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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사재기도, 뺨 때려도...외교관 가족이면 '괜찮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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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 192개국 비준
파견 외교관 가족에게도 면책·면세 특권 부여
'기피인물 지정' 등 페널티 부여는 가능
한국일보

지난해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중국 총영사관 폐쇄를 앞두고 직원들이 외교행낭을 건물 밖으로 옮기고 있다. 미국은 이곳 총영사관을 스파이 활동과 지식재산권 절도의 근거지로 지목하고, 이날까지 폐쇄할 것을 요구했다. 휴스턴=AP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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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영국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할 때 부인이 도자기를 대량으로 사들인 후 귀국해 카페 영업을 하면서 판매한 것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도마에 올랐다. 지난달에는 주한 벨기에 대사 부인이 한 의류 매장에서 직원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지만 법적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은 외교관은 물론 그 가족들이 접수국(외교관의 파견 대상 국가)에서 누리는 다양한 특권 때문이다. 외교 사절은 파견국(외교관을 보내는 국가)을 대표한다는 상징적 의미와 그 개인의 활동에 대한 보호 필요성 때문에 국제법상으로 다양한 혜택을 보장받고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때로 남용되는 사례도 발생한다.

외교관 가족의 개인용 물품도 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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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배우자의 '도자기 불법 수입'과 관련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를 듣고 있다. 배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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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진행된 박준영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제기한 내용에 따르면, 주영국 한국대사관의 공사참사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박 후보자의 부인 A씨는 도자기 장식품을 다량 구입했는데, 이를 국내로 들여올 때 '외교관 이삿짐'으로 넣어 들여왔다.

국제법, 구체적으로는 1961년 체결된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따르면, 외교관이나 그 가족이 거주 도중 개인용 물품으로 구매하는 물건들은 기본적으로 면세 대상이다. 외교관 가족도 외교 사절의 일부고, 그 가족이 구매하는 물건 역시 외교관이 거주하고 활동하는 데 필요한 물건으로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박 후보자의 부인이 국내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들여온 물건을 판매하는 등 영리행위를 했다는 점이다.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은 도자기 구매량이 많다며 "처음부터 판매 목적으로 들여온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박 후보자는 이에 대해 "도자기는 수집 목적으로 구매한 것으로, 판매는 의도치 않은 상황이었다"며 "관세청의 의견대로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영국서 뺑소니 저지른 외교관 가족 보호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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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벨기에대사관 페이스북에 한 외국인이 올린 한국인을 비난하는 내용의 댓글에 대사관이 '웃겨요'를 누른 모습. 연합뉴스


면세 혜택은 빈 협약에서 규정하는 외교관의 여러 특권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접수국에 위치한 파견국 대사관이나 외교 공관은 물론, 외교관의 사적인 거주지도 접수국 입장에서는 침입이 불가능하다. 접수국은 외교관의 거주지를 수색하거나 물품을 압수할 수 없다. 흔히 '외교행낭'으로 불리는, 본국과 대사관 사이를 오가는 물품 꾸러미를 접수국은 수색할 수 없고, 오히려 적극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진다.

가장 중요하고 큰 특권은 면책특권이다. 외교관은 파견국의 법령 영향 아래 있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접수국의 법으로서 이들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골자다.

최근 주한 벨기에 대사의 부인이 서울의 한 의류 매장에서 직원을 폭행한 것으로 드러나 비판이 쏟아지자 뒤늦게 사과하고 경찰 조사를 받았다. 특히 국내법으로 그를 기소할 방법은 없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불만은 더욱 거셌다. 벨기에 대사관은 현재 여론을 수습하기 위해 경찰에 협조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최악의 사례는 영국의 10대 청년 해리 던을 뺑소니 사고로 사망하게 하고 미국으로 도주한 미국 외교관 부인이자, 그 자신이 중앙정보국(CIA) 직원으로 알려진 앤 사쿨라스의 사례다.

영국 정부는 미국 정부에 사쿨라스의 인도를 요청했지만 미국 국무부는 이를 거부했고, 피해자 부모는 가해자의 영국 인도를 요청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소송을 진행 중이다. 사쿨라스 측은 뺑소니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한편 "미국에서는 처벌될 일이 없기 때문에" 인도를 거부하고 있다.

해외서 발생한 자국 외교관 범죄도 처벌한 뉴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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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미국 외교관 가족의 뺑소니 사건으로 사망한 영국 10대 청년 해리 던의 부모가 뉴욕에 도착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뉴욕=AP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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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국이 아무것도 못하는 건 아니다. 특정 외교관을 기피 인물(persona non grata)로 지정해 사실상 추방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기피 인물로 지정되면 파견국은 해당자를 빠른 시일 내에 본국으로 불러들여야 한다. 또 이론상으로는 접수국 대신 파견국의 법률에 따라서는 외교관의 처벌이 가능할 수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해외에서의 범죄를 파견국이 실제로 처벌한 예도 있다. 2017년 미국 워싱턴에서 근무하던 도중 '화장실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뉴질랜드의 주재 무관은 2019년 뉴질랜드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다.

국제법이 외교관에게 이렇게 큰 혜택을 부여하는 이유는 외교관의 업무가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각 국가의 이해 관계가 분명히 다른 상황에서 외교관이 외교 업무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접수국이 파견국 외교관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첩보, 밀수, 탈세, 돈 세탁, 심지어 테러 범죄나 살인 등 명백한 범죄에 연루된 외교관들이 면책특권을 주장하는 경우, 국가 간 관계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외교관은 실제적으로 현지 법률을 준수하고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다. 면책특권이 보이는 것처럼 실제 백지수표는 아닌 셈이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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