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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인터뷰] 이인영 장관 "남북미 대화 아직 기회있다…北, 바이든이 내민 손 잡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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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10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며 통일 정책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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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선 의원, 여당 원내대표 출신의 화려한 경력을 앞세워 통일부 수장이 된 이인영 장관에게 지난 1년은 그 어느 때보다 다사다난했다. 여당 원내대표로 4·15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면서 통일부 장관으로 입각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꼬일 대로 꼬인 남북관계를 좀처럼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장관은 그러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미국의 대북 정책 리뷰가 끝난 후 새로운 협상 과정에서 변화의 계기를 잡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1년 남긴 가운데 이 장관을 10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만나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막중한 임무를 맡고 취임했는데 남북대화는 진척이 없다.

▷취임 초기 남북대화를 재개하고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노둣돌 하나라도 착실히 놓겠다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앞으로 나간 것은 별로 없다.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수준에서 멈춰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최근 달라졌다. 미국의 대북정책도 수립되고, 북쪽에서도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제 상황 악화 방지를 넘어 상황이 개선되는 쪽으로 노력을 해야 할 때다. 제일 좋은 것은 상반기에 어쨌든 변화를 시작해서 하반기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본궤도에 다시 진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국제 정세 변화 흐름과 함께 거의 20년 만에 기회가 온 것이다. 상반기에 변화를 시작하면 하반기에 굵직한 국내 정치 일정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한반도 평화가 진척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남북관계 개선 적기를 올 상반기로 봤는데, 상반기가 두 달도 채 안 남았다.

▷남북관계에는 항상 전격성이 있다. 끊임없는 노력 속에서 갑자기 전격적으로 진행된다. 즉 끊임없이 노력해나가면 어느 시점에선가는 갑자기 열릴 수 있다는 얘기다.

―긍정론의 근거는 무엇인가. 친서 외교도 끊어진 것 아닌가.

▷남북 양국 정상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신뢰가 있다. 이 신뢰관계가 한반도 평화와 남북한 관계에 있어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서자는 (양국의) 의지만 분명하다면 언제든, 어디서든, 어떠한 방식이든, 의제에 구애받지 않고 (대화에) 임할 수 있다는 게 우리 정부 입장이다.

―북한은 오히려 대남·대미 강경발언을 쏟아내고 있는데.

▷북한은 늘 강온양면으로 이야기한다. 언술은 강경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대화의 여지를 늘 남겨뒀다. 지금도 그런 기조라고 본다. 한미연합훈련 이후 북한에서 나온 담화 등을 보면 한편에선 강경한 어조가 등장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절제돼 있는 부분도 있다.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고 여건이 어떻게 될지를 예의주시하면서 탐색하는 부분들도 있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새롭게 수립되고, 한미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으니 이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대화의 여지를 탐색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이럴 때 영어로 '나쁘지 않다(Not bad)'라고 표현한다고 하더라. 아직 세부사항이 나온 건 아니니 아주 좋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나쁘지는 않다. 우리 입장이 많이 반영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외교와 억지를 모두 언급했으나 우선 외교에 방점을 두고 있을 거라고 본다. 단계적인 해법을 통해 현실적인 접근을 한다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단계마다 필요한 조치를 동시적으로 주고받을 가능성도 꽤 담겼다고 본다. 한국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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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대화 전에 늘 도발했다. 이제 공은 북한으로 넘어간 것 아닌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북한의 군사적 행동 없이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평양도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를 하는 과정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과정으로 좀더 유연하게 나올 필요가 있다.

대화의 계기는 충분히 많다. 도쿄 올림픽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이 계속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가 남북한 유엔 가입 30주년이기도 하다. 이제 남은 건 속도와 여건이다. 미국이 조기에 관여했으면 좋겠다. 전문가들은 대북협상대표 선임을 이야기하던데, 일단 속도가 중요하다. 여건과 관련해서는 내 생각엔 북한이 적대정책 철회를 계속 요구하기 때문에 이에 상응하는 언술이나 행동을 보여주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선제적인 제재 완화는 쉽지 않겠으나 비핵화 조치 진행 여부를 봐서 제재 유연화는 미국도 검토할 수 있지 않겠나.

―제재 유연화라는 게 결국 제재 완화 아닌가.

▷최소한 인도주의 문제에 있어선 제재가 부담이 되지 않도록 분명히 해야 한다. 그 다음 단계로 비상업용 공공 인프라스트럭처라든가, 제재의 본령인 금융·석탄·철강·섬유·노동력·정제유 등은 비핵화 진전과 서로 조응하면서 국제사회와 우리 국민 공감대에 근거해 조금 유연하게 적용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통일부는 미국의 정계 및 조야인사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대북제재 유연화에 대해 예상되는 미국 정부의 반응은 어떠한가.

▷ 미 대북정책의 구체성이 드러나면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 통일부로서는 지속적으로 그런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려고 한다. 북한을 위해서도 아니고 우리만을 위해서도 아니다. 실제 비핵화를 촉진하는 데 제재의 유연성이 갖는 유인력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후보시절 북한 주민들에게 비핵화를 달성했을 때 미래 비전들을 보여주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나.

― 미 정부와는 얼마나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나. 최근 미 정부가 북한에 접촉한 사실을 사전에 공유 받았나.

▷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갖고 어떤 설명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까지 우리 정부가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 대북전단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콕 찝어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경고했다.

▷ 남북관계라는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인내하면서 가야 되는 부분들도 있다.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것은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안전을 보호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의지도 담겨 있다. 정부가 남북 정상간 합의사항을 지키려 해도 그렇게 개인적으로 툭툭 깨버리면 평화의 탑이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다.

대북전단의 효과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북전단보다는 남북 교류의 과정 속에서 (북한 주민들의) 더 큰 인식의 변화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크고 자연스러운 변화가 있을 수 있는 교류를 지금 대북전단이 막아버리지 않나. 평화가 더 많은 인권을 제고하고, 인도주의 협력이 더 실질적인 인권개선의 길일 수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 대해서 존중해줬으면 한다.

―정부 초기에는 경제계도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인데 지금은 실망뿐이다.

▷과거 박근혜정부 시절 개성공단을 닫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개성공단을 철수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 성장판을 잘라버린 것과 똑같은 행위다. 추후 새로운 평화의 시간이 도래하면 그 역사 속에서 가장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남북경협은 어떤 면에선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다.

―북한이 관광단지 자체개발 등 독자적 경제개발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경협 재개 가능성은 없는 것 아닌가.

▷한국이 잠재성장률을 0.5~1%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은 남북경협뿐이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먼저 참여할 기회를 찾아야 한다. 새로운 북핵 협상 과정이 시작되면 어떻게든 제재 유연화 과정을 만들어 경협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별의 순간을 우리가 잡아야 한다.

―대통령 임기가 1년 남았다. 남북대화 재개 외에 꼭 이뤄졌으면 하는 게 있나.

▷남북 간 민간교류만큼은 즉각 전면적으로 재개되기를 희망한다. 이에 대해선 북한이 반드시 호응해주기를 바란다. 당국 간 교류에는 고려사항이 많더라도 민간 교류만큼은 즉시 물꼬가 다시 트였으면 한다.

자타공인 걷기주의자, 경기 파주~강원 고성…내달 '통일걷기' 시작

평화 매개로 청년층과 소통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자타 공인 '걷기주의자'다. 걸으면서 건강도 관리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대화하는 걸 가장 큰 즐거움으로 생각한다. 본인 스스로도 "걷다 보면 욕심을 버리게 된다"고 말한다. 이 장관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낙선하고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 뒤 책을 내기도 했다. 2017년부터는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을 걷는 '통일 걷기'를 만들었다. 2019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시절에는 국회의원들을 이끌고 무더위와 폭우 속에서 민통선 일대를 2박3일 동안 걸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통일부 장관이 되고 나서 남북 관계 교착 상태에 코로나19라는 복병까지 만난 이 장관은 그래도 걷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다음달부터는 일반 국민이 강원도 고성군에서 경기도 파주시까지 횡단하는 'DMZ 평화의 길 통일 걷기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 장관은 청년들과 소통을 대폭 늘리고 있다. 최근 여권이 20·30대와 괴리되어 있다는 비난을 듣고 있지만 관록의 정치인 출신인 이 장관은 이와 상관없이 일찌감치 20·30대를 일의 중심에 뒀다. 그는 "미래 통일의 주역은 현 20·30대가 될 텐데 우리 같은 기성세대가 뭘 설계하고 하는 것보다 20·30대가 직접 나서는 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통일부를 맡은 이후 부서 내 모든 행사에 20·30대 직원을 일정 비율로 참여시키는 청년쿼터제도를 도입했을 정도다. 이 장관은 20·30대의 통일관 자체가 부정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과정이 공정하다면 그들도 거부하지 않는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이 장관은 "통일과 평화가 내 삶에 어떤 이익이 있는지를 합리적으로 따져보는 게 현 청년세대"라며 "절차가 공정하고 과정에서 소통을 한다면 20·30대도 통일과 평화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가령 경제적인 측면에서 한반도 평화 속 남북경협을 통한 경제발전이 미래 내 삶에 어떤 유익함을 줄 수 있을 것인가도 2030세대에게 답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같은 맥락에서 ‘평화뉴딜’과 같은 비전 역시 2030세대가 부정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이같은 과정조차도 청년 본인들 스스로가 창의적으로 설계해 나가고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He is…

△1964년 충청북도 충주 출생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 총학생회장·전대협 1기 의장(1987년) △17·19·20·21대 국회의원 △민주통합당 최고위원(2010~2012년) △국회 남북경협특위 위원장(2018~2019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2019~2020년) △통일부 장관(2020년 7월~)

[한예경 기자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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