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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KTX 타고 가는 ‘80년 시간여행’…‘레트로 여행지’ 영주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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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경북 영주에는 관사골이라는 동네가 있다. 1940년대 일제가 중앙선을 놓으면서 철도원의 관사가 있던 마을에 사람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최근에 도시재생사업을 벌이면서 레트로 여행지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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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일 KTX 중앙선이 개통하면서 경북 내륙 여행이 편해졌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영주까지 1시간 40분, 안동까지 2시간 3분 만에 닿는다. 그동안 영주 여행의 중심이 소백산, 부석사였다면 이제는 영주 시내로 넓어지는 분위기다. 특히 영주 구도심은 복고 감성, 그러니까 20~30대가 열광하는 '레트로 여행지'로 이목을 끌고 있다.



일본이 만든 철도원 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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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지은 관사에는 지금도 사람이 산다. 한국의 전통가옥과는 다른 연립주택 형태다. 화장실이 집안에 있다.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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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KTX가 들어왔지만, 영주는 유서 깊은 철도 도시였다. 1942년 일제가 중앙선 철도를 완성하면서 1970년대까지 영주는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였다. 옛 영주역이 있던 영주역에 관사골이 있었다. 일제가 지은 관사(官舍)가 있던 동네다. 7채 건물에 역장, 역무원 가족이 살았다. 철도 개통과 함께 관사 주변에도 가옥이 하나둘 들어섰는데, 해방 이후 밀물처럼 사람이 모여들었고 무허가 주택이 허다하게 자리 잡았다. 영주 시내, 번성했던 시장에서 일하던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좁은 마을에 인구가 급증하니 관사골은 판자촌을 방불케 했다. 얼마나 골목이 좁은지 영구차도 못 들어왔다고 한다.

이처럼 번성했던 영주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1973년 지금의 휴천동 자리로 영주역이 옮겨가고 중앙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교통 요지로서 영주가 쇠퇴하기 시작했다. 1975년 17만 명을 웃돌았던 영주시 인구는 현재 10만 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낙후한 관사골의 환경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관사골에 변화가 찾아온 건 2016년이다.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되면서 낡은 가옥과 비좁은 길을 정비하고 기차를 주제로 한 벽화도 그렸다. 주차장과 어른을 위한 마을센터도 만들었다.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떡을 만들고, 자투리땅에서 돼지감자를 수확해 팔기 시작했다. 2020년 재생사업이 마무리되면서 관사골의 풍경도 깔끔해졌고, 방문객의 발길도 늘기 시작했다.



여행지로 되살아난 관사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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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관사골 벽화는 기차를 주제로 한다. 이마을이 과거 철도 교통의 요충지였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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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관사골을 둘러봤다. 8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관사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지금도 사람이 사는 관사 마당은 단정했다. 철쭉이 만개했고 잘 다듬은 관목이 일본식 가옥과 어울렸다. 관사는 당시로써는 보기 드문 연립주택이었다. 화장실도 안에 있고 집 내부도 널찍해서 마을 사람의 부러움을 샀다고 한다.

관사를 구경했다면 느긋하게 벽화를 구경하고 부용대(芙蓉臺)로 올라가면 된다.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 시절, 그 풍경에 감탄했다는 명승이다. 지금은 공원으로 꾸며졌다. 북서쪽으로 소백산이 보이고 영주 시내도 훤히 내려다보인다. 생각보다 영주가 큰 도시임을 단박에 알 수 있는 풍광이다. 이재우 영주시 관광정책팀장은 "KTX 개통 이후 소백산, 부석사뿐 아니라 사람 냄새 나는 도시의 매력을 발견하는 여행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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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구도심 후생시장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말끔해졌다. 사진관, 오락실, 인형극장 등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공간이 많다.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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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사골 인근에도 시간여행을 즐길 만한 곳이 많았다. 1920년대에 지은 정미소, 지금도 영업 중인 50년 역사의 이발관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적산가옥도 자주 마주쳤다. 관사골과 함께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재탄생한 후생시장은 시골 시장답지 않게 말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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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안동, 봉화 등 경북 내륙지역에서 많이 먹는 태평초. 메밀묵을 듬뿍 넣은 김치전골을 생각하면 비슷하다.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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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관사골과 후생시장 주변에 오래된 맛집이 포진해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빵집 ‘태극당’에서 생양배추와 케첩을 듬뿍 넣은 3500원짜리 햄버거를 먹었고, 구둣가게 랜드로버 앞 ‘랜떡’에서는 두툼한 가래떡으로 만든 2000원짜리 떡볶이를 먹었다. ‘전통묵집시장’의 태평초도 강렬한 맛이었다. 구도심은 전성기가 지났을지 몰라도 음식 맛만큼은 쇠락하지 않았다.

영주=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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