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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선임기자 칼럼] 고개숙인 여당의 고백과 미첨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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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4∙7 재보선 결과로 드러난 민심이 무섭긴 한 모양이다. 이번 선거가 사실상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분석이 나오자마자 그동안 부동산 규제로 일관했던 여권에서 먼저 부동산 완화 군불을 때기 시작했다. 부동산 완화라고는 씨알도 안 먹힐 것 같던 여당이 앞장서 담보대출 규제 완화며 세금 완화라니.

실패한 부동산 정책으로 민심이 떠난 것을 확인한 마당에 여당으로선 가만히 있을 수야 없는 노릇이겠지만, 마치 울고 싶은데 누가 뺨이라도 때려주길 기다린 것처럼 여권에선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규제 완화 주장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으니 이를 어찌 봐야 할지 난감해진다.

부동산 민심이 흉흉한 가운데 치러야 할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다급해진 집권당의 처지야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그렇다고 정부와 여당, 청와대 사이에서 조율되지 않은 의원 개인의 설익은 사견이 ‘아무 말 대잔치’처럼 흘러 나오는 모습을 보자니 어색함을 넘어 민망스러울 정도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출마에 나선 3명의 후보 의원들의 주장만 놓고 봐도 그렇다. 이들 의원이 주장하는 부동산 시장 해법의 내용을 들어보면 과연 이 정부와 궤를 같이 해온 여당의 대표 의원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송영길 의원은 생애 최초로 집을 사는 무주택자에겐 40%와 60%로 묶인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90%까지 파격적으로 풀어주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홍영표 의원은 당권 도전에 나서며 현재 9억원인 종합부동산세 기준을 12억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9억원에 발목 잡혀 있던 고가주택에 대한 기준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여론의 지적에도 꿈적 않던 여당에서 공개적으로 부동산 세금 완화를 언급한 것이다. 홍 의원은 "부동산 정책은 민주당이 가장 실패한 분야"라며, 충분한 여론 수렴이 필요하다는 전제조건을 달았지만 "종부세 부과 기준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우원식 의원은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진 않았지만 "주거 사다리를 제대로 놓겠다"며 "주택공급·대출·세제 문제에서 유능한 변화를 추구하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새 원내대표로 선출된 윤호중 의원은 "부동산 정책을 긴급 점검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이 지금 하겠다는 것들은 모두 시정이 필요하다고 그동안 시장과 여론이 꾸준히 요구해왔던 것들이며, 그때마다 여당은 한결같이 때론 당론으로 때론 정책기조 유지란 명분으로 일축됐던 것들이다.

여당의 대표 얼굴이라 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이러니 누가 당권을 쥐더라도 부동산 정책기조가 지금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문제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사안들이 당∙정∙청 조율 없이 터져 나오며 시장에 혼선을 준다는 데 있다.

대출 규제만 놓고 봐도 그렇다. 가계부채 부실을 우려했던 이 정부가 어떻게 관리했던 규제인가. 여권에서는 대출 규제 완화를 이야기하지만 정부는 다르게 움직였다. 신용대출로 일정 금액 이상을 빌릴 땐 이자와 함께 원금도 함께 갚도록 하는 원급분할상환제를 도입하기로 했고, 연소득을 따져 금융권 전체에서 대출 받을 수 있는 한도를 제한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강화해 개인 대출을 더 줄이도록 했다.

정치권에선 부동산 담보 대출 완화와 관련한 이야기가 무성하게 나오지만 16일 퇴임한 정세균 전 총리는 민주당의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에 대해 "보고 받은 적 없다"고 선을 그었고,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도 "지금 주택정책은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기라 판단한다"고 했다.

당·정·청의 엇박자에 금융당국이 난감한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상황. 일관되지 않은 시그널로 자칫 돈줄을 푼다거나 부동산 규제 완화가 시작된다는 혼선을 줘 가뜩이나 불안한 시장을 더 흔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돌변한 여당의 태도를 두고 이 정부가 25번이나 쏟아낸 대책들로 꼬일 대로 꼬인 부동산 시장을 풀어보겠다는 진심이라 받아 줄 이가 많을 것 같지는 않다. 1년도 채 남지 않은 대선을 앞두고 다급해진 마음에 일단 민심이라도 잡아두자는 것은 아닌지 의심도 든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지난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가겠다는 것이라면 애써 말릴 이유는 없다. 다만 지나치지 않고 서두르지 않았으면 한다.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지나치고 서두른 탓에 있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전태훤 선임기자(besam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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