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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株소설]증시 조정이 정말 인플레 때문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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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I 서프라이즈'에 美 10년물 7bp↑·나스닥 2.67%↓

연초 이미 금리 뛴 채권시장, 이번엔 무덤덤

'매' 맞은 적 없는 주식시장은 혼비백산

"조정 본질, 11월 이후 조정 없는 것"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1분기 금융시장을 뒤흔든 인플레이션이란 악재가 또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1분기 큰 조정을 경험한 채권시장은 덤덤한 반면, 주식시장엔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이었나 봅니다. 두 시장의 차이를 잡아내는 건 생각보다 중요할 수 있습니다. 변동성이 확대된 주식시장에 대응하는 전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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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하던 ‘CPI 서프라이즈→금리 레벨업→성장주 조정’

12일(현지시간) 미국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는 인플레이션 논란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4.2% 오르면서 지난 2008년 9월 이후 13년 만에 최대 폭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의 예상치인 3.6%를 0.6%포인트나 상회한 수준이기도 합니다. 인플레이션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 실패와 함께 조기 긴축이란 우려를 키웁니다.

벤치마크로 쓰이는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7bp(1bp=0.01%포인트) 정도 상승해 1.69%까지 올랐습니다. 5년물 기대인플레이션(BEI)은 2.77%로 10년래 최고치에 도달했습니다. 다우 지수는 전장 대비 1.99%,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2.14%, 나스닥은 2.67% 하락했습니다. 13일 코스피도 1.49% 하락해 3161.66을 기록했습니다. 투자자들이 우려했던 ‘물가지표 예상치 상회→채권금리 레벨업→성장주 중심의 주식시장 조정’이란 시나리오가 작동한 것입니다.

채권시장과 주식시장에서 모두 매도가 나왔지만, 분위기는 좀 달라 보입니다. 주식시장에선 ‘이날 하루 정말 힘든 장이었다’는 푸념이 나오는 반면 채권시장은 차분합니다.

국내 한 운용사의 채권 매니저는 “우리나라 채권시장은 오전에 금리가 올라서 시작한 후 조금 안정되는 모습이다”라며 “아무래도 최근에 금리가 많이 올라 있었기 때문에 주식시장에 비해선 비교적 안정적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주식시장에 비해 선반영이 돼 있어 충격이 덜하다는 겁니다. 미국채 10년물은 연초 0.9%에서 4월 말 1.7%대 중반까지 약 80bp가 뛰었습니다. 그만큼 채권 매도가 짧은 기간 강하게 나온 것입니다. 반면 같은 기간 S&P는 12% 상승, 4000대를 넘기며 연일 사상 최고가를 썼습니다. 몇몇 높은 밸류에이션의 성장주만 조정됐다 뿐이지 ‘찐’조정이 없었던 겁니다.

변동성 지수로 봐도 뚜렷이 갈립니다. 뉴욕주식시장 변동성 지수(VIX·CBOE Volatility Index)는 금리가 1분기 고점을 치던 3월부터 4월 28에서 17대로 하락했습니다. 반면 채권시장 변동성 지수(MOVE·Merrill Lynch Option Volatility Estimate)는 연초 50선에서 70으로 치솟은 뒤 3월 내내 70선 위에 머물렀습니다. 반대로 CPI가 발표된 날 VIX는 전날 대비 무려 28.6% 올라 28.6으로 마감했고, MOVE는 58선을 유지했습니다. 주식시장은 이제야 본격적인 인플레이션 변동성을 흡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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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먼저 맞은 채권시장은 치열한 수 싸움 중

매를 먼저 맞은 채권시장은 이미 단단해져 있습니다. 지난달 내내 발표된 각종 경제지표가 양호해 인플레를 자극했음에도, 미국채 10년물은 1.6%대 안팎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였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지난 4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을 때 미국 장기물 금리는 되레 내렸고, 7일 4월 미국 고용 쇼크엔 오히려 올랐다는 점입니다. ‘정상’적이라면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긴축 우려엔 금리가 올라야 하고, 고용 회복을 위한 유동성 공급 유지란 해석엔 내려야 합니다. 단련된 채권시장이 한 수 앞을 넘어 두 수 앞을 내다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역(逆)의 역(逆)’이란 보고서에서 “스마트 금융시대, 정보의 대중화로 과거보다 빠른 가격 움직임은 상시화되고 있고,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바둑의 수 싸움처럼 몇 수 앞서 가는 금융시장을 보며 해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최근 시장 흐름의 시사점은 연준의 통화정책 기대가 실제 단기유동성을 제한하면 오히려 장기금리는 더 올라갈 이유가 없고 경기불안에 유동성을 공급하면 위험선호와 인플레 기대를 더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같은 해석은 이번 CPI 발표 이후 금리 추이에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전날 1.6% 초반에서 1.7% 가까이 오른 10년물 금리는 2bp가량 되돌림이 나타났습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상승해도 당분간은 전고점에서 약간 상회하는 정도인 1.8%대보다 높아지진 않을 걸로 예상합니다. 인플레이션이 어렵단 견해도 있습니다. △2분기 정점을 찍는 코로나19 기저효과 △수요 확인 안 된 공급 병목 현상으로 인한 물가 상승 △눌렸던 소비가 폭발하는 펜트업 수요(pent-up demand) 국면의 전망치 불확실성 등 때문입니다.

“주가 흔들림 본질, 조정다운 조정 없었기 때문”

물론 인플레이션 우려는 채권시장에 여전한 위협입니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2~3%의 물가상승률이 계속 유지된다고 했을 때 만약 1년에 쿠폰을 2% 정도 주는 채권이라면 인플레에 대한 메리트를 완전히 잃게 된다”며 “주식은 그나마 비용 인플레를 제품 가격 상승으로 전가할 수 있는 종목들을 골라낼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지만, 이미 발행된 채권들은 답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당장은 큰 매를 맞아본 적 없는 주식시장이 더 큰 걱정입니다. 다만 채권시장를 통해 힌트를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지금의 하락장이 채권시장 약세, 즉 금리 상승과는 큰 연관이 없다고 본다면 말입니다. 본질이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이라면 할인율 상승에만 치중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병목현상과 임금 인상 압력은 경제가 충분히 재개되면 완화된다”며 “결국 주가가 급격히 흔들린 본질적인 이유는 11월 이후 조정다운 조정이 없던 상황에서 기업이익 상향 모멘텀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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