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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그날의 초인종 소리가 '비극의 시작'이었음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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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피해자는 피고인의 누추한 행색에 연민을 느껴 피고인을 집으로 들여 잘 곳을 제공하는 호의를 베풀었음에도 뚜렷한 이유 없이 피해자의 가슴, 옆구리, 등, 팔다리 등을 마구 찔러 무참히 살해했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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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10일 저녁 8시30분. 경기 성남시 분당구 A씨(33·여) 아파트에 낯익은 남성이 찾아왔다. 2019년 겨울 교제를 시작해 반년정도 만남을 이어오다 3개월 전 헤어진 남자친구 B씨(35)였다. B씨의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뉴스1에 따르면 B씨는 불법 안마시술소에서 팀장으로 일하다 경찰 단속에 걸린 까닭에 벌금 수배를 받고 도망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마땅한 일자리도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샤워도 하고 빨래도 좀 하면 안될까?" 수중에 돈 한 푼 없었던 B씨는 A씨에게 사정했다.

A씨는 전 남자친구의 누추한 행색에 마음이 약해졌다. B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채 그렇게 집으로 들였다. 빨래를 마친 B씨에게 옷이 마를 때까지 머물 수 있도록 옷방을 내줬다.

A씨의 배려로 편히 쉴 수 있게된 B씨는 이튿날 이른 아침 잠에서 깼고, 이때부터 다른 마음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곤 A씨가 잠을 자던 안방으로 향했다.

누군가 자신의 얼굴을 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A씨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고 "뭐하는 거냐"며 B씨를 밀어냈다.

기분이 나빠진 B씨는 A씨의 뺨을 때렸다. 화난 얼굴로 "다시 만나자"고 요구했다. 그럴 마음이 없었던 A씨는 거절했다. B씨의 손은 또 다시 A씨의 얼굴로 세차게 향했다. B씨는 급기야 부엌에서 흉기를 들고와 협박을 시작했다.

A씨는 B씨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하려 했고, B씨는 막아섰다. "사람 살려!" 겁에 질린 A씨는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

격분한 B씨는 흉기를 휘둘렀다. A씨가 흉기를 손으로 붙잡고 저지하려 했지만 B씨는 잔혹했다. 무려 20여차례에 걸쳐 A씨의 신체 곳곳에 치명상을 가했다. A씨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B씨는 A씨의 자동차 키와 휴대전화, 신용카드 등을 가지고 나와 도주를 시도했다. 도주 과정에 A씨의 신용카드를 자기 것인냥 사용했다.

경찰을 피해 전남 고흥군의 한 야산으로 향한 B씨는 그곳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내 추적에 나선 경찰에 체포되면서 목숨을 부지했다.

사건 심리를 맡은 1심 재판부는 B씨에게 범행의 잔혹성 등을 들어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재범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해 10년간의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피고인의 누추한 행색에 연민을 느껴 피고인을 집으로 들여 잘 곳을 제공하는 호의를 베풀었음에도 뚜렷한 이유 없이 피해자의 가슴, 옆구리, 등, 팔다리 등을 마구 찔러 무참히 살해했다"고 판시했다.

B씨는 그러나 재판부의 엄중한 선고를 인정하지 않았다. 극단선택까지 시도했던 그는 '선고된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했다. 항소심은 수원고법에서 진행되고 있다.

B씨는 과거에도 헤어진 여자친구를 찾아가 폭력을 행사해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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