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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세계 최대 ‘K-반도체 벨트’ 조성…시스템 분야까지 따라잡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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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 경쟁, 반도체 ‘전략무기’로 떠올라

한국, 메모리 강하지만 시스템 반도체 취약

“업계 요청 대부분 수용” “용수, 전력 기반 지원 적절”


한겨레

삼성전자 평택공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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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3일 반도체 산업 지원 방안(K-반도체 전략)을 내놓은 배경에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각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이 깔렸다. 미·중 등 주요국은 자국 내 반도체 기술·제조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공급망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반도체가 ‘산업의 쌀’을 넘어 ‘전략무기’로 떠오르면서 국가 간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반도체 둘러싼 국가 간 각축전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 조사 행정명령을 내리고 국방수권법을 개정했다. 이 법은 자국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보조금, 연구·개발(R&D) 지원을 담은 것으로 올해 1월 발효됐다. 핵심은 반도체 생산 시설 구축 때 건당 최대 30억달러를 지원하는 대목이다. 지난 3월 말엔 반도체 제조시설에 500억달러(약56조5천억원)를 지원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중국은 ‘제조 2025’를 통해 반도체 내재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제재 이후 더 빨라진 자립 움직임이다. 중국의 정책은 반도체 기업의 공정 난이도에 따라 세제 혜택을 달리 적용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삼고 있다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전했다. 28나노미터(nm·10억분의 1m) 이하 반도체 공정 기반의 생산 시설에는 처음 10년, 65나노 이하엔 처음 5년 동안 기업소득세를 면제하는 식이다.

유럽연합(EU) 또한 10나노 이하 초미세공정 기반 반도체 생산 거점을 마련해 반도체 기업 투자금액의 20~40%가량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연합은 글로벌 반도체 점유율 20% 달성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이날 반도체 전략을 발표한 문승욱 산업부 장관이 “반도체 공급난이 심화하고, 반도체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고 진단한 것은 이런 사정을 일컫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에 이어 이달 또 삼성전자 등을 불러모아 ‘반도체 회의’를 열 예정인 것으로 알려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각국 정부의 요청에 화답하듯 대만의 티에스엠시(TSMC), 미국의 인텔 등 주요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고 있다. 티에스엠시는 올해부터 3년 동안 10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미국 내 6개 공장(팹) 신설에 360억달러, 중국 난징에 28억달러를 투입하는 내용이 여기에 포함돼 있다. 인텔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 진출을 위해 2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는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미국 엔비디아와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에이아르엠(ARM)을 비롯해 반도체 산업 내 주요 기업 간 인수·합병(M&A)도 활발하다. 작년 한 해 글로벌 반도체 인수·합병 추진 금액은 1050억달러를 웃돌아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고 산업부는 전했다.

메모리 중심 한국 반도체 생태계


한겨레

반도체 산업에 크게 기대고 있는 한국 경제 처지에서 대응에 나서도록 등 떠미는 환경이다. 우리나라 총수출에서 반도체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이른다. 국내 전체 산업 중 수출 1위를 차지하는 제1의 산업이기도 하다. 수출 1위 자리는 작년까지 9년 동안 이어졌다. 국내 경제의 버팀목이라는 평이 무색하지 않다. 반도체 산업의 국제적 위상도 높은 편이다. 한국은 20년 이상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메모리 분야 강국이라는 이면엔 약점이 얽혀 있다. 산업부는 “대규모 장치 산업인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수요와 공급 차이에 따라 2년 내외 주기로 등락이 반복돼 경기 변동에 불안정하다”고 분석한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슈퍼사이클(2018년 호황기) 시기에 매출 기준 세계 반도체 시장 1위에 올랐다가 메모리 가격 하락 뒤인 작년에 2위로 내려앉은 사실이 이런 사정을 잘 보여준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은 여전히 후발 주자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늘 지적돼온 바대로다. 팹리스(설계전문) 분야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2% 미만(2020년 1.5%)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세제·금융 지원, 인력 양성, 규제 완화 방안과 함께 ‘K-반도체 벨트’ 조성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 구축과 생태계 조성 방안을 이날 제시했다. 삼성전자 등 기업들이 올해 41조8천억원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510조원을 투자하고 정부는 이를 뒷받침해 세계 최대·최첨단 반도체 공급망을 갖춘다는 내용이다. 반도체 벨트는 판교와 기흥~화성~평택~온양의 서쪽, 이천~청주의 동쪽이 용인에서 연결되는 지역이다. 경기도 용인에 소·부·장 특화단지를 조성하고 반도체 공장과 세계 처음으로 연계한 테스트베드(시험평가시설)를 구축하기로 한 게 그 일환이다. 첨단 극자외선(EUV) 장비를 독점 공급하는 네덜란드 기업 에이에스엠엘(ASML)의 트레이닝 센터(교육 시설)를 유치하고, 판교를 한국형 팹리스 밸리(설계전문 단지)로 조성하는 내용도 여기에 들어있다. 벨트 안에 들어있는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8인치 파운드리 생산능력을 지금의 2배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 “첫 고강도 반도체 종합대책”


“이번엔 제대로 된 것 같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융합전자공학부)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정부의 방안에 긍정적 평가를 내놨다. 박 교수는 “과거의 반도체 관련 정부 대책은 사실상 별 게 없었다”며 “이번 방안으로 (반도체 투자 관련) 세금 공제 수준이 대만 수준까지 올라갔다”고 말했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업계 요청이 대부분 수용된 것 같다. 특히 대학 정원 확대를 포함한 인력 양성 부분은 파격적”이라고 말했다.

윤혁진 에스케이(SK)증권 연구원은 정부 지원 방안 중 용수, 전력 인프라(기반시설) 지원 방안에 주목해 “지금 시점에서 제일 필요하고 중요한 걸 해준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만의 가뭄, 미국의 정전 사태에서 봤듯 반도체 산업에서 용수와 전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 또한 용수, 전력 인프라 지원 대목을 높게 평가했다. 김 연구원은 “교육부, 환경부까지 포함해 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는 점에서 좀더 실효성 있고 제대로 된 정책 집행이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김영배 선임기자, 선담은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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