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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슬립온' 오래 신으면 아픈 발가락, 이유가 따로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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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은 발볼이 넓어서 유럽 신발은 잘 안 맞아요."

구두와 운동화의 장점만 살려 발을 미끄러지듯 쏙 집어넣어 신을 수 있는 슬립온. 끈을 매거나 벨크로를 붙였다 떼는 번거로움도 없고 운동화처럼 편안하지만 심플한 디자인으로 어떤 옷에도 잘 어울려 직장인도 학생도 한두 켤레씩 갖고 있다. 하지만 발의 편안함과는 별개로 오래 걸으면 엄지 발가락이 앞코에 닿아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슬립온을 즐겨신던 기자도 엄지 발가락 불편함을 느끼다 지난달 29일 부산광역시 남구의 '라스트(신발골)' 제작사인 성형상사를 찾았다. "손님은 발볼이 좁은 편이라 어떤 기성화를 신어도 편하게 잘 맞겠네요.” 백호정 대표는 인풋스캐너로 촬영한 기자의 발 모양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사이즈는 왼발 240D, 오른발 240C. 사이즈 옆에 기재된 C는 발볼이 좁은 편이란, D는 평균, E는 넓은 편을 뜻한다. 신발끈이 없는 슬립온을 신을 때마다 오래 걸으면 엄지 발가락이 앞코에 닿아 아팠던 이유를 드디어 알았다. ‘엄지 발가락이 커서’가 아니라, ‘발볼이 좁은 편이어서 발이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가기 때문’이었다니. 백 대표는 “발볼을 조여줄 끈이 있는 신발을 신으면 오래 편하게 걸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발볼도, 발바닥 모양도 다 달라



선형상사는 LS네트웍스의 프로스펙스가 지난해부터 진행 중인 사회공헌 캠페인 ‘잘됐으면 좋겠어 당신의 발걸음’을 위해 만드는 맞춤형 신발의 첫 작업이 이뤄지는 곳이다. 인풋스캐너에 발을 집어넣으면 내부의 카메라 8대가 촬영한 발 모양대로 강화 플라스틱을 깎아 ‘라스트’를 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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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펙스의 맞춤 신발 제작 과정. 지난해 시작한 사회공헌 캠페인 '잘됐으면 좋겠어 당신의 발걸음'을 통해 110명이 '나만의 신발'을 갖게 됐다. 사진 LS네트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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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모양에 딱 맞는 신발틀을 만든 후에는 발에 맞는 ‘인솔’(깔창)을 제작한다. 사람마다 걷는 자세와 발걸음이 달라 충격을 분산해주는 인솔의 형태도 각각 다르다. 맞춤형 인솔은 자체 개발한 아치스캐너를 통해 부산 사상구의 ㈜영창에코가 만든다. 두 발로 서 있는 자세, 한 쪽 발을 ‘ㄱ’자 모양으로 들어올려 약 5초간 정지한 상태를 각각 촬영해 걸을 때 발바닥 모양이 어떻게 달라지를 측정한다.

기자의 발바닥 아치는 오른발(30.2㎜)이 왼발보다 약 10㎜ 높았고, 걸을 때 아치 변화율은 왼발(66.0%)이 오른발(49.7%)보다 컸다. 오른발을 들어 올렸을 때 왼발 아치가 상대적으로 더 불안정하다는 의미다. “오후가 되면 왼발이 더 피곤해진다”는 진단이 나왔다. 피로도를 줄이려면 왼발 인솔에 공기를 더 많이 담으면 된다. 영창에코가 개발한 인솔에는 2개의 에어백이 있다. 걸을 때 뒤꿈치 쪽 에어백에 가해지는 압력만큼 아치 쪽 에어백이 부풀어서 아치를 받쳐줘 충격을 분산해준다.



왕발, 부채꼴 발도 ‘나만의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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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펙스가 전국 10개 매장에서 사용하는 ‘스마트핏 스캐너’. 사진 LS네트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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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와 인솔이 결정되면 본격적인 제화 작업을 시작한다. 프로스펙스가 운동화 신제품을 출시하기 전 샘플을 제작하는 부산 LS네트웍스 본사의 시작(試作)실에서 진행한다. 인풋스캐너와 아치스캐너의 데이터에 따라 신발의 각 부분(패턴)을 그려 자르고 재봉하면 밑바닥이 없는 ‘어퍼 재봉본’이 되고, 여기에 인솔 등 바닥을 붙이면 신발이 완성된다. 대량 제작하는 기성화도 이렇게 사람이 직접 일일이 작업한다.

말단비대증(손·발·턱 등 신체 말단이 비대해지는 만성질환)의 영향으로 ‘왕발’이 돼 한겨울에도 슬리퍼만 신던 30대 남성, 발볼이 넓은 부채꼴 모양의 발 때문에 여성화는 신어보지도 못하고 큰 사이즈를 신어야 했던 50대 여성, 족부 미형성증(선천적인 발가락 일부 미형성)으로 일반 신발을 신고선 제대로 걷기 어려운 30대 남성…. 제각각의 사연을 가진 110명이 이 캠페인을 통해 ‘나만을 위한 신발’을 신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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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펙스는 이런 과정을 축약한 ‘스마트 핏’을 최근 시작했다. 전국 10개 거점매장의 스마트 핏 스테이션에서 발 모양을 측정해 기성화 중 가장 적합한 모델을 추천하거나 맞춤형 신발을 제작하는 서비스다. 공세진 프로스펙스 R&D 센터장은 “같은 사이즈라도 브랜드나 제품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고, 각자의 발 모양도 다르기 때문에 딱 맞는 신발을 찾기는 사실 어렵다”며 “스마트 핏 상용화를 통해 많은 사람이 건강하게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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