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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요즘 사진관에는 ‘이것’이 없다? 정답은 ‘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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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셀프 사진관에 빠진 2030

취미로 발레를 배우고 있는 임혜영(36)씨는 얼마 전 발레 프로필 사진을 ‘사진사 없는 사진관’에서 찍었다. 사진관의 촬영 공간에는 카메라와 조명,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셔터를 눌러줄 사진사는 없었다. 임씨는 DSLR 카메라와 연결된 리모컨 버튼을 직접 눌러 사진을 찍었다. 이 스튜디오에서 발레복을 입고 30분 동안 ‘셀카’를 찍은 임씨는 “일면식 없는 사진사가 시키는 대로 포즈를 취하는 것보다 내가 직접 사진을 보면서 최적의 자세를 취하는 게 더 좋은 사진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보정을 거쳐 받은 발레 프로필 사진 속 임씨의 손에는 리모컨이 꼭 쥐어져 있었다.

사진사 없이 홀로 사진을 찍는 ‘셀프 사진관’이 늘고 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고객이 직접 셔터를 누르고, 사진사는 보정만 담당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나는 내가 제일 잘 안다'는 MZ세대의 특성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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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혜영씨가 셀프 사진관에서 찍은 발레 프로필 사진. 한손에 카메라와 연결된 무선 리모컨이 쥐어져 있다.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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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혜영씨가 발레 프로필 사진 촬영 중 찍은 셀프 사진관 전경. 카메라와 조명, 모니터 등이 보인다.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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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 눈치 안 보고 한 컷

기존 사진관은 사진사가 피사체에게 자세와 표정을 지시하고, 적절한 순간에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는다. 반면 셀프 사진관은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이용자가 카메라와 연결된 리모컨 버튼을 눌러 사진을 찍게 된다. 셀프 사진관은 조명과 DSLR 카메라가 설치된 스튜디오를 일정 시간 동안 통째로 임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고객이 모니터를 통해 사진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계속 자세를 바꾸고, 인화하고 싶은 사진을 직접 골라내 추후 사진사에게 전달하면 된다.

최근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온 직장인 김보경(32)씨는 숙소 인근 셀프 사진관에서 해녀 옷을 입고 ‘나 홀로 여행’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씨는 “사진사가 눈앞에 있으면 어색한 표정이 나오기 마련인데, 셀프 사진관은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서 “해녀 의상을 입었는데도 남의 눈치 안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촬영 중간에 옷을 갈아입거나, 반려동물이나 영·유아와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도 셀프 스튜디오의 장점. 최근 아이 생후 500일을 맞아 셀프 스튜디오에서 가족사진을 찍은 이가윤(33)씨는 “처음 보는 사람이 있으면 아기가 긴장해 표정이 굳어지는데, 가족끼리만 있는 공간에서 사진을 찍으니 결과물이 훨씬 잘 나왔다”면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코로나에 민감한데, 외부인과의 접촉이 적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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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씨가 제주도 여행 중 셀프 사진관에서 해녀 복장을 입고 찍은 기념사진. 반대쪽 손에 무선 리모컨을 들고 직접 촬영 버튼을 눌렀다.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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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공간보다 ‘자신을 돌아보는 공간’

고객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카메라를 아예 다른 물체로 가리는 등 이색 셀프 사진관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사진온실’은 카메라를 반투명 거울 뒤로 숨겼다. 고객은 카메라 대신 거울을 응시하면서 리모컨을 눌러 사진을 찍게 된다. 이 사진관은 촬영 시간 동안 고객이 원하는 음악을 틀어주거나 향을 피워 주기도 한다. 이곳에서 고객은 카메라의 피사체가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진솔하게 바라보는 주체가 된다는 게 ‘사진온실’을 운영하는 이상재 사진작가의 설명이다. 이 작가는 “단순히 사진을 찍는 공간이 아니라, 고객이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면서 “조용한 공간에서 홀로 자기 자신을 마주하면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보정을 담당하는 사진사마저 없는 완전 무인 사진관도 늘어나는 중이다. 서울 송파구의 ‘렌탈스튜디오 블리블리’는 100% 무인 사진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고객이 현관 비밀번호를 눌러 스튜디오에 입장한 다음, 사진을 찍고 인화까지 스스로 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 사진관을 운영하는 조승아 대표는 “카메라가 최적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미리 세팅되어 있는 데다, 인화용 설명서까지 비치돼 굳이 사람이 있을 필요가 없다”면서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자유롭게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젊은 층이 많이 이용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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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셀프 사진관 '사진온실'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온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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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만 셀프 사진관 300여 곳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모습을 쉽게 찍을 수 있는 시대. 사진 촬영업은 ‘사양산업’에 가깝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999년 기준 1만3398개였던 전국 사진관 수는 2019년 9862개로 20년 동안 26% 줄었다.

반면 사진사 없는 사진관은 급속한 속도로 늘고 있다. 셀프 사진관은 3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 10여 개에 불과했지만, 최근 네이버 지도에 ‘셀프 사진관’을 검색하면 서울에만 300여 개의 사진관이 뜬다. 인스타그램에 같은 검색어를 입력하면 연관 게시글이 12만5000개나 나온다. 셀프 사진관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하나의 대세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2017년 운영을 시작한 셀프 사진관 ‘인생네컷’은 창업 4년 만에 전국 200여 개 매장을 갖게 됐다. 카메라와 거울이 설치된 간이 부스에서 4000원을 내고 찍으면 총 네 장의 사진을 담은 인쇄물 두 장을 준다. 언뜻 보기에는 과거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했던 ‘스티커 사진’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작년 기준으로만 연간 1200만명의 고객이 인생네컷을 찾았다. 인생네컷을 운영하는 엘케이벤쳐스 한승재 상무는 “연인이나 친구와의 추억을 사진에 담아 인화하는 문화가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놀이문화로 정착했다”면서 “고객들이 사진관을 단순히 사진 찍는 공간을 넘어 놀이터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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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스튜디오 인생네컷은 지난해 1200만명이 방문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인생네컷


최근에는 호텔, 대학 축제 등 공간에까지 셀프 사진관이 진출했다. 신라호텔은 신라스테이 구로점에 흑백사진 전문 ‘신라 셀프 사진관’ 팝업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구민정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MZ세대는 자기 표현의 욕구가 강한 세대”라면서 “기성 사진관이 요구하는 천편일률적인 사진보다 자신의 개성을 강하게 드러낼 수 있는 셀프 사진관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유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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