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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엄마아들 귀농서신] 사랑하는 아들에게- 느닷없이 시작된 시골살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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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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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햇살이나 저녁노을 질 무렵에는 열매 색을 분간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수확은 더뎠고, 어깨, 팔뚝, 목 가림없이 저리며 아프고, 쐐기벌레는 왜 그리 많던지, 점심 먹고 하는 작업은 더더욱 힘에 부쳤다. 그냥 내려놓고 쉬고 싶지만, 그러면 내일 할 일이 늘어날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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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숙ㅣ괴산서 농사짓는 엄마



너는 도시에서 더 많은 걸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내려오고 싶다니, 한숨부터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네.

시골 생활은 갑작스러웠어. 초기 뇌경색이던 할머니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당신 옷을 훔쳐간다면서 집을 비울 수 없다고 밖을 못 나가시더구나. 치매라 생각했고, 할머니를 위해 서둘러 괴산에 집을 지었어. 물론 귀농하겠다는 아빠의 생각도 컸다.

그 첫해, 생각지도 않게 절임배추 일을 거들게 되었단다. 꽃을 좋아하던 엄마가 어느 집 담벼락에 하얗게 피던 꽃나무를 한 삽 얻으려고 했다가 절임배추 일을 도와달라고 요청받았던 거야. 마을에는 연세 드신 노인들만 늘어가니 팔팔하게 일할 수 있는 젊은(?) 귀농인이 무척이나 반가우셨던 모양이다. 절임배추 작업은 단순했다. 밭에서 배추를 따고, 반으로 가르고, 소금에 절이고, 건져서 씻는 일, 팔뚝이 젖는 것은 물론 앞자락까지 흠뻑 젖기가 일쑤요, 머릿속에까지 소금이 뿌려지고, 절인 배추를 건져내고 나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그 단순한 공정도 어느 하나 쉬운 건 없었어. 저녁마다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밤새 끙끙 앓아도 빠지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단다. 도시에서 온 사람은 일을 못한다는 인식을 주고 싶지 않았어.

그런 인연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 농사를 시작할 수 있었을까 싶어. 배추형님댁 트랙터로 밭고랑을 부탁할 수 있었고, 묘목을 심는 일손도 함께 보태주셨다. 마을에서 좀 외진 우리집엔 마을 방송이 들리지 않는다. 초상이 났다, 퇴비가 도착했다, 소식을 들을 수가 없어. 대소사 챙겨야 하는 마을일은 절임배추 형님이 전화로 알려주시더라. 여전히 품앗이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실감했어. 농사일의 고단함을 몸이 저리도록 아니깐, 다른 사람의 노동도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 생각된다.

도시서 살다가 홀연히, 그야말로 준비 없이 시골살이는 그렇게 시작했다. 아로니아 나무는 잘 자랐다. 순이 나고 돌아서면 훌쩍 컸다. 첫 수확 때까지 밭에 사는 일이 즐거웠다. 수확을 위해 뜨거운 8월 한달을 꼬박 매달려야 했다. 붉게 올라오는 햇살을 보며 새벽부터 밭에서 일한다. 잘 익은 열매를 골라 따야 하는데, 새벽 햇살이나 저녁노을 질 무렵에는 열매 색을 분간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수확은 한없이 더뎠고, 어깨, 팔뚝, 목 가림없이 저리며 아프고, 쐐기벌레는 왜 그리 많던지, 점심을 먹고 나서 하는 작업은 더더욱 힘에 부쳤다. 그냥 내려놓고 씻고 쉬고 싶지만, 그러면 내일 할 일이 늘어날 뿐이야.

정작 어려운 일은 수확 다음이다. 첫해부터 때마침 방송에서 주목해 2~3년은 판매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어. 풍작이기도 해서 열심히 고민하며 아로니아로 이것저것 만들어봤다. 특허도 신청해가면서 최선을 다했어. 열심히 만든 잼이니 와인이니 사람들이 찾아주니 신났었지.

그러나 대가는 성에 차지 않았어. 허리가 끊어져라 일을 했지만 수중에 남는 게 없었다. 농촌 현실이 수고한 대가를 충족시키기엔 요원하단다. 특히나 소규모 농가에서 흡족한 대가란 꿈같은 일이라는 생각, 나만의 것일까.

수확물 판매는 해를 거듭할수록 어려워졌다. 방송가 인기가 사라진 다음엔 더 혹독했어. 가공공장 신축에 수천만원 투자금도 퍼부었는데 걱정은 생각보다 깊고 아프다. 늘 통장 잔고가 없는 현실은 심하게 허탈하단다. 코로나 상황은 앞이 더 캄캄하게 만들었다. 괴산의 농부들이 모여 한달에 두번씩 열던 직거래장터를 1년 반 꼬박 열지 못했다. 수확이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또 많은 대로 걱정이야. 그렇게 견뎌온 10년이다.

동네 할머니께서 그러더구나. “이 집은 풀도 키워?” 그래도 제초제를 쓰지 않는다. 유기농을 하겠다는 것도 욕심인지 밭엔 풀이 무성하다. 봄여름가을 풀과 실랑이해도 풀이 늘 이겨. 작물에도 유행이 있고, 돈 되는 작물을 쫓아 심기도 한단다. 그럴 형편이 못 되는 소규모 농가는 많이 서글프지. 애쓴 만큼 돈도 되면 좋겠다는 속물적 마음을 굳이 감추고 싶지 않다.

그래서 한숨이 터진다. 말릴 수 없는 것 또한 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피아노 배우러 가는 일이 싫어 밥을 두 그릇씩 먹던 아이, 수업이 끝나자마자 땀을 흠뻑 흘리며 단숨에 집까지 달려와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던 아이. 하고 싶은 건 기어이 해야 하는, 너는 그런 아이지.

선뜻 오라는 말을 못하는 10년차 농부다. 결정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는 속내만 되뇔 뿐이다. 든든한 자격증 하나 따서 오면 어떨까 싶은데. 그래도 그간 해온 법 공부가 아쉽지 않겠니. 학교 다닐 때는 성적도 잘 받아 왔잖아. 아직 늦지 않았으니 학원에라도 의지해보면 어떻겠니?

※편집자 주: 도시에서 나고 자란 청년과 10년차 농부인 여성이 ‘귀농’을 주제로 편지를 교환합니다. 한칼 공모를 통해 선발된 두 모자가 이야기 나눌 귀농의 꿈, 귀농의 어려움은 이 도시의 꿈, 그 도시의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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