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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한강 대학생과 법최면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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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러]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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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용ㅣ전직 경찰·범죄학 박사

28년여간 현장에 투입되었던 모든 사건은 내 기억의 어느 곳에 기록되어 있다. 누군가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의 단서를 제공한다면 언제든지 펼쳐볼 수 있다. ‘기억의 단서를 제공하여 회상하는 것’이 바로 최면을 통한 기억회상이다. 법최면 수사는 기억이론, 인지이론(cognitive), 지각(perception)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적 이론을 응용한 수사기법이다. 기억의 인출 단서는 어떤 것이나 될 수 있지만 “레드 선”을 외치면 갑자기 정신을 잃고 피최면자의 모든 행동이 통제되는 일은 법최면 수사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경찰은 1999년부터 법최면 수사를 활용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당시 범죄심리과에서 경찰관 20여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였고 필자는 1기 교육을 수료하고 전문가 인증을 받아 여러 사건에 투입되어 법최면 수사를 활용했다. 한 예로, 강호순 사건 당시 강호순은 피해자의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하였는데, 이때 목격자들의 진술이 모두 달라 수사팀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당시 강호순과 어깨를 부딪쳤던 한 학생을 대상으로 필자가 법최면 수사를 하였더니 택시를 타고 갔다는 것을 회상해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주변에서 서너명의 버스 기사들이 모여 ‘그 사람’이 택시를 타고 가는 것을 보고 있다는 기억을 함께 인출하였다. 수사팀은 그 버스 기사들을 찾아서 택시를 타고 갔다는 제2, 제3의 목격 진술을 확보하였다. 최면을 통해 ‘택시’를 인출하였고 또 다른 목격자의 진술을 확보하여 수사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었다.

프로파일링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사건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과학적인 방법으로 재구성(crime scene reconstruction)하는 것이다. 밝혀진 사실(fact)과 목격자, 참고인의 진술에 의해 재구성된 시간순서(time line)도 포함된다.

범죄와 관련된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즉시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행동과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필자는 이 시간순서 분석을 통해 사건을 분석하고 범죄자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건’(event)에 대한 인간의 기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정확하지 않고, 피해자의 경우 충격과 공포로 인해 극히 부분적인 기억만 하는 경우가 많다. 목격자는 사건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면 관련된 기억은 매우 불안정하다. 특별한 기억의 인출 단서가 없는 한 정확한 기억을 인출하는 것은 어렵다. 이런 경우 법최면 수사가 활용되지만 그 방식으로 인출된 기억이 반드시 정확한 것은 아니다. 법정에서 증거능력을 인정받지도 않는다. 사건 수사를 하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이다. 법최면 수사관의 윤리강령이나 법최면 수사의 기준 또한 엄격하게 설정되어 있다. 용의자와 피의자로 지목된 경우 법최면 수사를 하지 않는다. 최면 상태로 잘 유도되지 않을뿐더러 의도적 왜곡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피해자의 경우 기억을 회상시켜 2차 피해를 주는 것은 절대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최근 한 대학생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관심이 뜨겁다. 진실 규명을 위해 경찰은 전후 맥락에 대한 증거물 확보와 분석 과정을 진행하고 있을 것이다. 사망한 학생과 함께 있던 친구를 상대로 법최면 수사도 진행했다고 한다. 앞서 언론은 법최면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너무 많은 추측과 지나친 추론은 수사를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물론, 수사진행 사항을 브리핑하지도 않고 속도감 있는 수사 진행도 보이지 않는 경찰이 미덥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수사를 진행하는 것은 경찰이다. 경찰 수사가 잘되도록 감시하면서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하루라도 빨리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음 깊이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에게 애도의 마음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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