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부동산 민심=종부세 민심’?…민주당, 원칙없는 정책 선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여당, 보유세 완화 법안 발의

종부세 기준 공시가 9억→12억

작년 10월 “손 안 댈 것” 발언 무색

‘집값 안정’ 민심 역행…“시장에 잘못된 신호”


한겨레

서울 잠실의 아파트 단지. <한겨레> 자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4·7 재보궐선거에서 확인된 ‘부동산 민심’에 부응한다는 명분으로 부동산 정책 방향 전환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인하,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수정, 주택담보대출 확대 요구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정부도 종부세 개편과 대출 규제 일부 완화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어 부동산 정책의 기조 변화가 가시권에 들어온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미세 조정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뚜렷한 원칙 없이 세제와 금융을 아우른 정책 변화를 가져올 경우 파장이 우려된다고 지적한다.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줘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자산 격차를 더욱 키울 수 있어서다.

“보유세 완화하려는 목표 불투명”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20일 종부세 부과 기준을 상향 조정하고 재산세율을 일부 인하하는 내용을 담은 종부세법·재산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종부세 대상을 다주택자의 경우 현행 공시가격 합산 6억원 초과에서 7억원 초과로 올리고, 1주택자의 경우 공시가격 9억원 초과에서 12억원 초과로 상향했다. 같은 당 서영교 의원은 이날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공시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는 것 다시 살펴보고 제자리잡게 해주는 게 정부가 해야할 대책”이라며 보유세 인하를 촉구했다. 앞서 같은 당 이광재 의원은 “종부세 부과 기준 대폭 상향”을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이낙연 대표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종부세에 손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보유세 강화를 강조하던 기존 태도와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홍남기 국무총리 대행(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투기 억제와 공급 확대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킨다는 정책 기조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되,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과도하다는 지적이 있어 살펴보고 있다”고 말해 정책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부동산 시장 안정화와 투기 방지를 위해 종부세율·공시가격 인상 등 보유세를 강화해왔다. 정준호 강원대 교수(부동산학)는 “부동산 보유세 강화는 과세 형평성 제고와 주거 안정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추진할 과제”라며 “민주당이 정책을 뒤집는다면 마땅한 이유나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악화한 양극화가 보유세 완화로 더욱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참여연대는 전날 논평에서 “종부세 완화 주장은 부동산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는 현재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다만, 1주택자에 대한 세부담의 완화는 고민해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소득이 없어도 보유세가 부과돼 조세 저항이 클 수 있어, 1가구 1주택이 아닌 1가구 1실거주주택에 대해선 세부담을 줄여줄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홍순탁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도 “소득이 없는 경우 종부세 과세이연(과세시점을 늦춰줌)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출 규제 완화, 잘못된 시그널 줄 수도”


민주당은 또 청년층 등 서민·실수요자에 대한 담보인정비율(LTV) 우대폭을 확대하고 그 대상을 넓힐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당대표 후보로 나선 송영길 의원은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에게 엘티브이와 총부채상환비율(DTI)를 최대 90%까지 풀 것을 요구한다. 엘티브이는 주택가격 대비 대출액 비율을, 디티아이는 연소득 대비 주담대 원리금 상환액을 말한다. 현재는 공시가격 9억원 이하 주택의 엘티브이는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는 40%, 조정대상지역은 50%, 기타 지역은 60%다. 디티아이는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는 40%, 조정대상지역 및 그외 수도권은 50%다. 정부는 청년층을 포함한 서민·실수요자에 대해서는 각 10%포인트를 우대해주고 있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이달 중 발표 예정인 가계부채 안정화 방안에 청년층 등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에 대한 대출규제 완화 방안을 포함시킬 예정이다.

생애최초구입자에게 대출의 문턱을 낮춰주는 정책방향이 전혀 엉뚱한 것은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엘티브이는 기본적으로 주택가격의 80%까지 허용해준다. 우리나라도 향후 정상화할 필요가 있지만, 그 시점이 문제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생애최초구입자에게 엘티브이 한도를 올려주는 방향은 원칙적으로 맞다”면서도 “시장에 시그널이 잘못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지금은 집값을 하향안정화 시키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정부여당의 정책은 지금의 집값 수준을 기정사실화하려는 것 같다”며 “청년층에 대한 대출규제 완화가 주로 부유층 자녀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공시가격 현실화 되돌리면 앞으론 못해”


국토교통부는 여당 일각에서 거론되는 공시가격 속도조절이나 일부 지방차지단체장들이 주장하는 공시가격 결정권의 지자체 이양 등은 현재로선 검토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국토부는 오는 2025년~2035년까지 부동산 유형별로 다른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을 단계적으로 90%로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지난해 11월3일 발표했다. 이 계획을 보면, 올해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70.2%인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주택 가격 수준에 따라 5~10년에 걸쳐 현실화율 90%에 도달하게 된다. 그밖에 단독주택은 7~15년, 토지는 8년에 걸쳐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90%선에 이르는 로드맵이 제시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부동산 공시가격과 시세의 격차는 과거 시세 상승폭보다 공시가격 인상폭을 낮춰왔던 게 누적된 결과로, 이를 다시 되돌린다면 공시가격 현실화는 요원해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공시가격 논란은 사실 관계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본다. 공시가격은 정확히 매기고 세금이나 각종 부담금은 과표나 부과 기준 등으로 충분히 조정할 수 있는데도 마치 ‘공시가격 = 과세 기준’인 것으로 오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위원(법무법인 위민 변호사)은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19%나 오른 것은 집값 상승폭이 컸던데 따른 결과로, 올해 현실화율은 지난해보다 고작 1.2%포인트 높아졌을 뿐”이라며 “공시가격 조사는 정확하게 이뤄져야 하고 세율이나 부담금 등 적용은 유연하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정훈 최종훈 박현 기자 ljh9242@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esc 기사 보기▶4.7 재·보궐선거 이후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