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얼굴이 화끈거려” 야당서도 “나라 망신 따로 없다”
미국을 방문 중인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11일(현지시간) 워싱턴DC 한 호텔에서 특파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일 방미한 황 전 대표는 12일 귀국길에 올랐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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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소속의 지자체장들이 있는 서울·부산·제주 등이라도 굳건한 한-미 동맹의 상징적 차원에서라도 백신 1000만회분에 대한 지원을 부탁했다” (황교안)
“아무리 대권행보가 급했다지만 미국까지 가서 국민의힘 단체장 있는 곳만 백신을 달라니요? 국민의힘 단체장이 있는 지역 국민만 국민입니까?”(장제원)
한미동맹 언급하며 서울·부산·제주 콕 찍은 황교안
문제의 발언은 황 전 대표가 지난 1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연 특파원 간담회에서 나왔습니다. 황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미 주요 업체 백신 1000만개를 한-미 동맹 혈맹 차원에서 대한민국 쪽에 전달해줄 것을 정·재계 및 각종 기관 등에 공식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황 전 대표는 “특히 국민의힘 소속의 지자체장들이 있는 서울·부산·제주 등이라도 굳건한 한-미 동맹의 상징적 차원에서라도 백신 1000만회분에 대한 지원을 부탁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과 부산은 지난달 7일 보궐선거에서 각각 국민의힘 오세훈, 박형준 후보가 당선됐고, 제주는 같은 당의 원희룡 도지사가 도정을 맡고 있습니다. 황 전 대표는 ‘굳건한 한-미 동맹의 상징적 차원’이라는 의미를 부여했지만, 야당이 단체장을 맡고 있는 세 지역만 콕 집어 백신 지원을 요청한 것이 한-미 동맹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여당은 황 전 대표의 발언이 ‘정치 재개를 위한 얕은수’라며 비판했습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3일 <문화방송>(MBC) 라디오에 나와 “대한민국을 구하겠다고 가신 분이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을 구하겠다는 거로 치환해서 말씀하신 것 같다”며 “황교안 전 대표가 정치를 재개하고 싶은가 보다. 쿨하게 하시면 되는데 미국에서까지 왜 그렇게 나라 망신을 시키는지 잘 모르겠다”고 비판했습니다.
김성주 민주당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57년생 황 총리께서 공항에서 출국할 때 가방을 짊어지고 가길래 백신 구하러 가는 것 아닌가 걱정했다”며 “5월13일부터 57년생도 백신을 예약받고 있으니 어서 돌아와 서둘러 예약하고 6월7일부터 접종받으시기 바란다”고 비꼬았습니다.
국민의힘도 부정적 분위기입니다. 장제원 의원은 12일 저녁 페이스북에 “나라 망신”이라며 황 전 대표를 저격했습니다. 장 의원은 “황 전 대표는 자중하길 바란다”며 “아무리 대권행보가 급했다지만, 미국까지 가서 국민의힘 단체장이 있는 서울, 부산 제주라도 백신을 달라니요? 국민의힘 단체장이 있는 지역 국민만 국민입니까?”라고 썼습니다. “나라 망신도 이런 망신이 어디 있습니까?” “백신까지도 편 가르기 도구로 이용하는 전직 총리의 어설픈 백신 정치가 국민들을 얼마나 짜증 나게 하고 있는지 깨닫기 바란다” “낯뜨겁다. 제발 이러지 좀 맙시다” 등의 날 선 표현으로 쏘아붙였습니다.
당내에선 같은 날 ‘백신 사절단’으로 미국에 간 박진·최형두 의원의 행보가 황 전 대표와 함께 엮여 비판을 받지 않을까 우려도 나옵니다. 비판이 잇따르자 황 전 대표는 13일 새벽 페이스북에 “우선 제 진심이 잘못 전달된 것 같아 황당하고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특유의 번지수 잘못 찾은 해명을 했습니다. 서울·부산·제주를 언급한 데 대해 “오로지 청와대, 정부, 여당을 독려하기 위한 수사였다”는 겁니다. 야당이 ‘백신 외교’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는데도 여당이 이를 거절하니 “더욱 적극적으로 협상을 하라고 압박을 하고자 몇 가지 예로 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황 전 대표 “정부에 적극적 협상 압박하려 든 예시에 불과”
그러면서 “만약 소극적으로 해서 협상을 그르치면, 다른 방법도 있을 수 있다는 압박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의 백신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자신이 직접 미국을 방문해 백신 협상에 물꼬를 터 정부를 압박한 것이며, 서울·제주·부산 지역 이름은 그 과정에서 나온 예시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황 전 대표는 “저는 ‘국민 편 가르기’ 생각은 전혀 없다. 장 의원님을 비롯해 이 일로 마음 상하신 분이 계시다면 사과드린다”며 “다급하고 절박한 마음에서 한 절규임을 이해해주시길 바란다”고 몸을 낮췄습니다.
그러나 장 의원은 황 전 대표의 해명에 “다행”이라면서도 “경솔한 언행이었다”며 쓴소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장 의원은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황 대표님의 모든 발언이나 행동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며 “해당 발언이 해명하신 것처럼 ‘다급하고 절박한 마음에서 한 절규’이거나 ‘문재인 정권에 대한 압박’이라고 느껴지기보다는 정치적·외교적 경솔함으로 비춰지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국민들께서 얼마나 공감하실지 모르겠다”고 지적했습니다.
국경과 시차를 넘나들며 이어진 황 전 대표와 장 의원의 설전은 장 의원의 쓴소리로 끝났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백신 접종이 절박한 국민들에게 황 전 대표의 실언은 오랫동안 남을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초부터 정계 복귀를 위해 몸풀기를 시작한 황 전 대표가 당심을 잡으려다 민심에 상처만 남겼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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