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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대규모 적자 재정·느린 Fed…美 40년 전 '인플레 트라우마'에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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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모습.[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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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의 뚜껑’이 열린 것일까.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4.2%)가 예상보다 크게 오르면서 인플레이션 공포가 한 발 더 다가왔다. 시장은 화들짝 놀랐다. 12일(현지시간)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1.695%까지 치솟았다.

전 세계 증시도 일제히 내려앉았다. 이날 미국 뉴욕증시에서 나스닥(-2.67%)은 지난 2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S&P500(-2.14%)과 다우지수(-1.99%)도 급락했다. 아시아 증시도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3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1.25% 하락했고, 일본 닛케이도 전날보다 2.49% 떨어진 채 장을 마감했다.



소비자물가 13년만 최고치에 시장 충격



사라진 듯한 인플레이션이 모습을 드러내며 미국에선 격론이 한창이다. 투자자들은 “이건 인플레이션이다. 곧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며 후폭풍에 대비해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오히려 차분하고 신중한 쪽은 중앙은행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회복으로 인한 일시적 상승일 뿐”이라며 시장을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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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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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은 인플레이션에 민감할까. 40여년 전의 경험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인플레이션 논쟁이 가열되는 이유로 뉴욕타임스(NYT)는 “1960~70년대 미국의 인플레이션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NYT는 “큰 정부의 대규모 재정 지출, 석유 위기, 느리게 움직이는 Fed, 금 태환 중단으로 인한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등으로 미국은 당시 두 자릿수 물가상승을 경험했다”고 보도했다.



美 70년대 두 자리 물가상승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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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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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는 1960년대 베트남 전쟁으로 돈이 많이 들자 달러를 마구 찍어냈다. 기축통화인 달러 가치가 급락하자 일부 국가는 Fed에 달러를 금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71년 달러를 금으로 바꾸는 금 태환 정지를 선언했다. 브레턴우즈 체제를 사실상 해체하며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지켰다.

하지만 1970년대에도 미국은 경기부양 정책을 고수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데도, Fed는 선제적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이후 중동발 오일쇼크가 터졌고, 미국은 74년과 79년 두 자릿수의 물가상승을 경험했다. 1980년에는 13.5%까지 물가가 치솟았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지난 3월 블룸버그TV에 “70~80년대의 대규모 인플레이션은 린든 B. 존슨 당시 대통령의 과도한 재정정책과 두 차례의 오일 쇼크, 아서 번즈 당시 Fed 의장의 ‘무책임한 통화정책’이 섞여 일어난 재앙”이라고 분석했다.

혼란은 ‘인플레 파이터’로 불리는 폴 볼커 Fed 의장이 연 20%대까지 기준금리를 끌어올린 뒤에야 끝났다. NYT는 “당시 Fed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주택·고용 시장은 막대한 대가를 치렀다”고 평가했다.



공화당 “바이든, 인플레에 눈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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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슈퍼마켓 계산대의 모습.[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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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험 속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은 달러 위상 약화와 급격한 긴축의 동의어로도 읽힌다. 공화당 등은 현 상황이 1970년대와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천문학적 재정지출을 하는데도 Fed가 아무 대응을 하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릭 스콧 공화당 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에 대해 침묵하고 귀를 닫는 가운데 시장의 두려움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4월 근원물가(근원 CPI) 상승률을 보면 두려움은 더 커진다.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4월 근원 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뛰었다. 1995년 12월 이후 최고치다. 전달과 비교하면 0.9%포인트 뛰었다. NYT에 따르면 이는 1982년 4월 이후 40여년 만에 가장 높다. 사라 하우스 웰스파고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 흐름이) Fed 예상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에도 Fed는 요지부동이다. 리처드 클라리다 Fed 부의장은 이날 “CPI 상승에 놀랐지만, 데이터의 하나일 뿐”이라며 “물가 상승은 기저효과 때문”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Fed의 입장에 동조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CPI 상승은 중고차 가격 상승 때문으로 주택 임대료와 의료비는 잠잠했다”며 “인플레이션의 지속적인 요인들은 약화했다”고 평가했다.



기저효과 빠진 여름 물가를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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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미국 댈러스의 한 식료품점에서 점원이 포장 닭고기를 진열하고 있다.[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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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플레이션 여부를 가르는 분기점은 올여름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의 충격으로 인한 기저효과를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마크로폴리시퍼스펙티브스의 로라 로즈너와버튼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4월 휘발유 가격은 1년 전보다 50% 상승했지만 3월과 비교하면 1.4% 오르는 데 그쳤다”며 “인플레이션 기저효과가 사라지는 건 여름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진욱 삼성증권 연구원도 “6월 이후에도 예상을 웃도는 물가 상승이 지속하면 Fed의 조기 출구전략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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