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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ESG 경영’ 일시적 유행인가, 대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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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들, ‘동참 않으면 뒤처진다’ 위원회·전담조직 등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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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대 기업 CEO 66% “관심 많다”…지속 가능한 생존 위한 변화 인식
10대 그룹 등 본격 도입 나섰지만 업종·기업별 특성 탓 현장에선 혼란
정부, K-ESG ‘잣대’ 하반기 마련 계획…모호한 범위·개념 정립 기대

국내 기업들 사이에 그야말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열풍이 불고 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그로 인한 경제·산업계 전반의 위기 의식이 심화되면서 웬만한 대기업들은 너나없이 이사회 내에 ESG위원회를 설치하거나 별도의 전담조직을 꾸리는 등 ESG를 경영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금융 트렌드이자 투자자·주주들의 실질적인 압박 수위가 높아지면서 이에 대한 대응 차원의 움직임이기도 하다. 일시적 유행에 편승한다는 시각도 있지만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지금 동참하지 않으면 영원히 뒤처진다’는 생존을 위한 변화에 나선 것이다.

■ 올해는 ‘ESG 원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달 13일 발표한 ‘10대 그룹 ESG 경영 사례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자산총액 기준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삼성, 현대차, SK, 롯데, 포스코, 한화, GS 등 7곳은 이미 ESG위원회를 설치한 상태다. 여기에 지난달 27일 신세계도 (주)이마트와 (주)신세계 각각에 기존 사회공헌위원회를 확대·개편한 ESG위원회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 그룹도 지난달 말 지주사와 계열사 7곳에 ESG위원회 설치를 마쳤다. 모두 ESG를 경영 가치의 우선순위에 둔 기구·조직들이다. LG도 상장 계열사 전체에 ESG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여서 사실상 10대 그룹 모두가 본격적인 ESG 경영에 나선 상태다. 2021년이 한국의 ‘ESG 원년’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동종 업계 경쟁사나 다른 업종 기업들이 ESG라는 공통의 목표 달성을 위해 손을 맞잡는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탄소중립 혁신기술 개발을 목표로 현대차와 SK E&S, 포스코에너지, 한화에너지, GS에너지, 두산중공업, 효성중공업, 현대경제연구원 등 10여개 기업·기관이 ‘에너지 얼라이언스’를 맺은 것이 대표적이다. GS건설과 LG유플러스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스마트 건설 기술 개발에 나섰고, SK텔레콤과 카카오는 ESG 공동 펀드를 조성해 혁신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ESG 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원청-하청’ 관계로 불렸던 밸류체인(공급망)에도 ESG 개념이 적극 도입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협력회사 리스크 통합 관리시스템인 G-SRM 등을 운영하고 있고, 현대제철은 매년 공급망 ESG 평가를 실시해 노동·인권, 환경, 준법, 안전 등 잠재적 리스크를 점검 중이다.

소비자들과의 접촉이 잦은 유통업계 등의 친환경 캠페인 활동도 눈에 띈다. 이마트가 소비자들의 환경보호 동참을 돕기 위해 ‘에코 리필 스테이션’을 설치한 것이나, GS리테일과 CU편의점 등의 ‘무라벨 생수’ 출시, LG생활건강의 그린제품심의협의회 운영, 롯데케미칼의 페트병 재활용캠페인 ‘프로젝트 루프’ 등도 소비자 대상 ESG 경영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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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심’ 높지만 ‘개념’은 아직

매출·영업이익 최상위 기업들이 즐비한 10대 그룹들만 관심이 높은 것은 아니다. 전경련이 지난 3월 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이들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66.3%가 “ESG에 관심이 많다”고 답했다. ESG위원회 설치 여부에는 ‘이미 설치’(17.8%)했거나 ‘설치할 예정’(27.7%)이라고 답했다. 10대 그룹에 비해서는 낮은 수치이지만 그만큼 기업 경영 한복판에 ESG가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ESG가 비슷해 보이면서도 서로 다른 환경·사회·지배구조 각각의 영역을 포괄하고 있는 데다, 업종별·기업별 사업환경이나 경영방식의 차이로 인해 구체적인 개념이 아직까지 정립돼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ESG 경영전략 수립의 ‘애로 요인’을 물었더니, ‘ESG의 모호한 범위와 개념’이라는 응답이 29.7%로 가장 많았다. 이어 자사 사업과의 낮은 연관성(19.8%), 기관마다 상이한 ESG 평가 방식(17.8%), 추가적 비용 초래(17.8%) 등의 순이었다. 아직도 ‘ESG가 뭔지 잘 모르고, 사업과 직접 관련이 없긴 하지만 다들 한다니까…’와 같은 생각을 가진 기업이 그만큼 많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고민을 반영하듯 기업들의 모임인 경제단체들은 ESG 포럼이나 위원회 설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기업의 자발적 노력과 별개로 중견·중소기업 등에 실무적 차원에서 도움을 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에만 ‘ESG 경영포럼’을 두 차례 개최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법무법인 등이 함께 개최한 지난달 8일 첫 포럼은 글로벌 ESG 최신 동향과 대응 과제, 국내외 ESG 평가 기준 등이 주제였고, 2차 포럼에서는 국민연금·한국거래소 등에서 발제를 맡아 관련 투자와 규제 등 회원사들이 실무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들을 다뤘다. 대한상의는 지난 3월 최태원 회장 취임 이후 기존 조직인 산업조사본부 산하 기업문화팀을 ESG경영팀으로 확대 개편하는 등 ESG를 역점 사업으로 다루고 있다.

전경련은 지난달 14일 ‘K-ESG 얼라이언스’를 발족했다. 대기업에서 중견·중소기업으로 ESG 경영을 확산하고 글로벌 ESG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마련된 기구다. 글로벌 기관투자가 대상 ESG 투자설명회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지난달 26일 18개 그룹 대표들이 참여한 가운데 제1차 ESG경영위원회를 개최하고, ‘ESG 자율경영 실천을 위한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 ‘K-ESG’ 평가지표도 준비

기업들이 맞닥뜨린 또 다른 현실적인 문제는 어느 잣대에 맞춰야 할지에 대한 부분이다. ESG 평가지표는 알려진 것만 국내외 600여개에 이르는데, 평가기관과 항목이 난립함으로써 똑같은 기업이 천차만별 다른 평가를 받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로 인한 기업의 혼란이 가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산업부는 ‘한국형 ESG(K-ESG) 지표’를 하반기 중 마련할 계획이다. 지난달 21일 주요 기업들과 간담회를 가진 산업부는 이날 지표 초안도 공개했는데, 여기에는 환경·사회·지배구조·정보공시 등 4개 분야 61개의 평가문항이 담겼다. 다만 이 또한 다양한 기업의 활동을 일률적으로 계량화할 수 없는 만큼 획일적인 적용이 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실효성 있는 지표가 되기 위해서는 금융·투자업계나 해외 유수의 평가지표와 상호 인정돼 널리 활용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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