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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윤설영의 일본 속으로]일본 “대만은 중요한 친구”…유사시 집단적 자위권 행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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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센카쿠열도 170km 거리

"대만 사태는 곧 일본의 문제"

’전쟁하는 자위대’ 준비하는 일본

"미·일 대만 방어계획도 나올 것"

미·일 정상회담이 열린 지난달 17일, 기시 노부오(岸信夫) 방위상은 일본의 최서단 오키나와현(沖縄県) 요나구니지마(与那国島)를 방문했다. 대만에서 불과 110㎞ 떨어진 곳. 날이 맑을 땐 대만이 보이는 거리다. 기시 방위상은 이 섬에 주둔 중인 자위대 부대를 시찰한 뒤 “대만은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중요한 친구”라면서 “대만의 안정은 일본의 안보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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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오키나와현 요나구니지마를 시찰한 기시 노부오(가운데) 방위상이 '일본 최서단의 땅'이라고 적힌 비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지지통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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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8시간 전, 미국 워싱턴에선 미·일 정상이 공동발표문에서 대만 문제를 공식 언급했다. 미·일 정상이 공동 문서에 대만 문제를 언급한 것은 52년만으로, 일본이 대만과 단교하고 1972년 중국과 수교한 이후 처음이다. 두 정상은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 대만 문제에 일본을 끌어들이는 데 대해 신중한 입장이었다.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최근 중국 전투기가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에 침입하는 사례가 이어지는 등 긴장이 고조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필립 데이비슨 미국 인도태평양군 사령관은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군사력을 증강하면서 6년 안에 대만을 합병하려 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중국의 군사력 증강이 가속화하면서, 미군 단독으로 대만을 방어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미국 조야에 퍼졌다. 실제 대만해협 분쟁을 상정한 미군의 가상 훈련에서 미군이 중국군에 패배하는 결과가 거듭되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치시타 나루시게(道下德成) 정책연구대학원대(GIPS) 교수는 중앙일보에 “미군이 대만으로 달려오는데 시간이 걸린다"면서 "곧바로 대응할 수 있는 건 일본”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내부에서도 “대만의 유사(有事·전쟁이나 큰 재해 등 긴급사태가 벌어지는 것)는 일본의 유사나 다름없다”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센카쿠열도(尖閣諸島·중국명 댜오위다오)는 대만에서 불과 170㎞ 떨어져 있다. 익명을 원한 일본의 안보전문가는 “대만 유사사태가 대만해협에서 끝나지 않을 경우, 일본의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미·일 정상이 대만을 언급한 것은 대만이 위협을 당할 경우, 즉 중국이 현 상태를 바꾸려 들 경우 미·일 동맹이 움직일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대만 주변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할 경우, 자위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주일 미군기지가 중국의 표적이 되거나 중국군이 센카쿠열도나 남서군도를 점령할 경우 ‘무력공격사태’로 규정하고 자위대의 탄도미사일 공격, 항공 공격도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자위대가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도 있다. 2016년 시행된 안보관련법은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는 명백한 위험’이라고 볼 수 있는 ‘존립위기사태’라는 판단이 내려지면, 한정적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자위대가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하는 첫 사례가 대만 유사사태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존립위기사태’를 판단하는 건 정치의 영역이다. 미치시타 교수는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할 것인지는 상당히 어려운 정치적 판단이 될 수 있지만, 이론적으로 행사가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국에 대한 억지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만 문제가 정식으로 다뤄짐으로써 자위대의 능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논의도 힘을 얻고 있다. 중국이 어선이나 민병을 보내 센카쿠열도를 점거하는 상황인 ‘그레이존’에 대비해 해상보안청, 자위대, 미군이 합동작전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군이 도달하기 전 상대의 공격능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적 기지 공격 능력’ 확보를 서둘러야 한다는 논의도 속도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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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미 해군 맥케인함이 대만해협 내 국제 수역을 지났다고 밝히면서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미 태평양 함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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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지난 2월엔 센카쿠열도 주변 해역에서 이례적으로 미군과 자위대가 물자수송훈련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9월엔 육상 자위대 약 14만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훈련을 규슈(九州)에서 실시할 계획이다. 전국부대가 참가하는 대규모 훈련은 약 30년만으로, 센카쿠열도와 대만 유사사태를 염두에 둔 것이다. 미치시타 교수는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가 미군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작전계획 5055가 있듯이, 대만 유사시 미·일 방어계획에 대한 논의가 곧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일본은 '아시아 넘버 원'이 되기 위해선 미국이 필요하다는 현실적 계산과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적대감이 맞물리며 대중(對中) 전선의 선봉에 서 있다”면서 “앞으로 미·일은 더욱 밀착할 것이고 중국과 대척점에 서는 이슈들은 계속 나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국들에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하는 가운데 한국에도 비슷한 역할이 요구될 수 있다. 나카야마 도시히로(中山俊宏) 게이오대 국제정치학 교수는 “한미동맹과 미·일 동맹은 역할이 다르다”면서도 “중국의 위협에 대한 인식에 한국이 함께 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역할은 한반도 문제에서 협력하는 정도로 상당히 제한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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