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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백신 달라 서른번 전화" 화이자 감명케 한 비비의 집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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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언론에 숨은 얘기 공개

“오전 3시에도 전화” 백신 외교전

시민들 “총리 덕분에 일상 되찾아”

반대파 “부패 총리 이젠 물러나야”

중앙일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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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BB·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애칭)가 백신을 빨리 구해와 코로나19도 극복한 것 아니냐.”

“비비가 부패했다는 걸 (시민들이) 알고 있다. 이젠 바뀔 때가 됐다.”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향한 현지의 엇갈린 평가다. 코로나19 위기를 빠르게 극복한 주역이란 평가 한편으론 장기 집권에 대한 염증도 표출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모범국으로 꼽힌다. 성인 접종률이 90%를 넘어서며 예전의 일상을 거의 되찾은 모습이다. 지난달 18일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은 데 이어 오는 23일부터는 외국인 단체 관광객도 받는다.

덕분에 경제도 회복되고 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지난해 실질 성장률은 ‘-5%’를 기록했다. 2017~2019년 매년 3.5% 안팎의 성장률을 보인 이스라엘이었다. 처음 뒷걸음친 것이다. 하지만 올해 성장률은 다시 2.5% 반등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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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내 모습.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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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 CEO "서른 차례 전화, 집요함에 감동"



군사 작전하듯 벌인 이스라엘의 백신 도입의 중심에는 네타냐후 총리가 있었다. 모사드 등 국가 기관을 총동원한 것은 물론 그 자신이 백신 제조사들을 상대로 직접 설득에 나섰다.

이는 앨버트 불라 화이자 CEO(최고경영자)가 공개한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화이자 백신을 빨리 들여오기 위해 불라 CEO에게 서른 차례나 전화했다. 이른 새벽도 예외가 아니었다.

불라 CEO는 지난 3월 이스라엘 매체 채널 12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사실을 밝히며 "나는 '총리님 지금 오전 3시입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불라 CEO는 "당시 (백신 공급에 관해)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과 이야기 중이었는데, 솔직히 네타냐후 총리의 집요함에 감명받았다(impressed)"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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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율리 에델스타인 보건부 장관이 지난 1월에도 도착한 화이자 백신을 공항으로 마중 나간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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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도입은 물론 유통, 접종과정도 꼼꼼히 챙겼다. 지난해 12월 9일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한 화이자 백신을 직접 마중 나갔고, 같은 달 19일 접종을 독려하기 위해 가장 먼저 백신을 맞았다. 공개적으로 불라 CEO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며 "나의 새로운 친구"라고 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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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 감람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올드시티 전경.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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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승부수'로 반전 시도



이런 성과는 그와 대척점에 섰던 이들의 마음도 움직였다. 지난 1월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그의 방역 실패를 비판하던 비평가들조차 정치 성향을 떠나 백신 접종을 위한 그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의 진보 성향 일간지 하레츠도 '네타냐후의 기여를 무시할 수 없다'며 그의 노력을 평가하는 칼럼을 싣기도 했다.

예루살렘 벤 예후다 거리의 한 상인은 “코로나19 백신으로 삶을 되찾고 있다”며 “비비가 다른 나라보다 백신을 빨리 구해와 가능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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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 총리가 지난해 12월 19일 화이자 백신을 맞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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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가 특히 보수 성향의 국민의 지지를 받는 배경에는 그의 가족사도 자리 잡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의 형은 ‘엔테베 작전’ 중 전사한 특공대 대장 요나단 네타냐후다. 1976년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서 에어프랑스 여객기가 팔레스타인 무장대원에 의해 피랍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이스라엘 특공대가 투입, 승객을 무사히 전원 구조했는데 작전 과정에서 요나단 네타냐후는 전사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추모 열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엔테베 작전 대신 ‘요나단 작전’으로도 불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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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현지시간) 오전 이스라엘 예루살렘 올드시티 '통곡의 벽'에서 한 종교인이 기도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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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 구성 실패, 최대 위기 맞아



하지만 한편에선 '낡고 부패한 정치인'이란 비판도 따라붙는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각) 텔아비브 라마트간 도심. ‘간츠를 뽑지 않으면 또 네타냐후다’라고 적힌 지난 3월의 선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네타냐후는 두 차례에 걸쳐 15년간(1996년~1999년 · 2009년~) 재임 중인 최장수 총리다. 간츠는 중도성향으로 분류되는 청백당 대표로 네타냐후의 '장기집권 저지'를 선거 구호로 내세운 것이다.

집권 과정에서 여러 비위 의혹도 불거졌다. 호주 사업가 등으로부터 20만 달러 상당의 뇌물을 받고, 뉴스 포털사이트에 친정부 기사를 쓰도록 압박한 혐의도 받고 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익명을 요청한 이스라엘 교육계 관계자는 “비비는 이제 그만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쿠드당(네타냐후 소속 당)은 실수하는 거다. 부패한 걸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며 “더욱이 (그는) 4번의 총선 동안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했다. 어쩌면 이제 비비 없는 정부를 볼 때도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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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연정 구성권한을 넘겨 받은 야이르 라피드 예시 아티드 당대표.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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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에 연정 구성원 넘어가, 실각 위기



실제 실각 가능성도 생겼다. 지난 총선에서 120개 의석 중 30석밖에 차지하지 못한 데다 지난 4일 자정까지였던 연립정부 구성 시한을 넘기면서다. 그는 지난달 6일 레우벤 리블린 대통령에게 연정 구성 권한을 넘겨받은 뒤 다른 정당들과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정당 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연정 구성에 실패했다.

리블린 대통령은 5일 네타냐후 총리에 비판적인 야권 정치인 야이르 라피드 예시 아티드 당 대표에게 연정 구성 권한을 부여했다. 예시 아티드 당은 제1야당이다.

다만 예시 아티드 당이 연정에 실패할 경우 또 총선을 치르게 된다. 이스라엘은 극심한 정치 분열 속에서 지난 2년간 네 차례 총선을 치렀다.

예루살렘=김민욱·임현동 기자, 서울=임선영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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