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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득 칼럼]고위공직자의 과태료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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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공직 후보자 청문회를 지켜보노라면 짜증과 울화의 포로가 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지난 주말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소감은 조금 달랐다. 4선의 국회의원과 행정안전부 장관을 역임한 그의 사람 됨됨이와 살아온 여정이 널리 알려진 덕인지 야당의 신상털이에서도 국민의 화병을 돋울 흠결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크고 작은 비리가 까발려지면서 욕설과 조롱의 집중 표적이 된 다른 장관 후보자들과 달리 김 후보자에 대한 인터넷상의 악성 댓글엔 “그래도 믿었는데...” “김부겸마저 그러면 어찌하나” 등 ‘꾸중반 연민반’의 내용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김 후보자의 인품과 능력, 청문회 결과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떠나 그를 주시하게 만든 대목은 ‘과태료’ 관련 내용이다. 보도에 따르면 김 후보자 부부는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와 자동차세를 체납해 총 32차례 차량을 압수당했다고 한다. 국회의원일 때 과태료를 내지 않아 총 3차례 압류를 당했고, 부인은 자동차세와 속도·주정차 위반 과태료를 제때 내지 않아 29차례나 차량이 압류됐다는 것이다.

행정질서벌인 과태료는 법규 위반 정도가 비교적 가벼워 간접적으로 행정 목적 달성에 장애를 줄 위험이 있는 단순 의무 태만에 대해 부과하는 금전적 제재다. 행정형벌인 벌금과 달리 형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부과받아도 전과가 되지 않는다. 다른 형벌과 누범 관계가 생기지도 않는다. 처벌 수단이 아니라 의무이행 확보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고, 부과된 액수의 돈만 내면 되니 방망이는 방망이되 ‘솜방망이’다. 지갑이 두툼하고 법규 위반을 두려워 않을 배짱만 있다면 당사자들이 두려워 않을 수도 있다.

김 후보자 부부가 밀린 과태료를 모두 낸데다 청문회에서도 “부끄럽다”면서 거듭 사과한 이상 법적으로, 행정적으로 더 시비를 걸 필요는 없다. 그러나 청문회에서 드러났듯 김 후보자의 과태료 건은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고위 공직자들의 흐트러진 준법정신과 비뚤어진 특권의식을 적나라하게 들춰냈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박범계 법무장관은 교통 위반 과태료 체납으로 차량 2대가 7번 압류됐고 박상기 전 법무장관도 자동차세와 과태료 체납으로 15차례 차량을 압류당했다. 법질서를 바로잡고 미래세대에게 귀감이 돼야 할 ‘훌륭한’ 어른들이 보인 추한 뒷모습이다. 과태료 체납은 사법부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흥구 대법관은 3차례, 민유숙 대법관 부부는 25차례나 차량을 압류당했다고 한다. 상습적인 교통법규 위반도 모자라 과태료 납부 의무까지 뭉갠 것이니 ‘몰염치’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다. 사소한 것이면 국가 행정 질서를 비웃고 조롱해도 되느냐는 원성이 빗발친다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과태료도 벌은 벌이다. 국가가 정한 우리 사회의 질서와 규칙을 어긴 데 대한 벌을 금전으로 대신하라는 것일 뿐이다. 때문에 보통의 국민은 속도 위반 과태료 통지서 한 장만 받아도 가슴이 철렁하고 “오늘 하루 벌이는 날아갔다”고 한숨짓기 일쑤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우리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능력 부분은 젖혀 놓고 흠결만 따지는 무안주기식 청문회가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공동체의 존립을 좀먹고 사회 분열을 부추길 수 있는 이런 흠들을 제쳐 놓고 능력만 앞세운다면 나라의 미래는 건강을 장담하기 어렵다. 고대 중국의 정치사상가 한비가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 이뤄지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로부터 이뤄진다”고 말했지만 2200년도 더 지난 옛날의 외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주제넘는 말참견일지 몰라도 큰일 할 우리나라 공직자들이 과태료 시비 따위로 얼굴에 흠집내는 일 따위는 더 없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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