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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크리틱] 악평에 대처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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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라울 하우스만, <미술평론가>, 1919~20, 포토몽타주, 31.8×25.4㎝, 테이트 갤러리,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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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ㅣ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책, 음악, 영화 등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풀어놓는 전문가를 평론가라고 부른다. 한 세기 전만 해도 평론가란 악평 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을 뜻했다. 평론가를 뜻하는 영어 크리틱(critic)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무엇에 대하여, 주로 부정적인 측면을 공적인 입장에서 비판하는 사람”이라고 나온다.

흠집을 신랄하게 쓴 글을 읽으면 평소 가려웠지만 자기 손이 닿지 않았던 부위를 남이 대신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 같은 효과가 있다. 반면 온화한 문체의 평론가가 긍정적인 태도와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며 문화적 현상을 조목조목 설명하면, 글에 꼭 들어가야 할 요소 하나가 빠진 것 같고 뭔가 아쉬운 점이 있다고 느끼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요즘의 평론가들이 악평을 주저하는 이유는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그것을 읽고 불편해할 당사자를 염두에 두기 때문이고, 둘째는 악평에는 좀 더 신중하고 요령 있는 글쓰기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섣부르게 쓴 악평은 인신공격성 욕과 다름없이 읽히는 법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아메리칸 셰프>(2015)에서는 음식평론가와 주방장 사이의 갈등 장면이 나온다. 자신의 요리에 대해 트위터에 독설을 퍼부어놓은 평론가에게 주방장이 울분을 터뜨리며 이렇게 소리친다. “댁 같은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쓰겠지만, 그따위로 써놓으면 미치게 아프다고요. 아세요? 우린 노력한다고요.”

크리틱이라는 명목으로 악담을 서슴지 않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보면 중세 말에 흔했다는 악담시 대결의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시인들끼리 서로 수준을 떠보며 시로 말싸움을 하다가 상대편에게 심하게 모욕을 주는 쪽이 이기는 대결이다. 이때 모욕이란 타인의 실력을 하찮게 가늠하여 저급으로 깎아내리는 양상에서 비롯된다.

1878년 영국에서는 미술평론가의 악평으로 인해 평론가와 화가 사이에 재판이 벌어진 적도 있다. 손의 정성이 깃들어 있어야 좋은 작품이라고 주장해오던 영국의 원로평론가 존 러스킨은 몇번의 붓질로 단번에 완성한 제임스 휘슬러의 그림을 보고 어이가 없어 “사람들의 면전에 물감을 통째로 내던져놓고, 뻔뻔스럽게 200기니(영국의 옛 금화)나 내놓으라니!”라고 혹평했다. 모욕적인 말에 분개한 휘슬러는 러스킨을 고소했다.

20세기에도 여전히 평론가는 악명 높은 직업이어서, 길 가다 달걀 세례를 받는 일도 생기고 펜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협박에도 시달려야 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다다이스트, 라울 하우스만의 작품 중에 <미술평론가>(1919)가 있다. 사진을 오려 붙여 구성한 것인데, 뾰족한 펜을 무기처럼 들고 서 있는 미술평론가의 이마에는 신발짝 하나가 던져진 듯 붙어 있고, 그의 눈과 입, 그리고 몸통 위에는 지독히도 혐오스럽다는 표시로 붉은 색연필이 마구 그어져 있다.

평론가들이 미움을 받으면서도 악담을 선호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메리칸 셰프>에 대답이 될 만한 장면이 있다. 주인공인 주방장은 평론가의 독설 때문에 결국 레스토랑에서 해고되고, 복수하겠다는 의지로 일어서서 푸드트럭으로 인기몰이를 하게 된다. 손님 중에는 예전의 그 평론가도 끼어 있다. 그는 직접 줄을 서서 자기 돈을 내고 샌드위치를 사 먹으며 이렇게 변명한다. “독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원래 하는 일이에요. 적당히 듣기 좋은 말만 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까요.”

독설가 한 사람에게 분노하기보다는 다수에게서 인정받기 위해 실력으로 재도전하는 것, 이것이 모욕받은 것에 대한 최고의 복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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