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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바람을 피하지 말고, 바람 속에서 춤추는 법”…새로운 수궁가의 탄생, 국립창극단 신작 ‘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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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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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은 6월 2일부터 6일까지 판소리 수궁가를 재해석한 신작 창극 <귀토-토끼의 팔란>을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선보인다. 국립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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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싫소. 땅도 싫소. 삼재팔란 그만두고 수궁 찾아 갈라요.” 우리가 익히 알던 ‘수궁가’의 토끼는 별주부의 꾐에 속아 수궁에 가지만, 2021년 재창조된 토끼 ‘토자(兎子)’는 제 발로 바다로 향한다. 토끼에게도 육지의 삶은 너무 고되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아비를 잃고, 땅에서는 어미를 잃은 토자는 ‘여덟가지 고난’으로 가득한 육지를 벗어나 미지의 세계, 수궁을 꿈꾼다.

‘토끼의 팔란(八難)’에 주목한 새로운 수궁가가 6월 관객과 만난다. 국립창극단은 내달 2일부터 6일까지 신작 <귀토-토끼의 팔란>(이하 귀토)을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선보인다. 판소리 수궁가를 창극화한 작품으로, 국립창극단 전 단원을 포함해 총 53명이 출연하는 대형 창극이다. 국립창극단 최고 흥행작이라 할 수 있는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고선웅·한승석 콤비가 다시 한 번 연출과 음악으로 합을 맞춘다.

<귀토>는 수궁가 중에서도 토끼가 육지에서 겪는 갖은 고난과 재앙인 ‘삼재팔란(三災八難)’에 주목한다. 공연은 육지에 간을 두고 왔다는 꾀를 내어 살아 돌아온 토끼의 이야기에서 시작하는데, 원작에선 후반부에 해당하는 장면이다. 도입부터 원작과 완전히 다른 서사임을 예고하는 창극은 살아 돌아온 아버지 ‘토부(兎父)’를 독수리에 의해 잃고 천애고아가 된 토자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토자는 고난만이 가득한 산중생활을 벗어나 꿈꿔오던 미지의 세계인 수궁으로 떠나지만, 그곳에서도 죽음의 위기에 몰린다. 병에 걸린 용왕을 위해 토끼 간이 필요했던 수중 동물들은 토부를 놓친 뒤 제 발로 들어온 토자를 포획하는데, 위정자 용왕을 살리고 싶지 않은 병마사 주꾸미는 위기에 처한 토자를 도와주려 한다. 토자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자신의 터전인 육지로 돌아온다.

제목 <귀토>에는 ‘거북과 토끼’(龜兎)라는 의미와 함께 ‘살던 땅으로 돌아온다’(歸土)는 중의적 의미가 담겼다. 지금 우리가 딛고 선 이 세계에서 희망을 찾아보자는 것, “바람을 피할 것이 아니라, 바람 속에서 흔들리며 춤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극본과 연출을 맡은 고선웅이 밝힌 작품 의도다. 고 연출은 13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부터 팬데믹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 여기’는 나한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유쾌한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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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온라인으로 열린 국립창극단의 신작 <귀토-토끼의 팔란> 기자간담회가 끝난 뒤 제작진과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토녀’ 역의 민은경, ‘토자’ 역의 김준수, 유수정 예술감독, 고선웅 연출, ‘자라’ 역의 유태평양. 국립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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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토>는 변강쇠 타령을 재해석한 작품 <변강쇠 점 찍고 옹녀>(2014)와 흥보가를 반전한 창극 <흥보씨>(2017)에 이어 고 연출이 국립창극단과 협업한 세 번째 창극이다. 무거운 사회문제나 비극도 특유의 해학적 표현으로 풀어가는 고선웅의 연출과 해학미가 돋보이는 판소리 ‘수궁가’가 만났으니 웃음은 예고된 듯하다. 고 연출은 “창극은 흥분되는 작업”이라며 “뮤지컬이나 오페라와 달리 장단도 빨리 가자면 빠르게, 느리게 가자면 느리게 가는 그 탄력성이 정말 유쾌하다. 그저 같이 놀게 되는데 이게 연극이고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국립창극단은 1962년 창단 이후 창극의 기반이 되는 판소리 다섯 바탕(수궁가·심청가·적벽가·춘향가·흥보가)을 소재로 이를 현대화한 다양한 작품을 제작해 왔다. 올해는 왜 수궁가일까. 유수정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지난해 코로나 때문에 모두가 우울했는데 관객들이 한바탕 밝은 마음으로 재밌게 보고 속이 후련해지는 공연을 하자는 취지에서 수궁가를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승석 음악감독과 <귀토>를 공동 작창한 유 감독은 “이야기는 오늘날 시대상에 맞게 각색했지만 음악적으로는 전통 판소리에 뿌리를 뒀다”며 “주요 곡조를 살리면서도 장단은 원작과 달라 매우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라고 귀띔했다. 예를 들어 자라가 토끼를 등에 업고 용궁으로 향하며 부르는 ‘범피중류’ 대목의 경우 원작은 느린 진양조의 장중한 소리로 표현하지만, <귀토>에선 빠른 자진모리로 치환해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토끼의 설렘을 강조한다. 국악기로 편성된 15인조 연주단과 38명의 소리꾼이 신명난 기세로 극을 끌어간다.

이해랑연극상을 수상한 무대 디자이너 이태섭이 1500여개의 각목을 촘촘히 이어붙여 극장 전체를 언덕으로 탈바꿈 시킨다. ‘현대에 초대된 전통’이란 콘셉트로 무대 바닥엔 대형 LED 스크린을 설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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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녀’ 역의 소리꾼 민은경(왼쪽)과 ‘토자’ 역의 김준수. 국립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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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캐릭터인 토자와 자라는 국립창극단의 간판 스타인 소리꾼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각각 맡았다. 두 소리꾼은 지난 4월 국립창극단의 <절창> 무대를 통해 수궁가를 선보인 바 있다. 유태평양은 “기존 수궁가와 다른 <귀토>만의 해학적인 매력이 담긴 공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작에선 없는 새로운 캐릭터, 토자의 수궁행에 동행하는 토녀(兎女)는 민은경이 연기한다. 용왕을 비롯해 반골 기질이 있는 병마사 주꾸미, 형 집행관 전기뱀장어 등 특색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해 극의 활기를 불어넣을 예정이다.

<귀토>는 최근 리모델링으로 재단장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이 9월 정식 재개관을 앞두고 무대에 올리는 첫 번째 작품이다. 유 감독은 “리모델링 후 첫 무대라 조금 부담도 되지만, 창극단의 저력으로 열심히 연습해 좋은 공연을 보여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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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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