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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소수민족 “군부 완전히 끌어내려야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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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국 유학생 찬 빅 재(30)는 미얀마 소수민족 친족이다. 2017년 한국으로 와 인천대 정치외교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지난 2월 1일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자 그는 2월 7일 미얀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친족 유학생 모임인 ‘친족 청년단체(Chin youth organization)’를 만들었다. 단기간에 전세계 친족 유학생 500여명이 가입했다.

불교도가 90%에 가까운 미얀마에서 친족은 주로 기독교를 믿는 소수민족이다. 전체 인구는 150만명으로 미얀마 서부 친주에 많이 산다. 주류 민족인 버마족과는 언어도 다르다. 찬 빅 재는 “한국인들은 로힝야 문제만 알지만, 친족을 포함한 다른 소수민족도 군부에 학살당했다”고 말했다.

찬 빅 재는 2016년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이 이끄는 문민정부가 들어섰을 때도 소수민족을 배제하는 ‘반쪽짜리’ 민주 정부라고 봤다. 군부에 상당한 권력을 보장하는 2008년 헌법을 그대로 두는 한 “군복에서 민간인 복장으로 옷만 바꿔 입은 정부”라고 했다. 2008년 헌법은 군부에 전체 의석의 25%를 자동 할당하고, 군 통수권과 비상사태 선포권을 군 최고사령관에게 부여한다.

찬 빅 재는 쿠데타 이후 수지 고문이 이끌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소수민족들과 연합해 만든 민족통합정부(NUG·National Unity Government)를 지지한다. 친족 청년단체 대표 자격으로 21일 국회와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정부에 NUG를 인정해달라고 촉구했다. NUG는 소수민족과의 연방연합을 추구하고, 2008년 미얀마 헌법 무효를 선언했다.

찬 빅 재는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해 국제사회와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군부를 끌어내리고 헌법을 개정해야 진짜 민주주의”라면서 “새 정부는 소수 민족에게 평등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찬 빅 재를 21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경향신문

찬 빅 재(chan bik ceu) ‘친족 청년단체’ 대표가 21일 청와대 앞에서 한국 정부에 미얀마 국민통합정부(NUG)를 인정해달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뒤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찬 빅 재 대표는 친족 전통의상을 입고 있다. 찬 빅 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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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에 왜 반대하나.

“이전에도 미얀마는 온전한 민주국가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과도기를 거쳐 언젠가는 민주국가가 되리라는 희망이 있었는데, 쿠데타로 민주주의로 가는 길마저 중단됐다.”

-2016년 문민정부 출범 당시에 든 생각은.

“2016년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이 이끄는 첫 문민정부가 들어섰지만, 헌법을 바꾸지 않고 집권했기에 한계가 있었다. 군복에서 민간옷으로 옷만 바꿔 입은 정부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일부 소수민족들은 투표권을 박탈당했다. NLD가 질 것 같은 지역에는 투표소를 설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많은 친족이 NLD에 지지를 보냈다. 소수민족에게 평등권을 부여해야 한다.”

-친족도 군부의 탄압을 받았나.

“한국인들은 로힝야족 학살 문제만 알지만, 로힝야 학살은 가장 최근 사건이고 그 전엔 친족도 학살당했다. 내가 5살이던 1996년 아버지가 친족 탈영병을 도왔다는 이유로 군부가 우리 집에 들이닥쳐 총을 쏜 적이 있다. 온 가족이 이사해야 했다. 미얀마 경찰이던 외삼촌도 친족 반군을 몰래 도왔다는 이유로 박해받았다. 외삼촌 가족은 2000년대 초반 인도로 도망쳤고, 현재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스스로 차별받은 경험이 있나.

“내가 만달레이대학에 다녔는데, 택시 기사가 나한테 ‘미얀마 사람인데 왜 미얀마 말도 잘못하냐’고 따지더라. 친족 중에는 기독교도가 많은데, 기독교도는 차별받는다. 정부는 불교 사원 허가는 쉽게 내주지만, 교회 건설은 허가를 잘 내주지 않는다. 인간적으로 모멸감을 주기도 한다.”

-NUG를 왜 지지하나.

“NUG는 소수민족 자치권 인정, 연방연합 민주주의 국가 건립, 평등권 보장이라는 세 가지 소수민족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였다. 다만 CRPH나 NUG의 약속에 의구심을 보내는 소수민족도 있다. 수지 고문은 로힝야족을 미얀마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은 전례가 있다. 구금된 수지 고문이 나중에 돌아와서 ‘나는 연방연합에 동의한 적 없다’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수지 고문을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로 높이 평가하지만, 우리는 수지 고문이 있든지 없든지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지도자 한 사람에게 너무 의지해선 안 된다. 한 사람만 따르면 평등권은 요원해진다.”

-쿠데타 이후 가족이나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나.

“미얀마에 있는 여동생은 목숨을 걸고 쿠데타 반대 시위에 나간다. 의대생인 남동생은 다친 시위대를 몰래 치료하고 있다. 친구들은 속속 반군에 입대했다. 군부가 쏜 총에 맨몸으로 맞고 죽느니 조잡한 무기라도 들고 시위대를 지키겠다고 한다. 걱정으로 밤에 잠도 못 이루는 상황이다.”

-앞으로 계획은.

“국제사회에서 NUG를 인정하라는 요구를 해나가겠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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