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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4] 신선이 된 소년의 퉁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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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인문 ‘목양취소’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30.8×41.0㎝, 간송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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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를 따라 버들 고목이 늘어서 있다. 주위로는 8마리의 양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널찍한 바위 위에 앉아 퉁소 부는 한 소년은 바로 ‘신선놀음’을 하고 있다. 고기잡이하는 아이와 숲 안에서 엎드린 채 쉬고 있는 소 한 마리가 한가로움을 더한다.

우리의 옛 산수화에는 소나무가 가장 흔하고 다음이 버들이다. 특히 강이나 호수가 포함된 그림에는 반드시 버들이 등장한다. 가느다란 가지가 땅에 닿을 듯 늘어지는 버들은 수양버들과 능수버들 중 하나다. 수양버들은 중국이 고향이고 능수버들은 우리 땅의 토박이다. 그러나 둘의 모양새는 너무 닮아 구분이 어렵다. 학술적인 쓰임이 아니라면 전문가도 구태여 구분하지 않는다. 옛 우리 그림 속의 늘어진 버들은 능수버들로 부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이 그림에서 능수버들 15그루는 굵기가 거의 같다. 윗부분을 그리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아마 키도 같았을 것이다. 고목나무에만 생기는 썩은 줄기가 나무마다 그려져 있으니 적어도 수십 년 되었다. 어느 날 홍수가 닥쳐 원래의 나무들은 모두 떠내려 가버렸다. 그 자리에 능수버들만 한꺼번에 터를 잡은 것이다. 그래서 굵기와 키 및 나이까지 모두 비슷하다.

버들은 새싹이 돋으면서 애벌레 모양의 연노랑 꽃이 필 때가 가장 예쁘다. 화면 가득히 은은한 연두색이 깔려 있지만 계절은 버들 꽃이 지고 잎이 다 피어난 늦봄이다. 따뜻한 봄볕이라 소년이 웃통을 벗어던지고 한가롭게 퉁소를 불 수 있다. 저고리는 어디 두었을까? 오른쪽 X자로 꼬인 고목나무 등걸 옆 대나무 통발 같은 고기잡이 기구 위에 얹혀 있다. 소년은 고기잡이를 끝내고 젖은 옷을 말리면서 한가로움을 만끽하는 것 같다. 그림의 배경에는 전체적으로 목동과 양떼, 연두색 능수버들이 어우러져 서정적이고 따스한 한편의 수채화를 보는 느낌이다. 양떼에 검은 얼룩이 진 것은 흰 물감으로 사용한 연분(鉛粉)이 오래되어 변색된 것이고 원래는 백양(白羊)이었다.

화면 왼쪽에는 화가의 친구인 간재 홍의영이 쓴 ‘네가 바로 황초평의 후신이 아닌가?’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황초평은 중국 진나라 때의 신선이다. 화가는 중국의 고사를 재해석하여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모습으로 승화시킨 듯하다. 조선 말기의 문인화가 이인문(1745~1824)의 목양취소(牧羊吹簫)다. ‘양을 치면서 퉁소를 분다’는 뜻이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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