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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사설] 지구를 지키는 작은 변화 일군 ‘구례의 툰베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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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구례중앙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지난해 11월 학교 인근 봉성로의 보행로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지구를 위한 작은 발걸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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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은 51번째 맞는 ‘지구의 날’이다. 올해는 40여개국 정상이 화상으로 만나는 ‘세계기후정상회의’가 예정돼 있어 여느 해보다 관심이 크다. 그러나 본디 지구의 날은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해상 원유 유출 사고를 계기로 이듬해 대학생들이 주도한 민간 행사가 효시다. 근래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앞장서 경종을 울려온 이들은 그들보다 더 어린 그레타 툰베리 같은 청소년들이다. 올해 우리나라에서는 전남 구례군의 초등학생들이 읍내의 ‘지구의 날, 차 없는 거리’ 운영을 이끌었다고 한다. 이대로 가면 머잖아 기후위기의 고통을 몸소 감내해야 할 당사자들의 행동이어서 그 진정성이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구례군의 이번 행사는 즉흥적인 기획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구례중앙초등학교 4학년 학생 38명이 지난해 6월부터 읍내 거리 조사와 학생·학부모 설문조사 등을 거쳐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탈탄소 교통정책을 군에 요구해서 일군 성과다. 학생들은 지난해 11월 김순호 구례군수를 학교로 초대해 ‘탄소 발자국’을 줄이고 안전한 길을 만들어달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어린이들의 행동에는 ‘지구를 위한 작은 발걸음’이라는 작은 시민단체가 함께했다. 어른들은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 체계를 다시 짜기 위한 민관협의회 구성을 촉구하며, 지난 2월부터 두달 가까이 군청 앞에서 1인시위를 이어갔다.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꾸준하고 일관된 행동을 해왔기에 ‘차 없는 거리’는 일회성 행사가 아닌 큰 틀의 정책 전환으로 이어지게 됐다. 구례군은 대중교통을 활성화하고 보행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교통 체계를 바꾸는 것을 10대 과제로 정해 ‘탈탄소 보행 중심 도시’를 향한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디딜 계획이다. 이렇듯 지역사회가 민관 할 것 없이 하나 되어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한 실천에 팔을 걷어붙인 데는 지난해 여름 전례 없는 홍수 피해를 겪으면서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것도 중요한 배경이 됐다고 한다. 아픔은 컸지만, 전화위복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견주면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은 여전히 안이하다. 기업들도 친환경 경영에 나서기 시작했지만 마케팅 수단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구례 어린이들의 행동은 정치와 경제를 친환경적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시민들한테서 나온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작은 지역사회의 귀한 사례가 전국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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