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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시시비비] 잠원역 4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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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과 교수


부동산 문제와 해법에 관심이 있다면 서울 지하철 3호선 잠원역에 내려 보기를 권한다. 내리는 순간부터 놀라게 된다. 의외로 한산해서다. 출구도 네 개뿐이다. 출구를 나서며 만나게 되는 풍경은 더욱 놀랍다. 우거진 나무들이 중층 아파트 건물을 가리고 있다. 도로는 2차선인데도 중앙분리대가 있고 그 위에는 화초가 만발한다. 도심의 번잡함은 사라지고 평온함이 널려 있다.


학군은 최상이다. 교통도 사통팔달이다. 대형 백화점 서너 개가 10분 거리에 있다.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도 30분 이내에 닿을 수 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이런 전원적인 풍경이 펼쳐진다는 사실은 초창기 도시계획의 일종의 버그였다. 굵은 색연필로 도로를 긋고 땅을 나누는 것이 도시계획의 전부였던 시절에 생긴 이곳은 당시 서울 끝자락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잠원역 주변의 아파트는 주거정책을 세우거나 아파트를 공급하거나 구매하는 소비자 모두에게 일종의 이상향이 됐다.


주거 공급 계획을 세울 때마다 이 주변의 풍경은 상상의 공간이며 집단적 욕망의 대상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뉴타운은 강북 지역을 잠원역 주변처럼 만드는 시도다. 강북에는 기존의 인프라가 있으니 저층 주거지를 밀어내고 부족한 녹지와 주차장을 만든다. 신도시는 정반대다. 녹지나 주차장을 충분히 지을 수 있다. 다른 시설들을 다 채우려면 시간이 걸리니 교통체계를 더해서 아파트 단지를 완성한다.


정작 잠원역 주변 아파트 단지에 부재하는 것은 도시 주거에 대한 고민이다. 부동산 문제가 출발하는 지점이니 해법도 여기에 함께 있다.


먼저 잠원역 주변이 도시적 주거는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서울 전체를 이렇게 만드는 일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게다가 잠원역 주변의 아파트는 수없이 복제되며 그때마다 원본에서 한걸음씩 도시 주거에서 멀어졌다. 모든 세대를 남향으로 만들기 위해 같은 용적률이지만 층수는 올라갔다. 발코니 확장을 허용한 덕에 작은 평형도 4베이가 일반화됐다. 주차장과 녹지는 규모를 키웠고 모두가 자동차를 타고 출근하고 장 보러 가게 됐다.


거리를 걷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니 동네 상권은 붕괴하고, 이웃이나 공동체는 해체됐다. 미국식 서버번 주거양식으로 변한 것이다. 미국 도시학자 멜빈 웨버교수는 새로운 교통기술이 지역공동체와 인간 사이의 오랜 연결고리를 깨버렸고 도시 공간은 비장소적인 영역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도시도 전원도 아닌 애매모호한 공간으로 스스로 고립하고 도시에 사는 장점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공공의 역할이 중요하다. 장기적인 도시 구조와 발전 방향을 고민하고 계획하는 것이 공공의 역할이다. 아파트 단지를 대체할 수 있는 도시적 주거형태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자연의 고요함과 한적함과는 다른 역동적인 활기를 가진 대등한 주거형태임을 실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큰 책임은 건축가들에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체도 모호한 ‘시장’이라는 설계자에게 중요한 도시 주거 설계를 맡기고 손을 놓고 있으니 말이다. 건축가는 고상해서 공동주택에는 관심이 없는 것인가? 기회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도 잠원역 주변을 이상적 도시 주거로 욕망하고 있는 것인가?


모두에게 잠원역에 내려 보기를 권한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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