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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일본, 미 대북정책 ‘아전인수’ 해석…한반도 평화 또 ‘훼방’ 놓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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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폐기된 ‘북한 비핵화’, ‘CVID’ 등 고수

한겨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달 16일(현지시각)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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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북 정책 재검토’ 결과와 관련해 도 넘는 ‘아전인수’식 견해를 쏟아내고 있다. 2018~2019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좌절되는데 단단히 ‘한 몫’했던 일본의 훼방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양국 간 허심탄회한 의사소통이 절실해 보인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 회담이 이어지고 있는 런던에서 3일 오후(현지시각) 기자회견을 열어 이날 진행된 미-일 외교장관 회담과 G7 외교장관 실무만찬 결과 등을 소개했다. 모테기 외상은 이 자리에서 “유엔(UN) 안보리 결의에 따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도록 일-미가 긴밀히 연대해 간다는 뜻을 재확인했다”고 밝혔고, 실무만찬에선 자신이 논의를 주도해 참가국들이 “북한이 (핵을 포함한) 모든 대량파괴무기와 모든 사거리의 탄도미사일을 시브이아이디(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방식으로 폐기하게 한다는 목표를 견지하고, 안보리 결의를 완전히 이행해 가기로 의견을 함께했다”고 밝혔다. 모테기 외무상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바이든 행정부는 앞으로 ‘시브이아이디에 기초한 북한 비핵화’를 목표로 대북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진의를 왜곡한 일본의 ‘아전인수’식 해석일 것으로 추정된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재검토’가 끝났다는 사실을 알리며,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북의 일방적인 핵포기를 뜻하는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비핵화된 남이 북의 비핵화를 추동해 가는 ‘한반도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 of Korean Peninsula)라고 밝혔다. 이후 미 외교안보정책의 사령탑인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일 <에이비시>(ABC) 방송에서 미국의 대북 정책이 “북한을 적대하기 위함이 아니다”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블링컨 국무장관도 3일 런던 미-영 외교장관 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목표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임을 재차 강조했다. 미 국무부는 같은 날 한-미 외교장관 회담의 결과를 설명하는 자료에서도 “미-한-일 3각 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하겠다”고 적었다. 미국이 거듭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겠다고 말하고 있는데도, 일본 홀로 ‘북한 비핵화’란 표현을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이 2018년 7월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2018년 7월7일 북 외무성 대변인 담화)라는 과격한 표현으로 거부 의사를 명확히 밝힌 시브이아이디에 대한 주장도 마찬가지다. 모테기 외무상은 자신이 실무만찬의 논의를 주도해 시브이아이디 방식의 비핵화를 추진하기로 G7 외교장관들의 동의를 얻어냈다고 밝혔지만, 이를 보여주는 G7 차원의 공동문서나 미 국무부의 발표문은 나오지 않았다. 참가국들이 외교적 결례를 피하기 위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을 자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기자회견에서 ‘동의’로 둔갑시킨 게 아닌가 짐작된다.

일본이 시브이아이디에 대해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도 지난달 16일 미-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임한 기자회견에서 “미-일이 (북한의) 모든 대량파괴 무기와 모든 사거리의 탄도미사일을 시브이아이디 방식으로 폐기하게 만든다는 것에 일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옆 자리에 선 바이든 대통령은 이 용어를 일절 언급하지 않으며 양국 간에 이견이 존재함을 드러냈다.

실제, 미 당국자들은 대북 정책 재검토 작업이 마무리됐다고 밝힌 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실용적인 대북 접근’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이 북한에게 “해법을 찾아가자”고 제안한 만큼, 북-미 간 외교의 여지를 닫아버리는 시브이아이디 방식의 비핵화를 고집하진 않을 가능성이 높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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