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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미·중 대결 시대에서 ‘중국 견제 시대’로…한국 ‘G10체제’ 주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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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 |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시진핑 시대, ‘공산당과 시장경제 결합 완성’ 대내외 선언

EU 작년 12월 ‘미국과 공동대응’ 입장 정하면서 중대 변화

‘국가 주도 경제’ 용인 못한다는 게 ‘중국 때리기’의 본질

한국 대응은 ‘동아시아 제조업 선진국’ 정체성이 기준 돼야

동아시아 생산망 유지하되 중국 불공정 시정엔 힘 보태야

G7 대체할 G10 형성에 적극 역할하면 한국의 공간 커져


한겨레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이 29일 서울 중구 한국금융연구원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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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정확히 이해해야 정확히 대응할 수 있다. 중국 경제 전문가인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미-중 갈등의 본질은 ‘중국식 국가주도 시장경제에 대한 견제’라고 진단한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이 이미 ‘견제’에 동참했고 이는 세계무역기구(WTO) 질서의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 전망한다. ‘중국 견제 시대’에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어떤 거리를 유지할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동아시아의 제조업 선진국’이라는 한국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대응해야 하며, ‘G10 체제’ 형성을 염두에 둔 주도적 역할을 해야한다고 제안했다.

지난달 29일 한국금융연구원에서 지 연구위원을 만나 시진핑 시대 중국 경제의 본질부터 ‘반도체 전쟁’과 기후변화 대응 등 세계 경제질서의 변화에 대한 분석과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들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시진핑 시대 중국은 이전과 근본적으로 달라졌는가.

“중국이 ‘시진핑 신시대’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본격적 발전을 이야기하고 있는 두가지 점이 이전과 다르다. 덩샤오핑이 1982년 12차 당대회에서 ‘중국 특색이 있는 사회주의’를 이야기한 것은 개혁개방을 시작하면서 국민들에게 ‘사회주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추진한다’는 대내용 메시지였다.

시진핑 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진행해온 사회주의와 시장경제의 결합을 완성했고 이제 ‘중국의 길’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대내외에 선언하는 것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사회주의, 공산당의 집권과 조화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이 사회주의인지 자본주의인지는 잠시 덮어두자고 했다. 장쩌민 시대에 들어서면 세계무역기구(WTO)에도 가입하고 중국의 시장경제 발전이 되돌릴 수 없는 경로로 들어섰는데 이 때 등장한 삼개대표론(三個代表論)은 시장경제와 공산당 통치가 충돌할 여지가 있고 공산당은 이 문제를 유의해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한 것이다.

후진타오 시대의 ‘과학적 발전관’은 계층·도농·지역 격차를 해결하려면 성장모델 자체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인식을 밝힌 것이고, 후진타오에서 시진핑 시대로의 전환기에 중국은 내수 중심 성장으로 성장모델을 바꿔나갔다.

2000년대 중반부터 중국의 성장률이 6~8%로 떨어졌는데 이것은 성장의 일부를 포기하더라도 공산당의 집권이 지속가능한 경제구조를 만들어가자는 인식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2010년 중국이 세계 2위 경제대국(G2)이 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선진 시장경제의 불안정 요소들이 극대화되어 노출되면서 중국의 자신감이 생겼다.

시진핑 집권 뒤 중국은 드디어 공산당과 시장경제를 조화시킬 수 있는 모델을 찾았다고 인식했고 그것이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강화 발전’으로 표현되었다. 과거에는 중국의 국가주도 시장경제 체제가 개혁해나가야 할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이대로 장점을 살려나가자는 쪽으로 바뀌었다.

‘시진핑 신시대’라는 표현은 시진핑을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같은 반열에 놓으면서, 이제 중국은 선진 시장경제로 수렴하지 않을 것이고, 시장경제의 발전이 공산당 장기 집권을 위협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에 시달리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는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

—중국이 국가주도 시장경제 모델을 계속 유지하기로 한 것이 세계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세계 2위 경제(G2)이고 곧 세계 1위 경제(G1)가 된다는 국가가 국가주도적 자본주의를 계속한다는 선언을 한 것이 글로벌 시장경제에서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포춘 500대 기업 가운데 4분의 1이 중국 기업이고 그 가운데 국유기업이 100개 정도 된다. 세계 대기업의 5분의 1이 중국 국유기업인 상황을 세계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가. 중국 국유기업들은 경영상의 어려움에 처해도 국가가 무제한으로 자본을 출자할 수 있고, 국가 주도적인 산업정책으로 이익을 본다.

중국제조2025 같은 기술 개발 지원, 해외투자 지원, 국가가 주도적으로 시장을 만들어주는 지원도 있다. 이것을 다른 나라들이 용인하기는 어렵다. 즉 중국의 국가주도 시장경제와 세계 시장경제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이냐는 일구양제(一球兩制) 문제가 등장한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은 중국의 국가주도적 체제는 이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고, 이것이 중국 때리기의 핵심 내용이 된다. 결국 중국 시장경제와 세계 시장경제 사이의 충돌이고, 중국의 국가주도적 자본주의를 인정할 수 있느냐라는 문제다. 그것이 중국이 자기의 길을 선언하면서 직면한 딜레마다.”

—중국의 첨단산업 발전도 국가주도 자본주의 모델의 효율성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국가주도적 체제가 혁신적 성과를 낳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화웨이는 국가주도적 기반에서 출발한 측면이 있지만, 알리바바나 텐센트 등 혁신을 일으켰던 많은 기업들은 민영 부문이나 외국과의 협력을 통해 나타났다. 국가주도체제의 장점보다는 중국이 굉장히 큰 시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혁신을 이뤄냈을 때 기대 이익이 클 때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무릅쓰고 도전할 수 있다.

중국 시장이 크니까 기대 이익이 크고, 미국과 대등하게 많은 유니콘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사례가 많다. 국가의 역할은 혁신이 일어난 이후에 정부 주도로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중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고속철도·태양광·풍력·전기차 등은 시장을 중국 정부가 국가전략으로 육성한 것이다. 혁신을 빠르게 산업화하고 시장과 결합시켜주는 면에서 국가의 역할이 있다.”

—미-중 갈등의 본질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중국의 국가주도적 시장경제 체제를 세계 시장경제가 수용해야 하느냐’의 문제를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스타일로 제기했다. 미-중간 문제는 무역 불균형이 아니라 체제 대결, 체제 경쟁이라는 틀을 제시한 것이다. 체제 대결의 속성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 신냉전 국면이 되는 것이다.

신냉전 국면에서는 경제적 대결만이 아니라, 미국이 정치·군사·과학기술·교육 등 자국이 우위에 있는 모든 요소를 동원하는 게 정당화된다. 미국이 중국의 체제 문제를 제기하면서 선진국들을 설득해 동맹이 만들어지는 시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냉전 이후 세계화 시대를 대체하는 꽤 장기적인 ‘중국 견제의 시대’로 이행하는 것이다. 바이든 시대 이후에도 꽤 장기적으로 중국 견제의 시대가 계속되면서 국제통상질서, WTO 체제 자체가 큰 폭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한다.”

―많은 나라들이 중국과 긴밀한 경제관계로 얽혀 있는데, 선진국들이 중국 견제에 동참할까.

“핵심은 유럽연합(EU)의 거취였다. 2019년부터 유럽연합은 중국에 대한 전략적 입장을 정하자는 논의를 했고, ‘중국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라는 문건을 공동으로 발표하면서, 중국은 협력과 협상의 파트너이면서 동시에 경제적 기술적 경쟁자, 체제의 라이벌이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입장 정리를 마친 유럽연합은 바이든 행정부 취임 직전인 2020년 12월에 글로벌 문제에 대해 미국-유럽연합이 공동 대응을 하자고 미국에 제안하면서, 중국 견제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중국 문제에 대한 유럽연합-미국 대화, 중국을 겨냥하는 게 분명한 기술동맹, 무역기술 협의체를 만들자는 구체적 제안을 했다.

유럽연합은 자신들의 이익에 기반한 독자적 판단을 통해서 중국의 국가주도적 체제가 가진 문제를 인식했다. 유럽의 입장이 정해지면서, 미중 대결의 시대가 미국-유럽연합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의 시대’로 변화했다. 매우 중요한 변화이고 한국도 여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제는 미-중 양자간 승부 문제가 아니고, 중국 견제의 시대에 중국이 얼마나 많은 비용을 치르느냐 문제이다.

중국 국가 주도체제가 세계 시장경제와 조화될 수 있는 방안을 중국이 내놓아라, 체제 개혁을 하든지 아니면 상응하는 비용을 치르라는 것이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적은 비용을 치르는 것이고, 미국, 유럽이 원하는 것은 중국의 장기적인 부상을 충분히 저지할 만큼 많은 비용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체제의 변화가 나타날 수밖에 없게 압력을 넣는 게 최종 목표일 수도 있다. 우리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전법과 접근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지난해 12월에 유럽연합이 중국과 투자협정을 맺은 것은 미국과 입장이 다른 것 아닌가.

“트럼프 시대에 미-중 갈등과 무역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중국 금융, 첨단기술, 농산물 수출입 시장에서 이익을 챙겼고, 유럽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유럽연합은 중국과 투자협정을 맺어 미국과 동등한 조건을 만들었고, 이제 미국과 유럽이 공동으로 전선을 형성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한다.

지난 2월 유럽은 신통상전략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유럽연합이 중국 견제에서 미국보다 더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유럽연합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중국의 산업보조금 등 시장을 왜곡하는 중국 국가의 경제적 행위를 견제하는 확실한 틀을 만들자면서, ‘개방된 복수국간 협정’ 추진을 제안했다.

WTO 체제는 회원국 164개국이 같은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을 추구하는 다자체제인데, 중국을 견제하는 내용에 중국이 합의할 리가 없다. 그래서 유럽연합은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는 합의한 나라들끼리 먼저 ‘개방된 복수국간 협정’을 체결해 실행하고 나중에 동의하는 국가들이 참여하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중국이 시간을 끌며 합의하지 않으면 미국, 유럽연합 등 선진국들이 먼저 가겠다는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WTO 체제의 약화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한겨레

3월18일 알래스카에서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양제츠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위원, 왕이 외교부장 겸 국무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미-중 고위급 회담이 열렸다. 알래스카/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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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미-중 관계를 대결, 경쟁, 협력의 세가지 요소가 공존하는 관계로 설명했다. 미-중의 대결, 경쟁, 협력은 어떻게 진행될까?

“기후변화나 디지털 경제 관련 이슈들은 기존 질서를 중국이 어기고 있는 영역이 아니고, 중요한 글로벌 이슈여서 질서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중국도 중요한 파트너가 되어야할 영역이다. 아직 질서가 형성되지 않아 함께 질서를 만들어 내야 하는 부분에서는 협력하고 이견을 조율해가겠지만, 중국의 국가주도적 경제 체제가 야기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견제가 진행될 것이다.

바이든 시대의 중국 견제는 트럼프가 했던 것처럼 중국 제품에 관세 매기고 특정 중국 기업과는 거래를 못하게 하는 식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중국과 거래를 안하겠다는 게 아니다.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글로벌 통상 시스템을 만들어, 중국이 기존의 체제를 가지고는 글로벌 밸류체인을 이용하는 데 비용이 들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중국 국유기업이 보조금을 받으면서 수출을 하려 하면 강한 패널티를 받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통상 체제의 등장은 우리가 각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이 될 것이다. 복수국간 연합 형태로 선진국들이 더 높은 수준의 통상 규범을 만들어놓고 다른 나라를 초정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때 한국이 참여할지에 대한 의사 결정이 꽤 빠른 시기에 이뤄져야 한다. 한국은 중국 국가주도 체제 불공정성에 문제의식을 느껴야 마땅한 이익과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참여해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자유무역이나 다자체제의 핵심이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중국 견제 시대’에 한국은 어떤 입장과 해법을 선택하는 게 좋을까.

“유럽연합의 입장이 변하고 ‘중국 견제시대’ 구도가 되면서 한국의 딜레마가 이전보다 훨씬 작아졌다. 미중 대결이 아니라, 중국 견제 전선에 어떤 입장과 수준으로 참여하느냐의 문제로 바뀌었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얼마나 거리를 두며 균형을 잡아야하느냐는 문제로 생각하지 말고 한국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한국은 동아시아에 있는 제조업 선진국이고, 주요 10개국(G10) 국가이다. 동아시아의 제조업 선진국으로서 한국은 아시아 생산 네트워크를 유지·발전시키고, 자유무역과 다자체제를 지키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

중국의 국가주도적 체제에 대해서는 한국도 선진국으로서 미국, 유럽 등과 입장이 같은 부분이 훨씬 많다. 우리는 국가적 지원을 받는 중국 기업들의 빠른 산업 추격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어렵다는 우려를 오랫 동안 해왔다. 한국은 중국에 대한 견제가 자유무역의 파괴나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 글로벌 밸류체인의 약화로 이어지지 않게 하면서도, 중국의 국가주의적 체제가 가진 불공정성을 적절하게 시정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방향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 안에는 어디에도 미국 편이냐 중국 편이냐 문제는 없다. 우리의 이익과 가치를 기준으로 어떻게 새로운 시대에 대응할 것인가하는 문제의식만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곧 개최될 텐데, 경제적으로 볼 때 이 회의가 주요7개국(G7)을 대체하는 주요 10개국(G10)체제로 발전할 수 있다. 한국은 장기적으로 G10 체제 형성을 염두에 두고 책임감 있는 의견을 내면서, G7 대신 G10이 글로벌 이슈를 논의하는 방향으로 주도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한미동맹에 대한 우려도 사라지고, 일본과의 관계도 대등해지고, 우리가 G10의 일원으로서 결정을 하면 중국의 보복을 염려할 필요가 없는 의사 결정의 자유가 생기게 된다. 장기적 전략으로서 한국이 G10 체제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간다면, 우리가 직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이 함의하는 것은 ‘선진국답게 가보자’는 것인데, 이슈에 대해 책임감 있는 태도를 가지고 때로는 비용도 치르겠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런 방식의 접근을 하다보면 우리가 참여하는 G10체제가 새로운 글로벌 최상위 포럼이 될 수 있고 그것이 우리에게 굉장히 많은 공간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아시아 밸류 체인을 유지하려면, 한국은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어떤 식으로 관리해야 하는가.

“글로벌 밸류체인 또는 동아시아 생산 네트워크 안에서 우리가 중국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지만, 그 협력구조도 계속 바뀌고 있다. 예를 들면 한중 협력의 중요한 형태였던 중소기업들의 저임금 생산기지로서의 중국의 매력은 없어진지 오래됐다. 우리 기업들은 베트남 등으로 이전하고 있다. 이러한 역동적인 변화 속에서 가치사슬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속에서 중국 견제의 국면이 두가지 측면에서 나타날 것이다.

기존의 제조업 장치산업, 중화학 공업 부분은 중국이 국가주도적 지원을 통해서 급성장 하는 분야이고, 중국의 국가주도적 체제가 밸류체인의 효과적 작용을 왜곡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거기에 대해서는 밸류체인을 망가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밸류체인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위해서 우리의 적절한 입장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또 한 측면에서 중국은 굉장히 많은 부분의 혁신을 미국과 대등하게 주도하고 있고, 미-중간 미래를 향한 첨단기술 경쟁이 지속될 것이다. 이런 분야에서는 ‘블록화’가 이뤄지고 두개의 밸류체인이 각각 발전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두개의 분리된 기술, 시장, 산업이 양쪽으로 발전해 상당 기간 병존하면서 경쟁할 수 있다고 인식하고, 두 시장을 모두 활용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될까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중국 견제’의 결과 미-중의 승자는 예측할 수 있을까?

“중국 견제가 매우 강력하고 효과적이면 중국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할 비용이 매우 커질 것이고 그러면 중국공산당에게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다. 성장이 막힌다면 공산당 체제 유지의 비용을 왜 중국 국민이 치러야 하느냐고 중국 국민이 물을 수도 있다.

그런데 중국 견제가 그렇게까지 강력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의 성장은 계속될 것이고 성장이 조금 둔화되는 양상일 것이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을 뛰어넘겠지만, ‘중국 견제의 시대’는 굉장히 오래 지속될 것이고 그로 인한 비용을 줄이려는 중국과 더 많은 비용을 부과하려는 선진국 간의 대치 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중국은 결국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수십년 뒤 결과적으로 시간은 중국편이라는 말이 맞을지는 지금 우리가 알 수 없다. 중국은 분명히 발전과 혁신 잠재력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경제 규모가 점점 커질 것이다. 그렇지만, 30년 뒤의 중국이 지금 공산당이 지키려 하는 그 중국인지 아니면 많이 변화하지 않으면 성장을 지속할 수 없는 중국이 될 것인지 지금은 판단할 수 없다. 성장만이 변수인 게 아니라 중국이 그 안에서 어떻게 변화하느냐도 승부 안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 같은 세계 경제 이슈가 어떻게 작동할지도 변수다.”

—대외환경의 악화속에서 중국공산당은 국내시장에 의지하는 내부대순환을 중심으로 하는 쌍순환 전략을 마련했다. 미국과 유럽 등의 견제가 심해지면 중국은 국내시장에 의지해 버틸 수 있나.

“내부대순환은 중국이 주도하는 성장모델이 아니라 일종의 위험 대비용 정책이다. 중국은 여전히 글로벌 가치사슬과 얽히면서 개방적 성장을 하는 게 가장 좋다. 내부대순환은 혹시 그렇게 하지 못할 만약의 경우에도 중국이 준비하고 있다는 메시지에 더 가깝다.

내부대순환의 한축은 내수시장인데 이미 성장 전략 전환을 통해서 꽤 큰 국내시장을 만들었으므로 새로 강조할 필요는 없다. 만일 고립 국면을 맞게 된다면 중국이 장기적으로 더 우려하는 것은 중국의 혁신 능력이 유지될 것인가라는 위기 의식이다. 중국은 내수시장을 통해서 새로운 혁신적 제품에 대한 수요를 끊임없이 창출하면 첨단기술 혁신 능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해법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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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12일(현지시간)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도중 실리콘 웨이퍼를 꺼내들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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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반도체 전쟁’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반도체는 중국 견제의 극단적인 사례다. 중국 반도체 기업 일부는 국유기업이거나 국가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 진흥 전략에서 보듯 기업들이 보조금이나 연구개발 지원 등 막대한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거기에 대한 미국의 견제 방식은 거칠었다. 특정한 중국 기업에 대해 다른 나라 기업들이 수출을 못하게 하고, 5G용 반도체는 아예 수출을 금지했다. 이렇게 강력한 제재가 가능했던 이유는 소수 국가가 기술과 장비를 장악하고, 생산도 소수의 미국 우방국에 집중되어 있는 반도체 산업의 특징 때문이다.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견제는 기존의 산업을 장악한 기업과 국가가 후발국의 추격을 막는 ‘사다리 걷어차기’의 측면이 있다. 공정하지는 않지만, 선발국들 입장에서는 나쁜 게 아니다. 한국도 수혜자 그룹에 들어간다. 5년 전 우리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로 우리 반도체 산업마저 추격 당하면 어떻게 하느냐였다. 이제 그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중국이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반도체는 분명히 한계가 있고, 추격 속도도 빠를 수가 없다.

반도체는 몇년 만에 완전히 업그레이드되는 산업이어서 독자기술만으로 따라올 수는 없다. 중국 반도체 산업이 일부 수입 대체를 하는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본다. 한국 기업들에는 이익이다. 미국이 우리 기업들에 직접 압력을 행사한 것은 5G용 반도체 수출 금지 등 일부였고, 한국 기업들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이 줄어들지도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 기업들에 미국 내 생산시설을 늘리라고 요구하는 데, 한국 일자리가 미국으로 이전되는 문제가 있지 않은가.

“미국은 공급망 안전을 강조하고, 중국도 국내대순환 정책에서 국내 산업 사이클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중국 양쪽으로부터 첨단산업 이전 요구가 커질 것 같다. 이 점은 우려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현명하게 대처하면 양쪽과의 신뢰관계 속에서 양쪽 시장을 다 활용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주요 물자의 안정적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만들려 하면서 다른 나라 기업들의 참여도 요청하고 있지만, 중국과 거래하면 안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트럼프 시대의 ‘미중 사이에 양자택일하라’는 태도가 바이든 시대에도 지속될 것이라 생각할 필요는 없다. 생산 시설은 필요하면 일부 이전해야 겠지만 가급적 국내에서 유지하면서 수출해서 대응하는 게 우리에게는 좋다.”

―기후변화 대응을 둘러싼 미국, 중국, 유럽연합 등의 핵심적 의도는 무엇인가.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은 탄소배출 대응이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이 서로 유리하게 판을 짜려 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중요한 전략적 목표는 기후변화 문제를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기후변화 이슈에 대해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가장 강력한 시민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고, 관련 경험과 노하우, 산업과 기술 기반이 있다.

기후변화에 이미 많은 비용을 쓰고 있는 유럽연합은 세계무역기구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 통상 규범을 만들지 않으면 유럽 기업들만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중국은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두 개의 자신감이 있다. 국가주도적 체제이기 때문에 강한 집행력으로 약속한 목표를 빠르게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또 하나는 관련 산업이 성장할 때 중국이 그 중에 많은 부분을 가져와 새로운 성장의 계기로 활용하겠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2060년 탄소중립 목표를 제시하고 자신있게 나서고 있다.

미국은 이 문제를 중국 견제에 활용하려 하고,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놓칠 수 없다는 관심이 강하다. 동상이몽의 상황이지만, 가장 많은 준비가 된 유럽연합이 이를 빠르게 통상규범화하려 하고 미국과 중국도 나름의 이유로 판을 깨지 않고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기 때문에 통상규범이 만들어질 것이다. 한국이 내부 동력이 아니라 외부 압력으로 진도를 맞춰야 하는 압력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미-중 갈등에서 대만 문제가 핵심 사안으로 떠올랐다. 한국 못지 않게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높은 대만 상황이 주는 시사점은.

“대만은 미중 갈등의 중심에 서 있어도 미국과 중국 시장을 모두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 시장에서 대만이 한국을 제치고 일본과 1~2위를 다투고 있다. 차이잉원 정부 하에서 마치 대만과 중국 관계가 최악인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아니다. 중국이 보복하거나 견제할 때 손해를 보면서까지 한 적이 없다. 대만 제품이 필요하면 여전히 사고 있다.

대만의 수출품 가운데 반도체나 전자 부품 등 중국이 필요한 제품이 많아서 중국이 대만에 쉽게 보복하지 못한다고 하는 점은 한국에도 해당된다. 사드 보복 때 한국의 대중 수출이 줄어들지 않았다. 중국 관광객이 안왔을 뿐이다. 한국도, 미국도, 중국도 각자 복잡한 사정이 있고, 한쪽 편을 정하면 모든 게 해결되거나 한쪽과는 관계가 끝나는 게 아니다. 동아시아 생산 네트워크에서 중국도 스스로 나갈 이유가 없다. 우리만 이런 구조에 종속돼 있는 게 아니라 중국도 종속돼 있는 것이다.”

minggu@hani.co.kr

지만수 연구위원은 국내 최고의 중국 경제 전문가 중 한명으로 꼽힌다.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중이던 1993년 8월 중국에 처음 간 이후 30년 가까이 중국 경제의 현장을 관찰하고 분석해하면서, 중국 경제와 한중 경제관계를 연구해왔다. 중국 인민대, 베이징대와 미국 존스홉킨스대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베이징사무소장, 동아대 교수를 역임했고,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비서실에서도 근무했다. <중국의 산업고도화 및 기업성장의 현황과 시사점> <중국의 경기순환 및 거시경제정책> 등 많은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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