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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집중감독 3개월 만에 또 산재사망…'무용지물' 정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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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3개월 만에 사망 산재 되풀이…지난해엔 감독 하루 만에 사망사고

지난 3월 포스코케미칼에선 감독 진행 도중 사망 산재 반복되기도

"사측에 미리 예고하는 감독 관행부터 뿌리 뽑아야"

감독 과정에 반드시 노조 참여해야…노사 공동 '위험성 평가' 제도 안착도 급선무

CBS노컷뉴스 김민재 기자

노컷뉴스

지난달 평택항 부두에서 화물 컨테이너 적재 작업을 하던 20대 근로자가 사고로 숨진 개방형 컨테이너. 대책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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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연이어 터져나온 가운데, 반복되는 중대재해를 예방하지 못하는 정부의 허술한 감독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사망산재→근로감독→사망산재 되풀이…죽음의 행진 멈추지 못하는 정부 감독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추락사고나 끼임사고 같은 후진적인 산재사고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며 강력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대책 마련의 책임을 맡은 고용노동부 안경덕 장관은 전날인 지난 10일, 평택항에서 일하다 숨진 고(故) 이선호(23)씨 사고에 대해 "유사작업 사업장을 긴급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정부의 감독 의지에 노동계는 차가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대재해 재발을 막기 위한 정부의 근로감독이 신뢰받지 못하는 이유는 지난 8일 하청업체 노동자가 일하다 추락해 숨졌던 현대중공업의 사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불과 3개월 전인 지난 2월 5일, 현대중공업에서 깔림 사고로 노동자가 목숨을 잃자 노동부가 집중점검을 실시했는데도 다시 산재 사망사고가 반복된 것이다.

지난해에는 4건의 사망 사고로 현대중공업에 특별근로감독이 진행됐는데, 감독이 종료된 지 하루 만에 노동자가 숨지기도 했다.

정부의 근로감독에도 마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중대재해가 반복된 것은 현대중공업만의 일이 아니다.

포스코케미칼에서는 지난 2월 하청노동자가 점검 작업 도중 멈춰있어야 할 설비가 갑자기 작동돼 끼임 사고로 숨졌고, 특별근로감독이 진행됐다.

그런데 감독이 한창 진행 중인 3월, 다시 노동자가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정비 작업 도중 갑자기 기계가 움직여 끼여서 숨졌다는 사망 원인까지 꼭 닮은 사고였다.

정부가 충실하게 근로감독을 진행해 사업장 안의 위험요인을 꼼꼼하게 짚어냈다면 적어도 감독 직후에는 유사한 재해가 일어날 가능성이 낮아야 할텐데, 이러한 기본적인 상식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박세민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지난 8일 노동자가 숨진 현대중공업에서 469명, 같은 날 사망사고가 있던 현대제철에서는 2007년 이후로 38명이 죽었고 그 때마다 감독이 실시됐다"며 "그럼에도 안전장치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사망사고가 일어났다면 대체 근로감독을 하면서 감독관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어 "예컨대 작업대를 설치하다 노동자가 떨어져 숨졌다고 작업대 설치 작업을 중지시켰는데, 해체 작업은 중지시키지 않아 다시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다"며 "수십, 수백 차례 감독하는데도 안전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아 한 사업장에서 해마다 10명 가까이 죽는 것은 노동부가 감독을 똑바로 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컷뉴스

그래픽=고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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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에 미리 알려주는 '사후약방문' 감독 이제 그만…사전 예고 없이 감독 진행해야

'유명무실' 근로감독의 첫 단추는 감독이 실시되기 전부터 꿰어진다.

통상 노동청에서 정기감독 뿐 아니라 수시감독, 특별감독을 실시할 때에도 감독을 시작하기 일주일에서 열흘 전, 늦어도 하루 전에는 사측에 이를 통보하는 일이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

미리 언질을 받은 사측이 감독 전에 관련 자료를 조작하거나, 소속 노동자나 하청업체에 입 맞추기를 강요하거나, 아예 대응 매뉴얼을 배포하는가 하면, 작업 현장의 위험 요인을 미리 치워놓은 사례가 부지기수다.

감독관들이 과중한 업무를 핑계로 작업 현장을 직접 살펴보는 대신, 사측이 미리 준비해 제공한 서류만 검토하는 '수박 겉 핥기' 감독이 이뤄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과건강 한인임 사무처장은 "김용균 참사 때도 감독관이 위험한 작업을 보지 못하도록 사측이 작업을 중지시키고, 관련 현장을 청소했다"며 "중대재해가 벌어진 뒤에 하는 사후감독보다 사전에 무작위로 사업장을 찾아가는 기획감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사무처장은 "일본에서는 감독관이 불시에 사업장에 찾아가 감독부터 실시하며 사업주가 오기를 기다린다"며 "우리도 무작위로 사업장을 선정해 강도 높은 감독을 벌이면 굳이 모든 사업장을 감독할 필요 없이 업계 스스로 예방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김기우 선임연구위원도 "무엇보다도 현장 실사가 제일 중요하다"며 "현장의 근로감독관 사이에 '이것만은 반드시 실사해야 한다'고 공감대가 형성됐는데도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적어도 이런 부분은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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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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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감독에 노동자 참여 의무화하라…노사 공동 '위험성 평가' 제도 정착해야

사업장마다 서로 다른 노동 환경을 감독관이 일일이 파악하기 어려운만큼, 현장 상황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들이 근로감독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제안은 중대재해가 벌어질 때마다 반복해서 나오는 얘기다.

현행 근로감독관집무규정에도 감독을 실시할 때 노조나 노동자 대표와 면담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조차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민주노동연구원 이승우 상임연구위원은 "근로감독관과 전문가는 겉으로 드러난 법 위반사항은 짚어내더라도, 직접 일하지 않기 때문에 현장의 다양한 위험을 모두 파악하기 어렵다"며 "실제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인식되지 않으면 겉돌기 식으로 조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조의 안전담당자가 참여해 감독 형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전체 위험 공정은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 의논해야 한다"며 "감독을 마친 뒤 조사 결과를 설명하는 '강평' 과정이나, 감독 결과에 따른 권고안의 실행 여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도 노동자가 참여하도록 감독 전후 전체 과정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도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근로감독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근본적으로 근로감독만 강화할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근로자 대표 제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할 문제"라면서 "두 제도가 함께 개선돼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상임연구위원은 "북유럽에는 지역 내에서 사업장을 관할해 위험요인을 확인하고, 정부 감독에 참여하는 일종의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있다"며 "노조 없는 사업장은 산별노조나 지역 내 다른 노조 안전담당자가 명예산업안전감독관으로서 반드시 감독에 관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단 근로감독 뿐 아니라, 평소에 산재 예방부터 개선조치, 사후 평가까지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는 '사업장 위험성 평가 제도'가 하루빨리 정착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상임연구위원은 "근로감독은 사후적 대처일 뿐, 사고를 예방하려면 노사의 사전 위험성 평가에 근거해 사업장을 개선하는 작업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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