 어려운 데다 목재로도 별 효용 가치가 없어 이제는 힘들게 베어내고 있다. 심지어는 다시는 싹이 돋아나지 못하게 베어낸 자리에 제초제를 발라 뿌리째 죽이기도 한다. 필요할 때는 씨앗까지 채취해 조림사업에 이용하더니 이제 농약을 발라 죽여 버리다니 이런 것을 두고 토사구팽(兎死拘烹)이라 했던가. 시절이 바뀌어 어쩔 수 없다지만 좀 쓸쓸하고 아카시아에는 미안한 생각이 든다.

사람의 일생도 이와 비슷한 점이 있지 않을까? 젊어서 가족을 부양할 때는 부모의 존재가 꼭 필요하고 소중하지만, 나이 들고 힘없는 어르신이 사회나 가족으로부터 푸대접받고 소외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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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곧게 쭉 자란 아카시아.



산책로가 서울 둘레길로 이어져 대부분이 완만한 길이지만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일련번호와 기증자의 이름이 붙여진 266개의 나무계단을 힘들게 올라간 다음 60여 개의 계단을 더 올라가면 정상의 소망탑에 다다른다. 비록 높이가 293m밖에 되지 않지만, 남산뿐 아니라 인왕산과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을 비롯하여 서울 북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비가 온 뒤 맑은 날이라 자태를 뽐내고 있는 모습이 또렷하게 보인다. 이렇게 선명하게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날은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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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날을 앞둔 우면산 중턱에 있는 대성사.



내려오는 길목에 있는 대성사에서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은은히 들려오는 스님의 독경과 목탁 소리에 심산에 들어온 듯 마음이 차분해진다.

마지막 코스인 예술의전당으로 내려와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마무리한다. 코로나가 심할 때는 카페도 닫혀 있어 매우 아쉬웠는데 조금 완화되어 커피를 마실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느긋하게 커피 향과 맛을 음미하며 게으름을 떨쳐 버리고 한 시간 반 동안 운동한 자신에게 장하다고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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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바로 본 서울 시내. 서울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남산을 비롯한 북쪽의 산들.



우면산은 도심과 가까이 있고 별로 높지 않아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있다. 녹음이 우거진 산책로를 걷노라면 자연 속에 푹 파묻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산책 후 커피 한잔 마시는 그 시간은 모든 것을 잊고 무아지경이 될 정도로 최고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 마스크를 벗고 자유롭게 산책하고 커피 마실 수 있다면 더 바람이 없을 텐데 말이다.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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