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사설] 文, 숱한 엉터리 수사 지시 소송 걸리니 ‘당부’라며 책임 회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당시 법무부 차관이던 김오수 검찰총장 지명자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김학의·장자연·버닝썬 사건의 수사 지시에 대해 “구체적인 수사 지휘가 아니라 당부였다”는 내용의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통령의 무턱 댄 수사 지시로 피해를 입었다는 야당 의원의 5억원대 민사 소송에 직접 대응한 것이다. 쟁점인 ‘특정 사건 수사 지휘’를 부인하며 “당부”라는 말을 4번이나 썼다. 당부는 부탁이란 뜻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3개 사건에 대해 “(법무·행안부) 두 장관이 책임지고 사건의 실체를 규명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검경 지도부는 조직의 명운을 걸라”고도 했다. 명운을 걸라는 건 조직의 존폐와 수장 자리를 걸라는 것이다. “공소시효가 끝난 일은 사실을 가리라”는 말까지 했다. 공소시효를 사실상 무시하라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왕조 시대 ‘어명’처럼 된다. 정치적 겁박이나 다름없는 지시를 해놓고 어떻게 ‘당부’라는 궤변을 하나.

문 대통령의 지시 닷새 만에 정권 사냥개 검사들이 김학의 전 차관을 불법 출국 금지했다. 무혐의 처리된 사건 번호와 가짜 내사 번호를 붙이는 수법을 썼다. 김 전 차관은 처음 수사 대상이던 성폭행 의혹이 아닌 별건 수사로 수감됐다. 장자연 사건은 희대의 ‘후원금 사기극’만 남겼다. 버닝썬 사건에 연루된 경찰들도 줄줄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런 무리한 수사들은 대통령의 구체적 지시가 없었다면 검경이 애초 착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특정 사건 수사 지시는 이뿐만이 아니다. 2017년 “방산 비리 척결”을 지시했고, 박찬주 대장 부부의 공관병 ‘갑질 의혹’에 대해 “뿌리를 뽑으라”고 했다. 2018년엔 강원랜드 채용 비리 의혹 규명을 지시했다. 심지어 해외 순방 중에도 촛불집회 계엄령 문건을 독립수사단을 구성해 밝히라고도 했다. 그런데 방산 비리의 주요 혐의와 채용 비리에 연루된 야당 의원이 무죄를 받았다. ‘갑질 의혹’은 무혐의였고 계엄령 문건은 204명을 조사했지만 전원이 무혐의 또는 무죄가 됐다. 대통령이 밝히라고 했던 쿠데타 모의 증거는 없었다. 대통령 하명에 따라 무리하게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억울한 사람들이 목숨을 끊는 등 비극도 잇따랐다. 그래도 문 대통령은 사과 한마디가 없다. 사람으로서 이럴 수가 있나.

검찰청법에는 법무부 장관만이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을 지휘할 수 있게 돼 있다. 대통령이 개별 사건에 대해 수사 지시를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위법이다. 그 수사가 무혐의나 무죄로 끝날 경우 돈을 물어야 하는 민사 소송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대통령이라도 민사 소송 대상은 된다. 문 대통령이 이제 와서 숱한 수사 지시를 ‘당부’라고 하는 건 민사 책임을 모면해 보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대통령 답지 못하다.

[조선일보]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