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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미얀마 군부 쿠데타의 역설…74년전 아웅산 꿈 이뤄질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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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700명 넘으며 내전 치달아/카친,카렌족등 연방군 참여할 듯/연방군 승리하면 74년전 아웅산의 꿈 가능해져

군부 쿠데타로 헌정중단 사태를 맞은 미얀마의 비상 상황이 80일 넘게 지속되고 있다.국민들의 격렬한 쿠데타 반대 시위와 군부의 무자비한 유혈 진압으로 700명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체포·구금·실종된 사람도 3000 명을 훌쩍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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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7일 미얀마 냥우에서 시위대가 군경의 진압에 맞서 방패로 몸을 보호하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군경 진압으로 48명 이상이 숨졌다.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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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측 임시 정부 "소수민족 반군들과 연방군 창설"



과거 두 차례 쿠데타의 경험을 통해 쉽게 통치권을 잡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을 군부(이하 반란군)의 기대와 달리 자유와 민주주의의 맛을 본 미얀마 국민들의 저항은 예상외로 거세다. 해외로 탈출하거나 국내에 은신하고 있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소속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세운 임시 정부 '연방정부대표위원회'(CRPH)가 지난 16일 아웅산 수치와 우윈민을 최고 지도부로 하는 '미얀마 연방공화국 국민통합정부'(이하 국민통합정부) 를 정식으로 출범시켰다. 국민통합정부는 반란군의 무력에 맞서기 위해 “소수민족 무장세력과의 연대를 통한 연방군 창설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연방군에는 미얀마민족민주주의동맹군(MNDAA), 타앙민족해방군(TNLA), 카친독립군(KIA) 외에 카렌민족해방군(KNLA)도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친 독립군과 카렌민족해방군은 이미 반란군과의 전투를 시작했다.

이번 사태가 국민통합정부의 연방군과 반란군 사이의 대규모 내전으로 치닫게 되면, 미얀마는 참혹한 살륙의 현장으로 변모하게 될 공산이 크다.



다민족국가 미얀마,소수민족 갈등의 역사 깊어



미얀마는 135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다. 소수 민족간의 정치·역사적 역학 관계가 향후 정국을 좌우할 결정적 변수다. 이들 소수 민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미얀마는 1962년 쿠데타 이후 지속적인 민족 갈등에 시달려 왔다.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은 독립을 눈앞에 둔 1946년 말부터다. 당시 영국은 미얀마를 여러 개의 민족국가로 분리 독립시키려 했으나 독립의 영웅 아웅산 장군 중심의 정치인들은 ‘하나의 버마’ 를 원했다. 아웅산 장군은 샨· 카친 등 소수 민족 지도자들과 협상, '소수민족에 대한 평등한 대우'를 핵심으로 하는 역사적인 ‘팡롱 협정’을 체결하고,영국으로부터 버마 연방 독립 약속을 받아낸다. 아웅산-애틀리 협정이다.

팡롱 협정은 미얀마 근세사의 위대한 사건이었다. 미얀마가 2월 12일을 '연방의 날'로 기념하는 이유다. 그러나 독립을 준비하던 중 1947년 7월 아웅산이 암살된다. 이듬해 독립한 미얀마는 샨 주의 소왕국 국왕인 사오 쉐 타익이 초대 대통령, 아웅산의 동지였던 우 누가 초대 총리를 맡게 된다.



네윈의 쿠데타로 반군들 무장 투쟁 격렬해져



우 누는 12년 임기 동안, 소수 민족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소수 민족들의 불만이 터져나왔고, 카렌·샨 족 등은 무장투쟁에 나섰다. 우 누 정부의 국방장관이었던 네윈은 1962년 3월 소수민족 반란으로 인한 국가위기 해소를 명분으로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후 50년 가까이 미얀마 군부는 소수 민족을 연방 구성원으로 대우하지 않고, 군부의 존재와 군사독재를 합리화시켜 주는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 소수 민족과 군부와의 갈등과 대립이 미얀마 정정 불안의 불씨를 잉태해온 셈이다.

미얀마 소수 민족 중에서 군사정부에 강한 무장투쟁을 해온 민족은 샨·카렌·카친·라카인 족 등이다.

샨(Shan) 족은 버마족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민족으로 1947년 아웅산과 함께 팡롱협정을 성사시킨 주역이었으나, 약속 위반을 이유로 일부 세력은 1958년 중반부터 정부에 대한 소규모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샨 주는 전통적인 소왕국들의 결합체로서 '샨주남부군'과 '미얀마민족민주주의동맹군'등의 무장조직이 있었다.1962년 쿠데타 직후 네윈의 군부는 샨 주를 침공, 연방의 초대 대통령 샤오쉐타익을 비롯한 핵심 지도자들을 체포하여 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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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미얀마 시민들이 지난 28일 최대 도시 양곤에서 실탄 사격을 하는 경찰에 새총으로 대응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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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황금의 삼각지대' 아편 거래 이권 노려 샨족 탄압



군부는 1988년 이후까지 샨 족 군사조직의 씨를 말리려고 집요하게 시도해 왔는데, 태국과의 국경인 '황금의 삼각지대'에서 재배되는 아편거래 이권을 장악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던 것같다. 1970년대 이후 세계적인 마약밀매업자로 군림했던 전설적인 마약왕 '로싱한'과 '쿤사'는 1980년대 이후 미얀마 군부의 비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했고, 그의 자녀들은 미얀마 굴지의 재벌로 성장했다.

카렌(Karen) 족은 중남부 카인 주와 카야 주의 산악지대에서 살아온 민족으로 인구의 약 7 %를 점한다. 식민지 시절부터 버마족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카렌 족은 팡롱협정에 참여하지 않았고, 카렌민족동맹(KNU)을 중심으로 반정부 투쟁을 지속했다. 네윈의 군부가 카렌 족에 대한 대대적 인종청소를 시도,수 천명이 살해 되었으며, 약 30만명이 국경을 넘어 태국의 산악지대로 피난했다. 태국의 치앙마이 북부 산악지대에서 볼 수 있는, 여성들이 목에 놋쇠링을 끼우고 생활하는 종족이 바로 1960년대에 군부에 의해 쫓겨 온 카렌족의 후예들이다.

카렌 민족의 무장조직인 '카렌민족해방군'(KNLA)은 군부에 대한 저항을 지속해 왔다.

카친(Kachin) 족은 오랜 세월에 걸쳐 최북단 카친 힐에서 살아 온 산악민족이다. 카친 민족도 1947년 팡롱협정에 참여하여 연방국가로의 독립에 일조를 했지만, 당초의 약속대로 평등한 대우를 해 주지 않고, 오히려 탄압받는 상황이 되자, 1960년대 초반 '카친독립군' (KIA)을 결성하고 군사정부에 대한 무력투쟁을 시작했다.

카친독립군과 정부군과의 최대 전투는 2012년에 벌어졌는데, 이 때 카친독립군과 주민 2500여 명이 살해되었으며, 10만 명 이상이 보금자리를 떠나야 했다.

라카인(Rakhine) 족은 미얀마 서북부의 라카인 주에서 살고 있는 소수민족이다. 이들은 아웅산의 팡롱협정에 참여하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연방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라카인 족은 2009년에 7000명 규모의 아라칸 군대(AA)를 창설했는데, 정부군과 싸우는 것 말고도 이슬람 세력인 로힝야(Rohingya) 족을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2016년 반군 연합체 '북부동맹' 결성되기도



1988년 제2차 쿠데타 이후로도 군사정부는 소수민족을 연방의 구성원으로 대우하는 대신, 지속적으로 반군의 거점들을 초토화시키는 전략을 사용해 왔다.그러자 각각 정부군에 저항하던 아라칸군(AA), 카친독립군(KIA), 미얀마민족민주주의동맹군(MNDAA), 그리고 북부 샨 주를 근거지로 활동하던 타앙민족해방군(TNLA)이 2016년 11월 북부동맹(Northern Alliance)을 결성하여 정부군에 대항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2016년 3월 출범한 아웅산 수치의 민주정부는 모든 반군 세력을 아우르는 평화회의를 소집했다. 수치는 미얀마 독립의 영웅이자 자신의 부친인 아웅산 장군이 1947년 소수민족 대표들과 체결했던 '팡롱 협정'을 되살린다는 의미로, 이 회의에 '21세기 팡롱'(21st. Century Panglong)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20여 개의 미얀마 주요 민족 중 17개 민족대표가 참석한 이 협상은 2016년 8월에 시작되어 2019년 까지 지속되었는데, 협상의 주요 고비마다 2011년 군최고사령관 직을 걸머 쥔 민 아웅 흘라잉의 군부는 크고 작은 무력 을 휘둘러 판을 깨고는 했다.

수치 여사는 금년 초, 재집권을 눈 앞에 둔 상황에서 “모든 정당과, 지역사회를 아우르는 국가적 평화 구축 작업에 박차를 가하겠다” 고 밝혔다.하지만 새로운 국회가 출범하는 2월 1일 새벽에 일어난 군부 쿠데타는 연방의 평화를 위한 모든 노력을 수포로 만들었다.



군부가 우세하나 내전 발발하면 승패 장담 못해



그 이후의 미얀마의 정치상황은 앞에서 언급한 그대로다.현재는 인원이나 무력 등에서 절대적으로 반란군 측이 우세하지만, 내전이 일어나면 승패를 속단할 수 없을 것이다. 내전이 장기화하면 반란군 내부의 자중지란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현재 반란군은 연방군 결성을 방해하기 위해 다양한 협박과 회유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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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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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전에서 연방군이 승리하면, 미얀마 국민들과 세계의 자유민들은 1947년 아웅산이 구상했던 진정한 연방국가가 70여 년 만에 재탄생되는 기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얼마나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미얀마 국민들의 투쟁을 고독한 투쟁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앞으로 미얀마에서 펼쳐질 상황은 유엔이 진정한 국제평화기구인지, 그리고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진정한 자유세계의 지도자인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조용경 전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





☞조용경=포스코맨이다.서울대 법대 졸업후 포항제철에 입사해 포스코 건설 부사장,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을 지냈다. 2013년 미얀마를 첫 방문한 게 인연이 돼 지금까지 19차례에 걸쳐 14개 주를 여행,미얀마 전문가가 됐다. 여행취재기를 모은 책『뜻밖에 미얀마』를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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