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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과학을 읽다]우주쓰레기 감시 '올빼미', 한반도 하늘 24시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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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감시센터 가보니

국내 유일 우주환경감시기관

中 창정5B호 로켓 잔해 추락시 정확한 위치 알아내

우주 쓰레기, 소행성으로부터 국민 안전 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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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헌법 34조6항 -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난 10일 오후 대전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 본관 세종홀에서 마주친 헌법 문구다. 천문학, 즉 별자리와 우주를 연구하는 기관에서 웬 헌법 타령일까. 이런 의문은 곧 해소됐다. 천문연은 우주 쓰레기, 소행성 등 자칫 대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우주물체들을 실시간으로 감시·추적하고 경보를 울리는 국내 유일의 ‘우주환경감시기관’이기 때문이다. 지난 9일 20t에 달하는 중국 창정(長征)5B호 로켓 잔해가 추락하면서 전 세계가 불안에 떨 때 관측 및 분석을 통해 "한국에 떨어질 가능성은 없다"며 국민들을 안심시킨 것도 바로 천문연이다.


그중에서도 세종홀 3층에는 우주 낙하물을 추적, 감시하고 위험도를 예측하는 두뇌 역할을 맡은 ‘우주위험감시센터’가 있다. 센터 내 교실 만한 공간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에 국내외에서 수집되는 우주 관련 정보가 빼곡히 표시돼 있었다. 창정5B호 낙하로 며칠간 소란스러웠던 기색이 이날까지 남아 있었다. 가장 큰 스크린에는 현재 지구를 돌고 있는 위성들의 궤적과 위험 물질 여부가 표시돼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지구 인근을 오가는 소행성들의 현재 위치 및 궤적을 추적해 모니터링하는 장치가 부착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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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지키는 ‘올빼미’


스크린 한 가운데에 쓰여 있는 ‘5월10일 안전’이라는 녹색 글씨가 눈에 띄었다. 이날 현재 우주에서 지구, 특히 한반도를 위협하는 물질은 없다는 뜻이라는 게 안내한 천문연 관계자의 설명이다. 센터의 다른 한쪽 공간엔 한반도 하늘의 안전을 24시간 감시하는 ‘올빼미(OWL-Net)’를 위한 모니터룸이 마련돼 있었다. 물론 실제 동물은 아니다. OWL은 광학 광역 감시(Optical Wide Field Patrol)의 약자다. 천문연은 2015년부터 모로코, 몽골, 미국, 이스라엘, 한국 보현산 등 5곳에 직경 0.5m의 광시야 망원경을 설치해 한반도를 위협하는 우주 쓰레기, 소행성의 접근을 감시하고 있는데, 이곳이 바로 그 사령탑 역할을 하는 곳이다.


고속 마운트, 완전 개폐형 돔, 인클로저, 원격자동운영체계를 갖춰 세계에서 가장 최첨단 감시 장비로 손꼽힌다. 인공위성 물체의 추적 감시가 가능하며, 세계 최초로 관측계획부터 결과 분석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했다. 천문연은 이 장비들을 활용해 지난 9일 창정5B호의 추락 최종 궤적을 관측하고 분석, ‘한반도는 안전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얼마 전엔 1992년 한국인 손으로 처음 제작돼 발사된 후 수명을 다해 외롭게 홀로 궤도를 떠돌고 있는 우리별 1호를 처음으로 촬영해 국민들에게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천문연이 보유한 또 다른 무기는 ‘KMTNet(Korea Microlensing Telescope Network)’이다. 외계 행성 탐색을 위해 칠레,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3곳에 설치된 1.6m 크기 망원경, 광시야 CCD 카메라를 갖춘 시설이다. 본래 임무 외에 1년 중 135일을 지구 위협 소행성의 물리적 특성을 분석하는 데 쓴다. 천문연은 또 매달 국제소행성센터로부터 근지구 소행성 궤도력 정보를 받아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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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위협 ‘우주쓰레기’


이 센터가 설립돼 본격 가동된 2015년 이전 한국 정부는 우주로부터의 위협에 속수무책이었다. 기껏해야 외신을 보고 불안에 떨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통보를 듣고 안심하는 정도였다. 1978년과 1983년 잇따라 발생했던 옛 소련 원자력위성의 추락 때 자칫 ‘방사능 불벼락’을 맞을까 온 국민이 불안에 떨었던 때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우주로부터의 위협은 급증하고 있다. 민간 우주 개발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공 우주 물체, 즉 위성 잔해 등 우주 쓰레기의 추락 위험성도 커지고 있다. 1957년 스푸트니크1호 이후 2015년까지 발사된 인공위성은 7000기 정도였지만, 이후 미국 민간 우주 업체 스페이스X만 1300여기의 위성을 쐈고, 발사를 허가받은 물량만 1만2000기에 이른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우주인터넷·고속통신서비스(6G)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할 예정이어서 향후 수만 대의 위성이 추가로 하늘로 향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 위성들은 주로 저·중고도 위성으로, 더 이상의 발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빽빽해져 충돌하거나 고장나 추락하는 일이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상인 위성들도 일정기간 수명이 다한 뒤 기본적으로는 고도 1500㎞ 이상이 아닌 경우 언젠가는 지구로 추락하게 된다. 대부분 불에 타 없어지지만 1t 이상 위성은 20~30%의 물질이 남아 파편 형태로 분해돼 지상에 추락하면서 피해를 줄 수 있다. 현재 추적 가능한 10㎝ 이상의 우주 물체는 2019년 7월 현재 1만9740개, 1㎝ 이상의 소형 물체는 약 50만개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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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인근을 오가는 소행성들도 위협적이다. 직경 150m 이상만 지난해 말 현재 2155개가 발견됐고, 140m 이하는 아예 관측이 어려워 통계 내기도 힘들다. 대략 5년에 1개씩 정지위성궤도(약 3만5000㎞)보다 더 가까이 근접하는 소행성들이 나타나고 있다. 소행성은 작지만 10~50m만 되더라도 도시 하나를 없앨 수 있는 만큼 파괴력이 강력하다.


정부는 2014년 우주개발진흥법을 개정해 우주로부터의 위험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1월 천문연이 ‘우주환경감시기관’으로 지정돼 감시, 통보 등 주요 실무를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OWL-Net용 망원경이 성능상 한계로 직경 140m 이하 소행성을 포착하기 힘들다. 자동화된 시스템이라지만 고작 15명의 인원으로 우주 감시·통보 업무를 전담하는 것도 문제다. 천문연은 이에 우주 관측 능력을 제고하기 위해 2023년까지 감악산에 우주 잔해물 감시 레이더 시스템을 건설할 예정이다. 또 칠레에 직경 1.5m급 지구위협소행성 탐지 광학망원경도 2025년까지 만든다.


조중현 천문연 박사는 "2018년 중국의 우주정거장 텐궁1호가 추락할 때도 4일간 밤낮 없이 비상 근무한 적이 있는데, 마지막 단계에 한국을 지나치면서 한때 위험 지역에 포함돼 잔뜩 긴장했었다"면서 "과학자로서 예측한 것이 정확히 맞아 들어가고, 국민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생각을 가질 때가 가장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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