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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韓 공기업 부채, 주요국 중 최고…‘도덕적 해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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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공기업, 펀더멘털 약하면서 부채만 많아”

공기업도 정부처럼 국회 동의받아서 빚내야

중앙일보

한국 공기업, 부채 많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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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기업이 갚을 능력도 없이 빚을 내 세계 최고 수준의 부채를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 따라 정부의 재정 건전성도 악화한 가운데, 공기업 부채엔 이미 빨간불이 들어와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진단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일 발표한 ‘공기업 재무건전성 강화 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비금융공기업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23.5% 수준이다. 같은 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2.8%)을 2배 가까이 웃돈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이 집계한 공식 비교 자료를 보면 한국 비금융공기업 부채는 GDP 대비 20.6%를 기록했다. 일본(15.8%)ㆍ캐나다(9.1%)ㆍ영국(1.3%) 등 자료가 존재하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높다.

빚이 많아도 갚을 능력이 된다면 문제가 없지만, 한국 공기업은 건전성과 수익성 모두 약하다는 게 KDI의 지적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황순주 KDI 연구위원은 “공기업 상당수가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약하면서 부채만 많다”며 “공기업 부채는 유사시 정부가 책임질 수밖에 없어 사실상 정부 부채와 크게 다를 바 없는데, 정부 부채와는 달리 관리와 통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한국석유공사는 지난해 상반기 부채가 자산 규모를 넘어서며 1979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한국광물자원공사는 2016년부터 이미 자본잠식 상태였다. 최근 4년 새 잠식된 자본의 크기가 4배 이상으로 불었다. 이들 자원공기업 외에 다른 공기업도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건강ㆍ복지ㆍ사회 서비스 등 지출 부담이 커져 재무 구조가 악화할 것으로 KDI는 전망했다.



왜 한국 공기업은 부채 많나



KDI는 정부가 공공사업을 위해 공기업 자금을 과도하게 끌어다 쓴 점을 문제 삼았다. 보고서는 “공기업 부채와 정부 부채를 비교하면 공공사업 추진하기 위해 자금을 조달하는 주체가 어딘지 알 수 있다”며 “비금융공기업에 대한 의존도는 48.8%로 높다”고 밝혔다. 일반정부 부채와 견준 공기업 부채의 규모가 50%에 가깝다는 의미다. 2위인 멕시코(22.8%)와도 격차가 컸다. 호주(12.6%)ㆍ일본(6.8%)ㆍ영국(1.4%) 등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월등히 차이가 난다.

KDI는 또 “공기업 부채는 주로 공사채 발행 방식으로 생겨난 빚”이라며 “기업은 은행 대출, 채권 발행 등 여러 방식으로 자금을 빌리는데 한국 공기업은 부채의 약 50% 이상을 공사채 발행으로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공사채는 공기업이 고유 사업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찍어내는 채권이다.

문제는 공기업이 공사채를 발행하면서 정부의 암묵적인 지급 보증 혜택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공기업은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와 같은 신용등급을 받고 있다. KDI는 “특히 일부 에너지 공기업과 국책은행이 발행하는 공사채는 원래 정크본드(투기등급 채권) 수준에 불과하지만, 정부의 암묵적 지급보증에 힘입어 국채 수준의 안전자산으로 탈바꿈했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암묵적인 보증이 이어지면 공기업과 정부 모두에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게 KDI의 지적이다. 경영이 어려워져도 정부의 구제금융이 보장됐다고 인식한 공기업은 재무 건전성과 수익성을 개선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도 재정적 부담이 뒤따르는 사업을 위해 발행이 비교적 쉬운 공기업 부채를 이용하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기재부 “공기업 담당 범위 넓어서 부채 비중 높아”



KDI는 공기업이 상환 능력을 넘어 발행하는 공사채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공사채 채무를 국회 동의가 필요한 국가보증채무로 산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가보증채무는 국회의 동의를 거쳐 기획재정부 장관이 명시적으로 보증하는 채무다. 빚을 내려면 왜 국가보증이 필요한지 입증해야 하고, 타당성이 충분하지 않은 사업엔 빚을 낼 수 없다.

또 ‘채권자-손실분담형’(베일인ㆍbail-in) 공사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사채를 발행한 기관의 재무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하면 해당 채권이 그 기관의 자본으로 전환되거나 원리금 지급 의무가 사라지는 방식을 뜻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공기업의 부채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공기업의 자산과 당기순이익도 함께 늘고 있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한국은 에너지ㆍ철도ㆍ의료 등의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 주요국보다 공기업이 담당하는 범위가 넓어 부채 수준이 높다고 설명했다. KDI의 조언에 대해 우해영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장은 “공사채를 국가보증채무로 끌어안으면 공기업이 빚을 낼 때 오히려 국가에 의존하게 될 수 있다”며 “공공기관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채이기 때문에 국가가 대신 지급할 것이라고 연결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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