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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대화3' 역사의 산증인 황석영 작가 "방북 왜 했냐고? 韓작가로 창피해서 갔다" [Oh!쎈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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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OSEN=김수형 기자] ‘대화의 희열3’에서 황석영 작가의 학창시절부터, 역사속 산증인으로 책을 펴냈던 얘기를 전한 가운데, 특히 방북에 대해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13일 방송된 KBS2TV 예능 ‘대화의 희열 시즌3'이 첫방송됐다.

이날 황석영은 과거 학창시절에 대해 “삶의 궤도에서 이탈했다”며 작가가 된다고 했을 때 친모 반응을 묻자 “작가가 된다기에 어머니가 못 보게하며 글을 태워버려, 그 전엔 책을 가까이하라며 권하셨던 분인데”라면서 글을 못 쓰게한 이유에 대해 “작가는 제 팔자를 남에게 내 주는 팔자, 지식인의 길이 위험해 보였던 것”이라 했다.

이후 지방 공사장을 방랑했다는 그는 “우연히 절에갔다가 스님이 되고싶었다, 실제로 머리밀고 마당을 청소하니, 스님이 누군가 왔다고 했고, 어머니가 날 찾아왔다”면서 “어머니를 따라가면 어머니 자식, 안 간다면 다신 찾아오지 말라고 했고, 결국 어머니를 보며 울면서 8개월만에 집으로 돌아갔다”며 비화를 전했다.

이후 작가 황석영으로 유명해진 후 친모가 인정했던 순간을 묻자 그는“신문에 연재된 ‘장길산’을 스크랩하시더라, 기뻤지만 어머니를 이긴게 미안하며 씁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황석영은 26세엔 베트남 전쟁에 6개월 파병됐던 기억을 떠올리며 “적들이 죽은 시체를 많이 봤다, 날이 밝으면 그 적나라한 광경이 보여, 부패한 시신에 짐승들도 들끓었다”면서 “아 귀신이 없구나 느껴, 하지만 꿈에 그런 장면들이 나타나, 그게 귀신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역사적, 사회적 트라우마가 개인에게 돌아갈 때, 그때 귀신이 발생하는 것, 귀신을 달리 말하면 트라우마다”고 했고, 유희열은 “결국 귀신이 왔다는게 소름끼친다”고 놀라워했다. 황석영은 “작가는 글을 쓰면 치유가 된다, 글을 쓰며 트라우마를 극복했다”면서 “글쓰기 목적은 상처를 직시하는 것, 구멍마개라더라”고 뜻을 전했다.

이어 황석영이 5.18의 참상을 알린 책을 소개하자, 유희열은 “매년 5월이면 광주에서 울려퍼’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언급, 황석영이 제작한 곡에 대한 배경을 물었다. 황석영은 “유족이 모여야 공론화 되는데, 유족 모임이 금지됐다”면서 “경조사는 가능했기에, 고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을 계기로 1982년 유족들이 처음으로 모였고, 5.18을 추모했다”거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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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하고나니 욕심이 생겨, 노래극으로 만들어 녹음했고, 전국에 뿌렸다”고 했고, 원본에는 개 짖는 소리가 들어있다고 했다. 황석영은 “개가 돌쇠”라며 “집에서 직접 녹음해, 가정식 카세트 녹음기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본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면 개소리를 봐야한다”고 비하인드를 전했다.

다시 재녹음할 수 없던 이유에 대해선 “그럴 틈이 없었다, 모이기도 힘들고 소문나선 안 되기에 빨리 해치우듯 녹음했다”면서 이후 민주주의의 상징곡이 됐고 대한민국을 넘어, 캄보디아, 태국, 홍콩 등 아시아 각지에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들에게 여전히 불리고 있음을 전했다.

유희열은 민주화의 상징적인 곡으로 불릴 줄 알았는지 묻자 그는 “몰랐다 ,순식간에 급속도로 전파됐다”면서 기독교를 통해 안전하게 전국에 전파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깜짝 놀란 것, 신촌의 한 술집에서 한 팀들이 그 노래를 불러, 시위대가 부르는 걸 보고 퍼졌다고 느꼈다”고 했다.

모두 “역시 걸작은 찰나에 만들어진다”고 하자 유희열은 “어쩌다 보니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넘어넘어’ 책이 없었다면 영화 ‘택시운전사’도 안 만들어졌을것”이라 굵직한 멘트를 던졌다. 1980년 5월 광주의 시민들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진 기록이라고.

유희열은 “‘임을 위한 행진곡’도 돌쇠가 짖던 그날 밤이 있었기에 우리는 5월의 광주를 아직도 기억한다”고 하자, 황석영도 “돌쇠 얘기하니 시큰해, 개 얘기 좋다,역사란 시큰한 일상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라면서 “한 구절마다 광주 시민의 일상이 맺혀있는 것, 아시아인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킨 이유”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황석영은 과거 북한에 대해 물었을 시, 남한에서의 사고방식과 생활로 답변을 제한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느끼게 됐다면서 “누군가 한 노인이 손을 번쩍 들어, 당신 같은 작가가 분단을 운명이라고 체념하면 조국의 통일을 바라는 노인네는 어떻게 살아가냐고 질문하더라, 그 순간 고개를 들을 수 엇을 정도로 창피했다”면서 “그때 ‘에이씨, 가버려야지’ 결심해, 작가라고 치욕스러웠다”며 대한민국 작가로 쪽팔려서 갔다고 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ssu0818@osen.co.kr

[사진] ‘대화의 희열3’ 방송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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