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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28년 전엔 "핵폐기물 해양방류 반대"... 역사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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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1993년의 러시아와 2021년의 일본

오마이뉴스

▲ 민중공동행동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이 입주한 건물 앞에서 일본정부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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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원전 오염수의 해양방류 결정이 특히 비판을 받는 것은 그것이 부득이한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원자력발전소 주변에 빈 땅이 많아 보관할 여력이 아직은 충분하다. 오염수를 시멘트와 혼합해 고체화한 뒤 콘크리트 탱크에 보관하는 등의 대안도 추천되고 있다. 그런데도 부지 선정, 건설 기간, 비용 문제 등을 빌미로 보다 나은 방식을 거부하고 있으니, 비판이 한층 가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미국과 함께 일본을 지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IAEA가 그런 입장을 취하는 것은 그것이 가장 안전한 방식이기 때문이 아니다. 비용 문제를 감안할 때 가장 '현실적'이라는 판단에서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다. IAEA가 인류 안전이 아니라 일본 재정을 염려해주고 있는 것이다.

비용 문제 등을 이유로 해양오염을 정당화하는 일본의 태도는 28년 전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그때 일본은 해양방류를 적극 반대하는 쪽에 있었다. 1993년의 일본은 마치 전도사처럼 '핵폐기물을 해양에 방류해서는 안 된다'는 구호를 역설하는 나라였다.

일본, 1993년 러 핵폐기물 동해 폐기에 분노

그해 2월 26일, 영국 채널4 TV가 충격적인 보도를 했다. 러시아 해군이 한국과 일본 사이의 동해에 핵폐기물을 버리고 있다는 보도였다.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에 나온 이 보도에 대해 2월 28일자 <조선일보> 기사 '러, 핵폐기물 동해 폐기'는 이렇게 전했다.
"러시아 해군이 잠수함의 낡은 원자로를 포함한 핵폐기물을 비밀리에 동해에 버렸다고 영국의 채널4 TV가 26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이달(의) 한 보고서를 통해 국제해양협약에 위배되는 이 같은 핵폐기물 처리의 세부 내용을 보고 받았다면서, 그러나 이 세부 내용이 공표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방송은 동해와 오호츠크해 그리고 캄차카반도의 태평양 해역 끝부분 등 10개 핵폐기물 유기 지역이 보고서에 포함된 것으로 전했는데, 잠수함의 원자로를 바다에 처분하는 것은 런던핵폐기협약에 의해 금지돼 있다."

이 보도는 1개월 뒤 러시아 정부의 공식 인정으로 확인됐다. 3월 26일자 <경향신문> '핵폐기물 동해 유기, 러시아 공식 인정'은 "구소련과 러시아는 지난 59년부터 한국의 동해를 비롯해 오호츠크해, 북태평양, 북극해의 일부인 바렌츠해에 원자력 잠수함 쇄빙선의 노후 원자로 등 방사성 폐기물을 그대로 바다에 버린 사실을 인정했다고 일본의 교도통신이 25일 모스크바발로 보도했다"고 한 뒤 러시아 당국자가 공식 인정한 사실을 전했다.

1993년 상반기의 한국에는 국민적 이목을 사로잡을 만한 뉴스들이 많았다. 2월 25일에는 1961년 5·16 쿠데타 이후의 첫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고, 3월 8일에는 박정희가 군부 장악을 목적으로 조직하고 전두환이 12·12 및 5·17 쿠데타에 활용한 군부 사조직 하나회에 대한 숙청작업이 전격 개시되고, 3월 12일에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함에 따라 제1차 북미 핵위기(북핵 위기)가 촉발됐다. 특히 북미 핵위기는 그 뒤 계속해서 한국인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일본에서도 1955년 이래 장기 집권한 자유민주당(자민당)이 7월 18일 중의원 선거에서 참패를 당하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이처럼 일본도 격동을 겪었지만 한국보다는 덜했다. 그래서인지 러시아의 해양 폐기에 대한 분노가 한국보다는 일본에서 더 강했다. 한국에서도 분노가 표출됐지만, 일본보다는 덜한 편이었다.

러시아가 핵폐기물을 코앞에 갖다 버린 일에 대한 일본인들의 분노와 공포심은 먹거리를 소재로도 표출됐다. 러시아에 대한 분노가 1993년 내내 계속 확산되면서, 생선회를 포함한 어류를 더 이상 먹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일본인들의 뇌리를 사로잡았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생선회도 방사능에 오염된 게 아니겠느냐는 게 일본인들의 걱정거리였다.

그해 10월 20일자 <조선일보> "'방사능 생선회 먹게 됐다' 들끓는 일본열도"는 구보타 마나에 경제기획청 장관의 말을 인용해 "생선요리를 선호하는 일본인들의 의식을 감안, 구보타(久保田眞苗) 경기청 장관은 19일 동해에서 수확하는 생선류의 안전성에 대해 조사하고 싶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한국에서도 분노와 공포심이 일었지만, 위와 같은 일본의 반응은 한국인들의 우려를 한층 더 확산시키는 기능을 했다. 10월 21일자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에는 '핵 생선'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고, 임용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은 11월 8일자 <동아일보>에 기고한 '핵 공포 과민성 신드롬'에 "러시아가 버린 핵폐기물 때문에 동해안 바닷가 횟집에는 손님이 뚝 끊겼다는 소식이고, 생선을 먹어도 별탈이 없는지를 묻는 일반 시민들의 문의 전화도 심심찮게 걸려오곤 한다"고 썼다.

일본 무시한 러시아... 일본의 분노와 치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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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핵시민행동 소속 활동가와 시민들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출 결정을 규탄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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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과 관련된 14일자 <산케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 고위 당국자는 "중국이나 한국 따위에는 듣고 싶지 않다"며 '한국·중국 따위의 항의'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했다.

1993년에 일본이 특히 분노했던 것은 러시아가 '일본 따위의 항의는 듣고 싶지 않다'는 식의 태도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그해 10월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항의를 재차 확인하고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행동을 보인 것이 일본인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

방사능 생선회를 언급한 위의 <조선일보> 기사는 "특히 일본이 기분 나빠하는 점은 지난 12일의 러·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측이 옐친 대통령에게 핵폐기물 투기 즉시 중지를 요구하고 동경선언에 '심각한 우려'를 명시하는 데 합의했음에도 1주일도 안 돼 다시 핵폐기물을 버렸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일본의 거듭되는 항의를 받은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에 발표된 도쿄선언에 핵폐기물 투기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담는 일에 합의했다. '심각한 우려'는 도쿄선언에 들어간 표현이다. 이렇게 해놓고도 러시아는 그달 16일부터 해상 폐기를 재개했다. 10월 17일자 <동아일보> 1면 톱기사의 제목은 '러, 동해 핵폐기 재개'다.

러시아는 '일본 따위의 항의는 듣지 않겠다'는 식으로 행동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더욱 더 자존심이 상했다. 정상회담에서 약속해놓고도 며칠 만에 다시 해양 투기를 재개했으니, '일본 따위'를 러시아가 얼마나 무시했는지 느낄 수 있다.

더 대단한 것은, 일본이 그런 러시아에 대해 한편으로는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성인군자' 같은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화를 꾹 참고 러시아를 '계도'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일본은 한국 등 이웃나라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한편, 해양환경에 관한 최초의 세계적 협약인 1972년 런던협약을 1996년 10월에 개정하는 데 기여했다. 위의 기사에 인용된 '런던핵폐기협약'을 업그레이드하는 일에 적극 나섰던 것이다.

1972년 협약이 투기'금지' 물질을 부속서에 규정했다면, 1996년 협약은 투기'가능' 물질을 부속서에 규정함으로써 폐기물 투기를 더 까다롭게 만들었다. 1972년 협약이 바다에 대한 투기를 금지했다면, 1996년 협약은 내해에 대한 투기도 금지했다. 이에 더해 1996년 협약은 분쟁해결과 손해배상 등도 규정했다. 러시아에 대한 분노와 당혹이 일본을 움직여 런던협약의 업그레이드라는 결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일본의 노력은 그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러시아가 바다에 버리지 않고 육지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까지 했다. 이 일은 런던협약 개정 전에 있었다. 1993년 12월 10일자 <조선일보> '핵폐기물 육지 처리 합의'는 이렇게 보도했다.
"일본과 러시아는 9일 러시아의 핵폐기물 처리를 위해 육지에 핵폐기물 시설을 설치할 필요성이 있다는 데 합의하고 구체적인 실무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양국 관리들은 이날 회의에서 육지에 핵폐기물을 저장 및 처리하는 시설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하고, 차후에 실무급 회의에서 시설 건립 의사와 비용, 일본의 협력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일본은 러시아가 자국을 무시하고 핵폐기물을 코앞에 버린 일로 인해 분노와 치욕을 경험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에 대한 지원 방안을 논의하고 '육지에 버려달라'고 호소하기까지 했다. 그랬던 일본이 지금은 자국이 겪었던 것 이상의 고통을 남북한과 중국에 전가하려 하고 있다. 28년 전과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인격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에도 있다.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이미 충분히 경험한 일본이, 그 일로 인해 분노와 공포심뿐 아니라 외교적 치욕까지 겪은 일본이 이웃나라들에 훨씬 더한 고통을 전가하려 하고 있다. 후쿠시마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가 부득이한 결정이 아닌데도 그런 결정을 쉽게 내린 일본의 국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김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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