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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작지만 당당한 '한 명'…어린이날 어른 돌아보게 만드는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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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개봉 로드무비 '아이들은 즐겁다'

베스트셀러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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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개봉하는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왼쪽부터)와 어린이날 아이들의 행진의 의미를 새긴 리커버 한정판을 낸 베스트셀러 에세이집 '어린이라는 세계'. [사진 CJ ENM,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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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김소영 작가의 베스트셀러 에세이집 『어린이라는 세계』(사계절)에서 초등학생 현성의 말이다.

어린이를 어른들 생각보다 훨씬 성숙한 존재로 그린 작품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어린이날인 5일 개봉하는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감독 이지원)에서도 아이들 저마다의 예리한 시선이 허를 찌른다.



천진난만 아이들의 로드무비 '아이들은 즐겁다'



‘아이들은 즐겁다’는 의젓한 아홉 살 다이(이경훈)가 친구들과 함께 시한부 엄마(이상희)를 만나러 가는 좌충우돌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8년 전 네이버에 연재된 허5파6 작가의 동명 인기 웹툰을 토대로 신인 이지원 감독이 각본을 겸해 만들었다.

영화엔 어른들이 뜨끔할 장면, 아이들이 주는 뜻밖의 위로가 가득하다. “학원도 안 다니고 맨날 놀기만 하는 주제에….” 공부벌레 재경(박시완)이 받아쓰기 만점을 받은 다이의 컨닝을 의심하며 내뱉는 말이다. 평소 1등을 강요하는 자신의 엄마에게 배운 말투다. 돌봐줄 보호자가 없어 삭막한 엄마 병실에 작은 화분을 갖다놓는 다이 마음씨는 엄마의 판박이다. “사랑해. 잘자. 벌레 물리지 말고.”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잠자리 인사를 다이는 고스란히 병석에 누운 엄마에게 돌려준다. 눈물은 꾹 참은 채 더없이 다정한 말투로. 전체 32회차 촬영 중 31회차에 출연한 이경훈의 열연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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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들은 즐겁다'에서 같은반 삼총사인 왼쪽부터 민호(박예찬)와 다이(이경훈), 유진(홍경민). [사진 CJ ENM,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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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1살인 배우 이경훈은 지난해 4월 개봉한 영화 ‘저 산 너머’에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시절을 연기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번엔 4개월에 걸쳐 치른 오디션에서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다이 역을 맡았다. 지원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심하게 인터뷰해 극중 캐릭터와 실제로도 닮은 배우를 발탁하는 오디션이었다. 이경훈을 비롯해 극중 같은 반 ‘까불이’ 민호 역의 박예찬, 할머니 껌딱지 유진 역의 홍정민 등이 모두 그렇게 뽑했다. 장면 의도를 어린이 배우에게 알기 쉽게 전하는 ‘연기 커뮤니케이터’를 두고, 촬영 3개월 전부터 시나리오 속 상황을 연극 놀이하듯 리허설해 자연스러운 아이들의 세계를 빚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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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들은 즐겁다'에서 다이 엄마를 찾으러 가려다 낯선 시골길을 걷게 된 다이와 반 친구들. [사진 CJ ENM,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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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메시지가 좋아서 이번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지원 감독은 “어린이 배우들과 함께해보니, 어른의 시선에서 아이들은 모를 거라고 생각한 부분들을 생각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었다”면서 “한편으론 어른보다 성숙해서 예상치 못한 순간 위로받기도 했다”고 돌이켰다. 실제로도 두 아이의 아빠라는 극 중 다이 아빠 역 배우 윤경호는 “이 영화는 어른들도 같이 성장하는 성장 드라마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작지만, 당당히 '한 사람' 『어린이라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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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편집자였고 지금은 독서교실을 운영하는 김소영 작가의 베스트셀러 도서 '어린이라는 세계'. [사진 사계절]


“어쩌면 아이의 세계가 더 무궁무진할 수 있고 더 펼쳐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다이 엄마로 호흡 맞춘 배우 이상희가 이번 영화에 대한 소감과 함께 닮은꼴로 든 책이 바로 『어린이라는 세계』다. 10년 남짓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하기도 한 김소영 작가가 독서교실을 운영하며 발견한 어린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새긴 책이다. 지난해 11월 출간돼 김영하 작가 등의 추천으로 역주행을 거듭하며 지금껏 약 7만부가 팔렸고, 올 5월 어린이날을 기념해 리커버 한정판이 나왔다. 영화감독 윤가은은 “김소영의 글은 어린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마법의 렌즈 같다”는 감상평을 남겼다.

“어린이를 귀엽고 돌봐야 할 대상, 재밌는 에피소드 속 주인공으로 대상화하지 않으려고 특별히 조심했다”는 작가의 의도답게, 작지만 당당히 ‘한 명’인 어린이들을 같은 눈높이에서 들여다본 세심한 관찰이 돋보인다. 이탈리아 교육자 마리아 몬테소리가 아이들에게 코풀기 수업을 해 호응을 얻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더러운 코 때문에 끊임없이 야단맞고 자존심이 상했지만, 제대로 코 푸는 방법을 몰라 애를 먹어 온” 어린이의 속사정을 헤아리는 식이다. ‘해리 포터’에 빠져 옥스퍼드에 갈지 케임브리지에 갈지 고민하는 하윤, 공을 무서워하는 선생님에게 자신은 공을 스무 번쯤 피했다고 자랑하며 충고까지 해주는 아람의 이야기에서 “어린이의 ‘부풀리기’는 ‘여기까지 자라겠다’고 하는 하나의 선언”이란 풀이를 내놓는다.



1923년 첫 어린이날 행진 재현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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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어린이라는 세계' 속 한 챕터 '내가 바라는 어린이날' 발췌. [사진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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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업시간, 다양한 체형과 신체 상태, 장애에 관한 책을 통해 내심 ‘존중’이란 단어를 가르치려던 김 작가가 “서로 몸이 달라도 ( )자”란 빈칸 채우기를 내놓고서 “같이 놀자” “반겨 주자”라고 상냥한 오답을 외친 예지에게 반하고만 일화도 나온다. 3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김 작가는 “어린이에게 어떻게 가르칠지 고심하면서 우리가 갈 길이 정해지는 것 같다. 어린이들과 함께하며 얻은 인생의 중요한 깨달음”이라고 말했다.

책 말미 ‘내가 바라는 어린이날’ 챕터에서 그는 방정환 선생이 1923일 첫 어린이날을 5월 1일 노동절로 정했던 것을 두고 이렇게 설명한다. 애초에 ‘어린이’를 명명하고 어린이날을 만든 어린이 운동가들은 노동자가 해방되듯이 어린이도 해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날 ‘해방’ 즉 ‘풀려나온’ 어린이들은 행진을 했다는 것이다. “‘어린이날’은 어린이라는 세대를 발견하고 보호하고 일으켜 세우는 날”이고 “소원을 들어주는 날에 그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다.

“어린이들의 행진이 재현됐으면 좋겠어요. 서로 축하인사도 건네고요. 평소엔 잘 보이지 않던, 서로 존중하며 힘을 합쳐야 할 동료 시민이 온세상에 보일 수 있도록 말이에요.”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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