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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얄미운' 朴 밀어준 MB···정권 재창출 미션 남긴 文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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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임기말 주변에 '왜 박근혜를 돕느냐'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당신이 대통령으로 고생했을 때 얼마나 얄밉게 굴었냐'고 하면서,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래서 반대하는 측근들에게도 '선거를 잘 도와주라'고 했다."

퇴임한 뒤 1년 여가 지난 2014년 어느날 삼성동 사무실로 자신을 찾아온 기자들에게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한 얘기다. "보수 정치권 전체를 두 쪽으로 찢었다"는 말이 회자됐을 정도로 친이·친박의 갈등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거칠었다. 하지만 '정권 재창출'이라는 대의를 위해선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었고, 일정 부분 서로 손을 잡아야 했다고 MB는 회고했다. '정권 재창출'이라는 미션에 대해 느끼는 현직 대통령의 압박감을 짐작케하는 말이다.

더욱 가팔라지는 진영 대결의 현실,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한국 정치 현실속에서 정권재창출 여부는 성공한 대통령과 실패한 대통령을 가르는 평가 잣대가 되기도 한다.

10일 취임 4주년을 맞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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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0일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열린 취임선서 행사에서 제19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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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엔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던 대통령과 그렇지 못했던 대통령에는 패턴이 있다”는 말이 있다. 소위 ‘정권 재창출의 공식’에 대입해 본 문 대통령의 현실은 어떨까.



3번의 정권재창출과 3번의 정권교체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뒤 지금까지 3번의 정권재창출과 3번의 정권교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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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제14대 대통령이 25일 오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뜰에서 취임식중, 노태우 전임 대통령과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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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노태우ㆍ김대중(DJ)ㆍ이명박(MB) 전 대통령이다. 이들의 후계자 격인 김영삼(YS) 전 대통령(1992년), 노무현 전 대통령(2002년), 박근혜 전 대통령(2012년)이 대선에서 승리했다.

반면 YS와 노무현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은 상대 진영에 정권을 내줬다. 이회창 전 총리,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다음 타자로 나섰던 선거였다.



‘건설적 차별화’를 인정했던 대통령







정권재창출에 성공했던 대통령들의 공통점은 자신과 색깔이 다르더라도 차기 후보에게 신뢰와 힘을 실어줬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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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25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에서 취임식을 마치고 김대중 전대통령을 배웅하기 위해 함께 연단을 내려오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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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은 “(과거)YS의 인간됨과 역사관을 오판했다”며 YS가 걸어온 길을 인정했다. 두 사람은 군(軍)과 민주화 운동 출신으로 한국 현대사의 대척점에 섰던 관계다. 부산 출신 비주류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광주 경선에서 승리한 뒤 호남에 뿌리를 둔 DJ의 적자가 됐다. MB는 일찌감치 박 전 대통령에게 “대선 레이스를 방해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는 친박(親朴)이 ‘여당내 야당’으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자신과 다른 배경과 색깔을 가진 후보의 등장, 어느 정도의 긴장관계 속에서도 그 후보를 인정해주는 현직 대통령의 배려가 화음을 만들어냈다.

현재 여권내 유력 주자로는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이 꼽힌다. 이중 비문(非文)인 이 지사가 여권내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는 문재인 정부에서 나란히 총리를 지냈던 인사지만 문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한다. 특히 대기업 출신인 정 전 총리는 문 대통령과 다른 경제전문가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반면 당내 최대 지분을 보유한 친문 진영에선 지금도 ‘친문’ 정도가 아닌 ‘진문(眞文) 후보’를 찾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의 출전을 염두에 둔 대선 경선 연기론도 이미 수면 위로 부상한 상태다.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박성민 대표는 “문 대통령이 ‘이길 수 있고 동시에 믿을 수도 있는 후계자’만 구하다가는 정권재창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자신과 성향이 다른 후보라도 강한 신뢰를 줬던 대통령만 정권재창출에 성공했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레임덕 대통령’을 인정하는 후보



YS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이 치러지기 전 쫓겨나듯 탈당했다. 차기 주자의 요구 때문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차기 주자들의 탈당 요구를 받던 중 탄핵됐다. 탄핵 이후엔 당을 떠났다. 정권을 내줬던 여당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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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전 서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열린 취임식을 마친 뒤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함께 걸어 나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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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도 대선 전에 탈당했다. 그러나 그의 탈당은 노 전 대통령의 요구가 아닌 아들 관련 비리에 대한 책임 차원이었다. 2012년엔 친박들은 MB의 탈당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 탈당이 해법이 아니다”라며 반대했다. 두번 모두 여당이 승리한 선거로 이어졌다.

임기말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을 찍는다. 이는 전임자에 대한 비판 여론을 끊기 위한 후임자의 탈당 요구로 이어졌다. 그러나 대통령의 탈당은 대부분 대통령이 가지고 있던 핵심 지지기반까지 사리지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여당의 분열과 패배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대선 패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임기 말로 갈수록 ‘원팀’이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지난 4일 비문 대표로 분류되는 송영길 신임 민주당 대표와의 오찬 때는 아예 “선거에서 있었던 일은 깨끗이 잊으라”고 했다. 송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비문으로 분류돼 억울했다”고 한 데 대한 화답이었다. 문 대통령은 “친문, 비문 그런 게 어디 있느냐”고도 했다고 한다.

여당 대선 주자들 중엔 아직 문 대통령을 대놓고 공격하고 이는 거의 없다.

남은 임기 동안 문 대통령이 위기 관리를 어떻게 해나갈지, 민심 이반을 초래할 대형 이슈가 터지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당ㆍ청 관계와 30% 지지율



정권을 지켜 낸 DJ와 MB의 집권 4년차 4분기 평균 지지율은 각각 31%와 32%였다.(한국 갤럽 기준) 반면 정권을 내줬던 YS(28%), 노무현(12%), 박근혜(12%) 전 대통령의 같은 기간 지지율은 30%에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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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4년말 지지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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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지지율을 지키지 못했던 대통령들은 예외없이 당ㆍ청 관계의 붕괴를 겪은 끝에 대선에서 졌다. 또다른 대선의 공식이다.

문 대통령의 4년차 4분기 평균 지지율은 38%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발표된 갤럽의 조사에서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29%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특히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0%에 달했다. 박근혜(80%), 노무현(79%) 전 대통령에 이어 3번째로 높다. (95% 신뢰수준ㆍ오차 ±3.1%포인트ㆍ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유영민 비서실장을 임명했다. 강성 최재성 전 정무수석 대신 이철희 수석을 임명했고, 국무총리에는 TK출신 김부겸 전 행안부 장관을 지명했다. 정치권에선 이를 “지지율 관리 행보”로 보는 시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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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문재인 정부 4년 국정지지도 추이


배종찬 인사이트케이연구소장은 “지지율 중 문 대통령이 가진 최대 자산인 40대ㆍ화이트칼라ㆍ호남을 지켜내고 이를 후임자에게 온전히 넘기는 것이 관건”이라며 “특히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에서 지지율이 급격히 빠지는 추세는 위험한 시그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TK출신인 이 지사와 호남 출신인 두 전직 총리 중 누가 호남의 압도적 지지를 확보해 민주당의 적자로 등극하느냐가 경선의 결과를 가를 핵심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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