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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톺아보기]패륜범죄로 의미잃고 있는 '가정의 달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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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도우 경남대학교 법정대학 경찰학과 교수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 기념일이 있는 가정의 달 5월이다. 그러나 ‘가정의 달’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가족을 대상으로 한 패륜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용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식이 노부모를 죽이고, 남편의 외도를 참지 못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찾아가 흉기로 협박하고 폭행한다. 또한 교제 중인 여자 친구를 말대꾸한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거나, 아들을 만나러 온 전남편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제 걷기를 시작한 4살배기 아기를 살해한 양부모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패륜범죄들이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법적으로 인정되는 패륜범죄는 존속살해, 존속상해, 존속폭행 등과 같이 주로 ‘존속에 대하여 상식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폭력적 범죄행위’로 국한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통념상 부모가 자녀를 심하게 학대하거나 성폭행하는 등 ‘존속이 비속에 대해 범하는 패륜적 행위’도 패륜범죄에 포함시킨다. 뿐만 아니라, 앞서 소개한 사례와 같이 부부와 연인관계 등 ‘서로 존중되고 보호받아야할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용인되지 않는 폭력적 범죄행위’까지 패륜범죄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우리 사회의 패륜범죄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가족 간의 패륜범죄가 증가하게 된 주된 이유는 핵가족화, 1인 가구 증가와 같이 사회구조의 변화로 인해 전통적 가치관에서 강조하는 가족 공동체의 유대관계가 약화된 것에 있다. 즉, 연대나 유대감 등 가족을 이어주는 기본적 윤리나 가치관이 사라지면서 ‘피로 맺어진 가족’을 ‘남남’처럼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급기야 패륜범죄로까지 치닫게 되는 것이다.


가족간 패륜범죄의 심각성은 발생가능성이 다른 중범죄에 비해 높다는 점에 있다. 사회구조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배적 가치관으로 인하여 가족들은 유대감이 약화된 상태에서도 명절과 가족행사 등으로 인하여 빈번하게 마주치게 된다. 심지어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과 같이 같은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경우도 있다. 일상활동이론(routine activity theory)은 범죄자와 가해자가 같은 생활반경 안에서 마주치는 횟수와 시간이 증가할 때 범죄(피해)발생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신뢰가 무너지고 애정이 없는 상태에서 공동의 주거공간 안에 있는 가족이야말로 언제든지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호간에 가장 무서운 존재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가족간 패륜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여전히 미흡하다. 이는 우리 사회가 패륜범죄를 한 개인의 비도덕적이고 비이성적인 행위로만 바라보고 그 대안을 마련했다는 한계에서 비롯된다. 대부분의 패륜범죄는 우발적으로 발생하기 보다는 상당 기간 동안 가족 상호간의 사소한 범법행위들이 누적되면서 나타난다. 전통적인 가족구조에서는 사소한 범법행위는 가정내에서 통제할 수 있는 기능이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정의 통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을 때는 국가가 대신하여 통제해야 한다. 즉, 패륜범죄를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가족기능붕괴에서 비롯된 사회병리현상으로 인정하고 이에 대한 인식 전환과 가족기능 회복을 위한 범정부적 차원의 개입이 요구된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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