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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사설] 세계가 반도체 인재에 사활, 우리는 교수 이기주의가 미래 발목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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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3일 ‘K-반도체 전략 보고대회’에서 기업들과 함께 국내에 세계 최대·최첨단 반도체 공급망을 만들겠다는 내용의 반도체 강국 실현 전략을 발표했다. 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이 한창이다. 그 핵심은 인재 양성이다.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이 앞장서 강력한 지원책을 밀어붙이고 있고 몇 년 전부터 반도체 굴기에 나선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5년 내 반도체 전사 50만명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대만이 TSMC 같은 기업을 배출한 것은 대만 최고의 인재들이 반도체 학과에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 반도체 기업들은 그동안 산업 현장에 투입할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석·박사 인력은 30% 이상 모자란다고 끊임없이 대책을 호소해 왔다. 이러고도 세계와 경쟁을 해온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반도체 학과 정원을 늘리지 못하는 것은 대학 정원 제한 등 겹겹 규제와 학과 이기주의로 정원을 손대기 어려운 구조 때문이다. 특정 학과 정원을 늘리려면 다른 과 정원을 줄여야 하는데 교수 등 구성원들이 격렬하게 저항한다.

이날 정부는 10년간 반도체 인력을 3만6000명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그 핵심인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은 150명 늘린다고 한다. 정말 이것을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인가. 반도체만이 아니다. 서울대는 지난 15년간 인공지능(AI) 등을 다루는 컴퓨터공학과 정원을 55명으로 동결했다. 다른 학과에서 한 명도 정원을 뺏기지 않겠다고 저항했기 때문이다. 올해 입시에서 겨우 15명 늘렸다. 반도체를 다루는 전기정보공학부도 상황이 비슷해 올해 겨우 정원을 5명 늘리는 데 그쳤다. 미국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 인원은 2008년 141명에서 2020년 745명으로 10여년 동안 5배로 급증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과 경제, 인간 생활 전체가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의 조직과 학과도 이에 맞게 기민하게 변화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생존이 걸린 문제다. 그런데 우리 대학은 기득권을 가진 교수들의 저항 때문에 변화를 선도하기는커녕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다. 대학은 교수 월급 주려고 있는 곳이 아니다. 관련 법을 개정해 대학 정원 제한 제도를 바꾸고 대학 내에서 정원 전환의 장애도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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