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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생소한 업무 맡은 뒤 심근경색 사망…법원 “업무상 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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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울행정법원. 법원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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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근무를 하지 않았더라도 20여년동안 해온 업무와 다른 생소한 일을 맡아 스트레스가 큰 상황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할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종환)는 대전에 있는 한 공공기관 직원 ㄱ(사망 당시 52)씨의 유가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1996년 2월부터 이 기관 연구직으로 근무해온 ㄱ씨는 2018년 6월 연구소의 예산, 인사 같은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부서 팀장으로 발령받았다. ㄱ씨는 조직 재구조화와 기술료 배분도 추가로 맡아 매주 1~2회 2~3시간씩 야근을 했는데, 2019년 4월 집 근처 산길에서 산책하던 중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숨졌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ㄱ씨에게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킬만한 업무상 부담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하지 않는다고 처분했고, ㄱ씨의 유족은 이에 반발해 소송을 냈다.

법원은 “ㄱ씨는 업무상 사유로 사망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업무상 재해’는 노동자의 업무로 인해 발생한 질병을 의미하는 것으로, 업무상 과로·스트레스가 질병을 유발했다면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본다. 재판부는 ㄱ씨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라고 봤다. 재판부는 “고인은 22년 4개월 동안 연구개발 업무를 수행하다 사망하기 10개월 전부터 예산 등의 업무를 총괄하게 됐다”며 “해당 업무는 그전에는 담당하지 않던 생소한 각종 행정업무 전반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업무의 양이나 범위가 방대했다. 연구개발만 해오던 ㄱ씨에게는 상당한 업무 부담과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일상적 업무 외에 함께 추진하던 조직 재구조화와 기술료 배분 업무도 스트레스를 가중했을 거라고 봤다.

ㄱ씨는 숨지기 전날 10시간 26분 근무했고, 사망 전 12주 동안 1주일 평균 41시간22분을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 고시 ‘심장질병의 업무상 질병 여부 결정’ 기준인 주 52시간에 못 미쳤지만, 재판부는 “고인이 업무시간이 고시가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 사유만으로 고인의 급성 심근경색이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정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ㄱ씨가 고혈압 전 단계였다는 점, 안과 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점도 업무 스트레스를 가중해 “산행 시 약간의 신체적 부담만으로도 급성 심근경색이 발병하도록 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재판부는 밝혔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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