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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영의 시선] “법대로 하자”는 정치의 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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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법사위원장 논란 “불법 아냐”

비난 전단 살포자 고소한 대통령

스스로 만든 법에 종속되는 정치

관용ㆍ타협이란 본질로 돌아가야

중앙일보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오른쪽)를 예방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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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지키지 말자거나, 부러 어기란 얘기가 아니다. 삼권 분립의 현대사회에서 정치의 기본적 책무는 법을 제정하는 것,입법이다.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그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룰을 만들고, 시스템을 세운다. 그렇게 확립된 다양한 규칙과 제도의 정점에 법이 있다. 그러니 이미 만들어진 법을 해석하고 판단해 적용하는 사법부보다는 여러 면에서 입법부가 먼저다. 사람 나고 법 났지, 법 나고 사람 난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도 권력자들이 관용이나 협상·타협 등의 정치적 해결책은 회피한 채 법의 핵우산 속에 숨으려 하는 최근의 상황이 우려스럽다. 자신들이 탄생시킨 법에 종속되는 이런 행태는 정치의 본질에서 한참 어긋난다. 정치인 스스로가 정치의 존재 의미를 포기하는, ‘정치적 자살’에 다름 아니다.

4ㆍ7 재ㆍ보선에서 참패한 더불어민주당이 원내대표가 된 윤호중 의원의 법사위원장 후임으로 박광온 의원을 내정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신임 원내대표는 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법사위원장을 다시 가져오겠다는 입장이다. 여당 법사위원장 자리를 ‘장물’로 표현하며 박병석 국회의장에게도 협조를 요구했다. 이에 윤 원내대표는 “헌법과 법률에서 174석 정당이 법사위원장을 갖고 일을 하는 것이 불법인 근거를 찾지 못했다. 국회에서 의결된 결과를 불법·장물 등으로 표현하는 데 대해 김 원내대표는 법적 근거를 제시하라”고 맞받았다. 실제 국회는 지금껏 국회법 조문대로 굴러가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았다. 법에 규정된 예산안 통과시한을 넘기는 해가 부지기수였지만 여야가 뒤늦게라도 협상안을 도출했기에 인정받았다. 법대로 다수결 처리하면 될 일들도 여야 협의란 ‘관례’에 따라 절충의 시간을 거쳤다. 민주당이 지금 ‘법대로’라지만 과거 야당 몫 법사위원장을 챙긴 건 어느 법에 따른 건지 궁금하다. 그렇게 법대로만 외칠 거면 ‘사람’ 국회의원보다 법 해석에 능한 ' AI'가 훨씬 의정활동을 잘할 수 있다.

중앙일보

시민단체 대표 김정식씨가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최근 세간을 뜨겁게 달군 문재인 대통령의 고소 사건. 대통령이 자신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전단을 돌린 시민단체 대표 김 모 씨를 2년전 모욕죄로 고소했다. 모욕죄가 친고죄인 만큼 문 대통령이 직접 한 것인데 경찰은 고소인을 말해주지 않았다. 지난해엔 경찰이 김 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자신의 모든 것이 털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김 씨는 큰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최근 경찰이 이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것이 중앙일보에 보도되며 전모가 알려졌다. 비난 여론이 빗발쳤고 우군으로 여기던 정의당과 참여연대마저 고소 취하를 요구하자 대통령은 “감내하겠다”며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가짜 뉴스에 대한 성찰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뒤끝’을 남겼다. 곧바로 “대통령이 성찰하라”고 맞받은 김 씨도 그리 잘한 일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는 휴대전화 압수 영장을 겁내는 일반 사람일 뿐 권력자는 아니다. 전단 하나로 대통령을 축출해보겠다거나 하는 원대한 꿈을 지닌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다르다. 우선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을 지닌 정치가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한 뛰어난 변호사다. 청와대가 그의 모든 것을 보좌하고 여당이 그의 뜻을 실행하며 문파들이 뒤에서 그를 떠받친다. 김 씨와 비교해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 그런 그가 그 전까지는 가난하고 힘없는 자의 편이라던 법마저 자신의 옆구리에 끌어다 붙였다. 전단에 듣기 민망한 얘기가 여럿 포함됐다 하니 대통령이 모욕감에 치를 떨었을 만도 하다. 그러나 그저 사람들 없는 데서 욕 한 바가지 한 뒤 국민에게 "권력자인 내가 감수하겠다"고 했더라면 얼마나 멋있어 보였겠나. "국민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다. 대통령을 모욕하는 정도는 표현의 범주로 허용해도 된다"는 과거 발언을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국민을 고소하기 위해 법에 기대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송사를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얘기가 있다. 존경하는 판사 출신 법조인의 "나는 세상에서 '법대로 하자'는 사람이 제일 싫다"는 말이다. 평생 ‘법'으로 생계를 꾸려왔던 그의 이 말은 법은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는 최종 상황에서 찾아야 할 대상이라는 의미로 이해됐다. 그런데 자기가 쓸 수 있는 카드가 여럿인데다 맘만 먹으면 협상과 절충이 충분히 가능한 정치인들이 ‘법대로 하자’고만 해서야 되겠나. 정치인 스스로가 존재 의미를 포기하는데 사법부가 굳이 살려줄 리 없고, 국민이 애써 심폐 소생해주지 않는다. 차라리 법률가들로 그 자리를 채우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중앙일보

이가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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