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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모병제 서두르자”vs“일자리 기회로 보나”…격화하는 남녀평등복무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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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이미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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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헌신한 젊은 남성의 희생을 우습게 본다는 생각이 든다. 군대를 여성 일자리 창출 기회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30대 남성 장모씨)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9일 오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남성 중심의 징병제는 성차별의 큰 근원으로 여성의 일자리 확대라는 측면에서 군인은 매우 좋은 일자리”라고 발언한 것에 대한 30대 남성의 반응이다.

여성 운동가 출신이자 국회 여성가족위 간사인 권 의원은 이날 “모병제 도입을 서두르고 싶다”면서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설문조사를 인용했다. 그는 “여성 53.7%는 자신들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며 “20∼30대 여성도 54∼55% 정도가 찬성한다”고 했다.

징병제는 현재의 제도처럼 국가가 강제적으로 병역의 의무를 지우는 의무 병역 제도다. 징병제는 직업 군인으로 지원한 사람들을 모집해서 군대를 유지하는 제도다.



‘남녀평등복무’ 다차원적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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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장병 이미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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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의원뿐 아니라 박용진 민주당 의원 등 최근 여권에서 “군 가산점 재도입” “남녀평등복무” 등 ‘젠더와 군’에 대한 이슈를 잇달아 언급하면서 온라인상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19일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남초 커뮤니티 회원이 올린 것으로 보이는 이 청원에는 20일 오후 현재 12만여명이 동의했다. 청원인은 “이미 장교나 부사관으로 여군을 모집하고 있는데 여성의 신체가 군 복무에 적합하지 않다는 건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적었다. 이어 “성 평등을 추구하고 여성의 능력이 결코 남성에 비해 떨어지지 않음을 모두가 인지하는 현대사회에서 병역의 의무를 남성에게만 지게 하는 것은 매우 후진적이고 여성 비하적인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여초 커뮤니티에선 지난 16일부터 여성 징병 관련 설문조사도 진행됐다. 작성자는 “개인적으로 차라리 군대 가고 싶다”며 “우리나라는 휴전국인데 남자들이 군대에서 배우는 생존지식을 여자들만 안 가르쳐주고 남자들이 군대를 통해 받는 혜택을 여자들은 애초 선택할 권한조차 없다”고 했다.

남녀들의 갑론을박에는 군 복무에 대한 시각차가 나타난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 ‘군대를 통해 받는 혜택’ ‘일자리 창출 기회’ 등 각자 처한 위치와 상황에 따라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



2030 “모병제 논의할 때. 표심 잡기용은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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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에 훈련 중인 장병들이 물을 뿌리며 열을 식히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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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란과 관련해 이모(30·여)씨는 “남녀차별 이야기가 나오면 남성들이 여성들을 향해 ‘군대를 안 갔다 와 그렇다’고 공격하는 걸 보면서 사회적 갈등 비용을 줄이는 차원에서라도 모병제를 찬성해왔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모병제 카드를 들고나오는 게 여당에 등 돌린 ‘이남자’(20대 남성)의 표를 끌어오려는 전략처럼 비쳐 거부감이 든다”고 지적했다.

최모(28·여)씨도 “병역의 의무를 남성만 져야 한다는 생각을 바꿀 때가 왔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젠더 이슈를 선거에 이용하는 느낌이 들어 불편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김모(36·남)씨는 “남성들은 가장 꽃다운 나이에 2년 동안 강제로 군대에 간다. 요즘 군대가 많이 편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가혹 행위 등이 발생한다는 보도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제대 후 ‘다시 군에 끌려가는 꿈을 꿨다’는 게 우스갯소리 같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수준인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군 가산점 제도도 폐지되는 등 나라가 남성들의 청춘을 빼앗는 데 대한 보상조차 없어지고 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에서 여성을 소외시키지 않는 게 진정한 남녀평등”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한 군 가산점 제도를 다시 공론화하는 데 반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모(31·남)씨는 “군대에서 허송세월했다거나 군대를 다녀왔기 때문에 취업에 있어 여성보다 불리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정치권에서 자꾸 표심 잡기에 페미니즘을 이용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군 복무를 희망하는 여성에게 입대 기회를 주고 젠더 갈등과 무관하게 장기적으로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남자가 군대 가서 고생하니 여자도 해봐야 한다’는 논리는 일차원적이고 유치하다”고 말했다.

여성의 군 복무에 대한 현실적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한모(29·여)씨는 “장기적으로 모병제로 가는 게 맞지만, 예산 문제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당장 군인들은 최저시급도 못 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군대에 안 가는 이들이 세금을 더 낸다거나 여성은 공중보건의나 사회복지시설에서 대체복무를 하는 등의 사회적 논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지혜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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