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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자살률, 절반으로 낮추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자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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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00만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의 저자. 그러면서 과학잡지 ‘네이처’에 논문을 실을 수 있는 학자.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과학의 언어’와 ‘대중의 언어’를 함께 잘 구사하는 몇 안 되는 과학계의 인플루언서다. 2009년 그를 ‘차세대 글로벌 리더’로 꼽은 다보스포럼의 눈은 정확했다.

정 교수를 직접 만나 대화를 하다 보면 놀라게 되는 것이 또 있다. 사회에 대한 높은 식견이다. 그의 사회에 대한 고민은 치열하다. 당장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수십년째 자살률 1~2위를 다투고 있다. 정 교수는 인간이 의사결정을 어떻게 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다. 그의 연구는 대한민국을 자살공화국에서 벗어나도록 할 수 있을까. 정 교수와 e메일로 인터뷰를 했다.

경향신문

/어크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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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만화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집에 만화책이 가득한 다락방이 있을 정도로 만화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신문수 화백의 <로봇 찌빠>와 윤승운 화백의 <맹꽁이 서당>을 합치면 지금의 정재승이 생각날 정도다. 어린 시절, 만화를 즐겨 보았나.

“그 시절 다들 그랬겠지만, 만화책을 무척 좋아했고, 야구를 아주 좋아해 늘 학교운동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신문수, 윤승운 선생님의 만화는 재미있기도 했지만 마치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만화책을 읽고 상상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 시절엔 ‘몽상’이 취미였다. 지금도 만화는 뇌공학과 인공지능 연구에 강력한 영감을 주는 지적 자양분이다. 지금도 산책과 몽상이 취미다.”

-야구는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

“과학자에게 ‘기록의 스포츠’인 야구만큼 매력적인 스포츠도 없다. 선수의 행동 하나하나, 공의 움직임 하나하나, 경기의 모든 운영과 진행 하나하나가 기록되고 분석 가능하다. 뇌를 연구하는 나조차 야구 데이터 분석에 매료돼 세이버메트릭스에 빠지게 됐다. 2012년에는 야구 덕후들과 함께 한국프로야구 데이터를 분석한 ‘백인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야구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학자들과 함께 한국야구학회를 만들기도 했다. 너무 뿌듯한 순간이었다.”

-학부가 물리학과다. 물리학자가 꿈이었나.

“초등학교 때부터 과학고를 거쳐 학부, 대학원 석사 1년차까지 줄곧 천체물리학자가 꿈이었다. 스티븐 와인버그의 <최초의 3분>이라는 책을 읽으며 지금 우주에 산재한 물리적 단초만으로 우주가 탄생해 처음 3분간 벌어진 현상들을 유추하는 천체물리학자들이 탐정처럼 멋있어 보였다. 학부 졸업논문도 백조자리의 블랙홀로 추정되는 알파별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시뮬레이션하는 연구였다.”

-하지만 복잡계 과학을 전공하지 않았나.

“연구는 즐거웠지만, 내가 가볼 수도 없는 별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탐구한다는 것은 깊은 고독감을 줬다. 내 주위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 사회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 무렵 만델브로트 예일대 수학과 교수의 프랙탈 강연을 우연히 듣고 완전히 매료돼, 카오스 이론과 복잡계 과학을 전공하게 됐다.”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의대에서 박사후연구원과 조교수 생활을 했다. 뒤늦게 뇌과학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복잡계 과학을 뇌에 적용하는 연구에 관심이 깊었다. 어떻게 신경세포들이 모여 ‘정신’이라는 놀라운 현상을 만들어내는지는 복잡계를 연구하는 물리학자에게 너무나도 매력적인 질문이었다. 치매환자의 뇌를 모델링해 치매 증상을 예측하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의대의 어느 한 세미나에 초대돼 발표했는데, 신경과 의사가 이런 질문을 했다. 치매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치매 증세를 예측해 환자에게 알려주는 것은 그에게 지옥을 선사하는 것과 같다고. 그런데 왜 이런 연구를 하냐고. 이 질문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부끄럽게도 치매치료제가 없다는 사실을 당시에 몰랐다. 그동안 독학으로 공부해온 뇌과학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의대 신경정신과에서 하면서 틈틈이 의대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요즘 연구하고 있는 주제를 공개한다면.

“내가 하는 연구는 의사결정을 하는 동안 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fMRI 혹은 뇌파 같은 뇌영상장치를 이용해 측정하고, 복잡계 물리학적인 방법을 이용해 분석을 통해 뇌 작동의 근본원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삶이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아직 우리의 뇌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선택하는지 잘 모른다. 내가 하는 연구는 의사결정을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하는 일이다. 2019년도에는 외상후증후군 환자들의 치료과정의 신경 메커니즘을 밝히는 연구로 ‘네이처’에 논문을 내기도 했다. 이 분야를 연구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의사결정 신경과학은 의료, 공학 쪽으로 널리 쓰일 것 같은데.

“정신질환자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좋은 의사결정을 잘 못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알코올·마약 중독과 우울증 환자들의 자살이다. 내가 가장 오랫동안 연구해온 주제들이기도 하다. 자살시도자들의 뇌를 살펴보면, 그들은 충동적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것만은 아니다. 미래를 매우 부정적으로 전망하다 보니, 삶을 여기서 마무리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중독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건강을 해친다는 불확실한 손해보다 지금 담배 한대가 더 매력적인 보상인 것이다.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치료는 그들의 의사결정 체계를 바꾸어주는 일이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하는 연구다.”



경향신문

/카오스재단, tqtq studi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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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결정 뇌과학은 공학적으로 응용할 것이 많을 것 같다.


“무궁무진하다. 우리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뇌-기계 인터페이스(Brain-machine Interface)’가 대표적이다. 뇌파 등 뇌활동을 모니터링해서 의도를 파악해 생각만으로 로봇이나 기계를 움직이게 하는 기술이다. 우리 연구실은 이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보이는 연구실 중 하나다. 이를 이용해 스마트폰을 대체할 차세대 웨어러블 장치를 만들고 싶다. 3년 후쯤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스타트업도 바로 이런 걸 만드는 회사다.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인공지능(AI)과 뇌과학 쪽의 최근 협업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인공지능은 전통적인 컴퓨터과학과에서 지난 60년간 연구해왔다. 인간의 뇌에 대한 이해 없이 인공적인 지능 시스템을 만들어온 것이다. 물론 그것도 매우 중요한 접근이지만, 로봇이 인간과 공생하는 사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인간처럼 사고, 판단, 결정, 행동을 하는 인공지능도 필요하다. 우리 연구실이 하는 일은 바로 그런 인공지능을 만드는 뇌를 닮은 인공지능(Brain-inspired A.I.)이다.”

-평소 저서나 대중강연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뇌과학으로 성찰하는 얘기를 종종 하는 것 같다. 뇌가 인간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나.

“인간은 몸과 뇌를 통해 타인과 세계와 상호작용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상호작용과 반응이 결국 뇌에서 판단되고 결정돼야만 행동으로 옮겨진다는 사실이다. 세계와 우주, 타인과 사회를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뇌가 최종 관문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뇌과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 가장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데이비드 호크니,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에 대한 강연을 하는 것도 봤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결국 학문이란 나와 우리는 누구이며 세계는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해 지성으로 접근해 답을 얻고자 하는 탐구 아닌가? 뇌에 풍성한 자극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도 연구 대상이다. 최근에는 여배우의 뇌를 탐구해보자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의 특별한 공감 능력도 너무 궁금하다. 몇해 전에는 보호감호소 수감자들의 뇌를 연구하는 연구계획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의처증이나 우울증, 정신분열증으로 가족을 죽인 사람들의 뇌를 탐구해보고 싶다. 폭력의 근원이 궁금하기도 하다. 세상에 연구 대상이 아닌 것이 없다.”

-저서 <열두 발자국>에 보면 ‘지도 위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지 말고 세상에 대한 지도를 직접 그리라’고 조언한다. 학자로서 세상에 대한 지도를 그렸나?

“대학 때 미친 듯이 책을 읽으며 남의 지도를 베끼지 않고 내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리려 애썼다. 전 세계로 여행도 많이 다니고, 세계적인 석학, 경험 많은 선배들과 많은 대화를 했다. 직접 시도하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삶의 경험을 쌓으며 나만의 지도를 그리려 했다. 한 우물만 파라고 할 때 깊이 파기 위해서는 넓게 파야 한다고 믿으며 실행에 옮겼다. 다행히 통섭 융합 바람이 불어 요즘은 그런 노력을 지지해주는 분들이 늘고 있다. 젊은이들의 특권은 안전한 실패를 많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쓰러지면 일어날 때 뭐라고 줍는다.”

-세종 스마트시티 플래너다. 예전에 구상을 들으면서 ‘참 시도해보고 싶은 게 많구나’ 싶어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그간 성과가 있었다면.

“병원 신경정신과·영상의학과에서 지난 수십년간의 환자 빅데이터를 받아 분석해 그들에게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일들을 해왔다. 그걸 도시 스케일로 확장하는 일이 스마트시티 마스터플래너 역할이었다. 결국 인간의 삶을 보듬는 가장 큰 플랫폼은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실을 벗어나 세상을 위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스마트시티 마스터 플래너는 학자로서의 로망이었고, 도시와 건축에 대해 평소 가지고 있는 소신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결과적으로 너무나 근사한 마스터플랜을 만들어 무척 기쁘다. 올해부터 기업들이 마스터플랜에 맞춰 건설할 계획이다. 설렌다.”

-앞으로 과학자로서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바라는 것이 있다면.

“10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과학책을 쓸 수 있는 능력과 ‘네이처’에 논문을 낼 만큼 뛰어난 학자적 역량을 동시에 갖추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다. 다행히도 몇해 전 ‘네이처’에 논문도 내고 과학콘서트와 <열두 발자국>이 100만권 이상 팔리면서 소박하게나마 그 꿈을 이루었다. 자신이 만든 과학 지식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과학자의 책무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세금으로 연구비를 받아 학문을 수행하니까. 아인슈타인이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을 발견한 논문을 쓸 때 인류의 과학적 진보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 개념이며, 시공간이 하나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인류의 과학적 진보가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런 노력을 하고 싶다. 아울러 과학자들과 작은 도시 도서관에서 과학 강연을 재능기부하는 ‘10월의 하늘’을 30년쯤 하는 것도 꿈 중 하나인데, 올해로 12년째다. 매년 열심히 꾸준히 할 예정이다. 20년간 지켜봐 달라.”

-삶의 모토가 있다면.

“‘삶이란 얼마나 많은 숨을 쉬었는가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숨을 멎을 만한 순간이 인생에서 얼마나 많았는가로 평가할 수 있다(Life is not measured by the number of breaths we take, but by the moments that take our breath away.)’라는 말에 공감한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감동의 순간을 많이 만들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삶의 모토다.”

-궁극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고 싶나.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대한민국이 좋은 의사결정을 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싶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자살률을 절반으로 줄이고 싶다. 절실하게 고민하는 인생의 목표이자 꿈이다. 가난과 외로움, 스트레스 속에서 자살을 시도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의사결정 신경과학을 통해 그들을 위한 좋은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싶다. 아마도 뇌-기계 인터페이스는 기계와 결합하는 인간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기술이 인간성을 훼손하지 않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도록 하고 싶다. 인간 뇌를 닮은 인공지능도 그에 기여할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연구를 하고 싶다. 그것이 남은 연구 인생의 목표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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