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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고객이 칼 들이대도 꾹 참는다···금감원이 더 무서운 손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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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보험사에서 자동차 보험 보상업무를 하는 김모(35)씨는 지난해 8월 고객인 한모(38)씨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폭행은 30분간 이어졌고, 손목 골절상을 입었다. 한씨가 사고와 무관한 타이어 교체를 보험사가 처리해달라고 요구했는데 이를 거부했다는 게 폭행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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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사고와 관련한 보험금 산정 업무 등을 하는 손해보험사 직원들이 폭언과 폭행 등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금융위원회의 의뢰로 한국금융소비자보호재단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민원의 9%가량이 악성 민원이다. 이런 악성민원에 보험사 직원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지만, 단순 민원 접수 건수를 중심으로 한 금융감독원의 평가 체계 때문에 별다른 대응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금감원에 접수된 손보업계 관련 민원은 3만2124건이다. 금융업권 중에 가장 많다. 이중 보험금 산정이나 지급 관련 민원이 44.2%(1만4188건)를 차지한다. 보험금 처리 과정에서 고객의 폭행이나 폭언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지난 5일 울산지법은 교통사고 피해 처리를 요구한 대로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험회사를 찾아가 쇠파이프로 난동을 부린 20대 남성에게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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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업계 금융민원 건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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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보험사 직원은 폭행 등의 물리적 피해가 없으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다. 보상업무를 담당하는 한 보험사 직원은 "(금감원의 평가가) 접수 건수를 기준으로 이뤄지는 탓에 단순 문의와 블랙컨슈머 등도 민원건수에 포함돼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금감원 민원으로 가지 않게 물리적 폭행 등이 없다면 칼을 들고 찾아오거나 성희롱을 당해도 꾹 참는 게 다반사"라고 말했다.

매년 금감원은 민원건수를 토대로 금융사 평가를 한다. 보험업권은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 때 민원 발생 건수의 반영 비중(15%)이 가장 높다. 종합검사 대상을 선정할 때도 민원건수와 민원 증가율의 배점이 10점으로, 불완전 판매비율(5점)보다 높다. 금융사가 소비자의 민원에 적극적으로 응하자는 취지지만, 이처럼 고객의 무리한 요구까지 들어줘야 하는 역기능도 발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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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업계 민원유형별 비중.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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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소비자보호재단의 ‘금융 블랙컨슈머 사회적 부담 완화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 최종 보고서’에서도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는 “대민 및 민원 전담 근무자 상당수가 금감원의 민원발생평가 제도를 감정노동의 원인으로 지목했다”며 “금감원의 평가 결과가 해당 직원의 성과평가로 이어져 직접적인 불이익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당국도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악성 민원이나 중복민원 등은 금융사의 의견을 받아 사실 확인 등을 거쳐 평가 시 제외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악성 민원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금융사에 있는 데다 기준도 모호해 실제로 제외되는 경우도 드물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보험사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 민원평가 제도에 개선이 필요하다”며 “단순 문의 등은 민원 건수에서 빼고 악성 민원을 분류할 수 있는 업계 공통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민섭 한국금융소비자보호재단 연구위원은 “소수의 악성민원인에 대한 처리 비용 등은 결국 다수의 선량한 금융소비자에게 전가되는 만큼 민원관리시스템의 합리적 운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금융소비자보호재단 연구에 따르면 악성 민원 처리에 각 금융사는 연 평균 4억9266만원 사용한 것으로 추산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에 맞춰 민원평가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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