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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노동자 김종수가 남긴 ‘역사적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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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구로, 1989: 김종수 평전

안재성 지음/삶창·1만4000원

“모든 사회계층이 우리 노동자의 투쟁을 우려하고, 반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6월항쟁으로 사회가 민주화되었다지만, 수천 개 민주노조가 만들어졌다지만, 자본과 권력의 역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음에도 언론은 노동자 이기주의가 나라 경제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몰아세우고, 많은 국민도 그렇게 생각해. 민주화를 요구하며 싸웠던 야당과 그 지지자들까지 그래.”

1989년, 구로공단에서 일하던 스물네 살 청년노동자 김종수는 이렇게 절망과 분노를 기록했다. 전북 장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못 마치고 대구 제빵공장, 서울 평화시장을 거치며 엄혹한 현실을 맞닥뜨린다. “생산원가 중에서 가장 손쉽게 깎아내릴 수 있는 게 임금”이며 “반장, 조장들의 고함과 욕설이 끊이지 않”는 시스템에 좌절한다. “일말의 인정도 사정도 들어갈 틈이 없는” “자본의 논리”와 “속성”을 깨닫고 전태일을 읽으며 자신의 내면에 쌓여가던 설움과 분노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에게 노동운동은 희망이었다. “나에게 노조는 수많은 이익단체 중 하나가 아니야. 농민들의 작목반이나 요식업 협회 같은 단순한 이권단체가 아니야. 인간으로 태어난 나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빛이요, 희망이야. 철망에 갇힌 민들레에게도 내리쬐어 샛노란 꽃을 피우는 따사로운 햇살이야.” 희망과 분노는 거대한 벽 앞에서 안타까운 희생으로 귀결되었다. “전태일이나 박영진 같은 열사들은 (…)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기에,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절실함은 점점 더 커지고, 결국은 불의에 항거해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르지.” 1989년 5월3일 오후 김종수는 ㈜서광 공장 운동장에서 제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인다.

지은이는 김종수가 남긴 ‘역사적 경험’을 강조한다. “오늘의 민주노총 소속 노조와 조합원들이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노동자 전체의 문제를 외면한다면, 조합원들의 투쟁을 밑바탕으로 하지 않고 산술적 협상에만 만족해한다면, 노동자들은 또다시 옛날로 돌아가게 되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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