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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창넘어북한] ‘계급투쟁 위에 집 투쟁 있다’…평양 집 짓기 올인하는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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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까지 평양중심부 외곽 역세권 5만 세대 아파트 건설

김정은의 역점 사업 … '평양 주택난 완전히 해소' 기대

올해 1만 세대, 보통강가 고급형 800세대는 별도 신축 예정

건설 목표 낮췄단 이유로 김두일 경제비서 경질

개발지역 '주거약자 보호' 문제도 발생

【서울=뉴시스】강영진 박수성 기자 = 평양에서 아파트 건설 붐이 한창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 1월 평양에 5만 세대 주택을 새로 짓겠다고 밝혔고, 고질적인 주택난을 해결하겠다며 역량을 쏟고 있습니다. <창 넘어 북한>에서는 평양 중심지 외곽의 역 주변에 조성되는 새 건설 움직임, 그리고 왜 김위원장은 하필 아파트 건설을 제1의 핵심 사업으로 밀고 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뉴시스 북한팀 박수성입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요?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건물만 있으면 평생 돈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기 때문에 조물주도 부러워할 것이라는 유머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을 매우 냉소적으로 패러디한 표현입니다.

북한에도 비슷한 유머가 있습니다.

“’계급투쟁’ 위에 ‘집 투쟁’이 있다”는 말입니다.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계급투쟁은 사회의 기본 작동원리라고 할 수 있는데 그보다도 집을 구하는 투쟁이 더 중요하다고 꼬집는 내용입니다. 북한의 중산층 역시 우리 못지않게 심각한 주택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줍니다.

오늘은 평양의 주택 건설 붐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뉴시스

[서울=뉴시스]조선중앙TV가 2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3일 사동구역 송신·송화지구에서 열린 평양시 1만세대 살림집건설착공식에 참석해 연설을 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2021.03.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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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월 8차 당대회에서 앞으로 5년에 걸쳐 평양에 5만 세대의 새 주택을 건설하겠다고 밝힌 일이 있습니다. 매년 1만 세대의 주택을 지어 고질적인 평양의 주택난을 해결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두고 노동당 경제비서가 임명된 지 며칠도 안돼 쫓겨나는 소동이 있었습니다.

8차 당대회 직후 임명된 김두일 경제비서가 한 달도 안 돼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전격 교체된 겁니다. 당시 노동신문은 조용원 당 조직비서가 “당중앙이 수도 시민들과 약속한 올해 1만 세대 살림집건설목표를 감히 낮추어놓은 문제를 신랄히 지적했다"고 전함으로써 김두일이 교체된 이유가 김정은이 추진하는 평양 아파트 건설사업을 소홀히 처리한 때문이었음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김두일이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명색이 노동당 비서라는 고위급 간부가 김정은의 말이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유일영도체계를 무시하고 올해 경제계획의 집행 과정에서 최우선 순위에 두지 않은 건 당연히 처벌 대상이지요. 혹시라도 김두일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지금 평양의 아파트 건설이 올해 김정은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임을 잘 보여줍니다.

김정은이 권력을 물려받은 이래 10년 사이에도 2012년 창전거리, 2015년 미래과학자거리, 2017년 려명거리 등 평양에 신시가지를 여럿 건설한 적이 있고, 지금도 평양대극장에서 김일성 광장으로 이어지는 승리거리에도 1만6,000세대 규모의 고층 아파트 건설이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이에 더해 앞으로 5년 동안 5만 세대의 주택을 추가로 지어 평양의 주택난을 완전히 해소하겠다고 내세우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하필 아파트 건설을 제1의 핵심 사업으로 밀어 부치고 있는 걸까요?

아마도 코로나19 팬데믹과 유엔의 경제제재 때문에 주택 건설 이외의 다른 부문의 경제개발 사업들이 성과를 내기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실제로 2012년 김정은이 권력을 차지한 뒤부터 지금까지 경제 부문에서 그가 보여준 업적은 사실상 건설 사업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마저도 지난해 코로나19에 정면 승부하듯이 내세운 평양종합병원 건설은 첨단 의료장비를 수입하지 못해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해외 물자 도입이 거의 필요 없는 주택 건설이 가장 손쉽게 성공할 수 있고 내세울 수 있는 성과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 듯합니다.

뉴시스

[서울=뉴시스]조선중앙TV가 2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3일 사동구역 송신·송화지구에서 열린 평양시 1만세대 살림집건설착공식에 참석해 연설을 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2021.03.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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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5만 세대 건설 사업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11일 일본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5년에 걸쳐 평양에 새롭게 들어설 5개의 주택지구를 보도했습니다.

모두 중구역 등 평양 중심지와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평양 외곽지역들입니다. 그렇지만 지하철이 연결돼 우리 식으로 말하면 역세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먼저 얼마 전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참석해 대대적으로 착공식을 가진 '송신지구'와 '송화지구'를 살펴보겠습니다. 평양의 동쪽 외곽 지역인 ‘송신지구’와 ‘송화지구’엔 송신역과 동평양역이 있습니다. 또 수질이 좋아 대동강맥주공장 등의 식음료 공장들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조선신보에 따르면 내년부터는 평양의 서쪽과 북쪽 외곽지역에도 차례로 새로운 주택단지가 들어설 예정입니다. 서쪽으로는 만경대구역에 '금천지구'가 건설될 예정입니다.

북쪽으로는 '서포지구'와 '9.9절 거리지구'가 조성되는데요, '서포지구'는 평양비행장 근처 형제산구역에 있고 '9.9절 거리'는 서포지구에서 동쪽으로 8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한 탈북자는 “평양은 금수산태양궁전과 중앙동물원이 있는 대성구역, 무역성, 보안성 등이 위치한 서성구역을 포함해 모란봉구역, 보통강구역과 중구역이 사실상 거의 전부"라면서 "만경대구역도 사실은 외곽지역이지만 김일성 생가가 있으니까 이곳까지는 평양으로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에 건설되는 지역들이 “평양 외곽의 벌(들판) 같은 곳으로 서울의 도봉구같이 평양의 끝으로 봐야 한다"면서 "사동구역, 역포구역, 강남군 등은 외곽이다. 서포지구의 경우 서포역도 있고 온실도 조성돼 있지만 도시가 형성돼 있지는 않다”는 겁니다.

그는 이처럼 외곽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이유로 “평양 중심에 많은 낡은 아파트를 재건축하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현수 단국대학교 교수도 “평양 외곽의 국영기업소 부지나 군대 주둔지 등에 신시가지를 조성하는 방식은 1990년대 무너진 공산국가들에서 많이 벌어진 일"이라면서 "평양 중심가는 밀도가 높아서 지하철 노선을 따라 외곽으로 뻗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김위원장은 송신, 송화지구 착공식이 있은 날 평양의 도심 중구역 보통문 주변 보통강가에 '호안다락식' 주택 800세대를 건설하고, 주변에 공원도 조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뉴시스

[서울=뉴시스]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1일 평양 시내 보통강 강변 주택건설 현장을 시찰했다고 1일 보도했다. 사진은 보도에 나온 주택 조감도. (사진=조선중앙TV 캡처) 2021.04.0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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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다락식' 주택은 강가에 짓는 집이니 강에 가까운 곳은 저층으로 조금 떨어진 곳은 고층으로 짓는 방식을 말합니다. 우리의 계단식 논을 표현하는 북한 말 다락논에서 따온 말입니다. 호안은 강가라는 뜻이겠지요.

김위원장이 살펴본 조감도에는 주택들이 보통강을 내려다보고 있고 창광원, 백화점, 청류관, 빙산관, 인민문화궁전 등과도 가까운 요지입니다. 고급 주택을 짓는 것 같네요.

김위원장은 이 집들을 “당과 국가를 위해 헌신적으로 복무하고 있는 각 부문의 로력혁신자, 공로자들과 과학자, 교육자, 문필가를 비롯한 근로자들에게 선물로 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상당수는 당 간부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옵니다. 이미 고위 당간부들이 여럿 살고 있는 곳에 짓는 것이라서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결국 800세대 가운데 1~2백 세대만 공로자들에게 돌아갈 것 같다고 하네요.

북한도 사람이 사는 동네인지라 알짜배기 동네라면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이 차지하는 게 인지상정인 듯싶습니다.

평양 출신의 탈북자들에 따르면 평양의 주택난은 오래된 일입니다.

‘평양시 인민위원회에서 관사에 거주했던 특수단위 사람들이나 군인들이 사회로 나올 때 집을 배정해 줘야 하는데, 부족해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자식이 결혼해도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가 보통이고 분가를 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친척이나 지인 등의 집에 함께 사는 동거 세대가 많다.'

'최근엔 새로 가정을 꾸리는 젊은 층들이 독립하길 원하고, 낡은 집보다 새로 지은 좋은 집에서 살려는 욕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이 노동당원이 되려고 군대 5년을 복무하고 나오면 30살이 다 되기 때문에 결혼 시기가 늦어져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등등의 이유들로 평양에서 주택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김현수 교수는 “최근에 지어진 여명거리, 미래과학자거리 등을 제외하면 북한 주택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 특히 수도, 설비, 위생 등 시설이 우리의 70년대 수준으로 생활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새 주택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다. 주택 공급이 정권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중요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미사일 발사 현장이 아니라 아파트 착공식에 나타난 건 그래서"라고 설명했습니다.

한 탈북자는 “역대 북한 지도자는 건설을 제1의 사업 성과로 삼아 왔다”면서 “인건비가 싸고 시멘트나 골재 등 건설자재도 국내 생산이 되기 때문에 건설 여건이 좋다. 건설은 눈에 잘 보이는 성과”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북한에서 건설 사업을 중시해온 역사는 오래됐습니다.

전쟁 중이던 1951년에 '평양시 복구 총 계획도’를 만들었고 이 계획에 따라 전쟁이 끝난 뒤 소련과 중국, 동유럽 국가들의 원조를 받아 평양을 ‘사회주의 도시’로 건설했습니다.

특히 김정일은 김일성의 후계자가 되는 과정에서 1960년대 말부터 평양은 물론 북한 전역에서 도시 건설 사업을 밀어 부쳤습니다. 후계자로서 능력을 인정받는 중요한 수단으로 삼은 겁니다.

김정은도 같은 생각일 겁니다.

그런데 북한은 천리마 속도니 뭐니 해서 최단기간에 대규모 건설공사를 마무리 짓는 걸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한두 달 만에 주택단지를 짓고 6개월 만에 평양에 새 거리를 조성하는 등 온갖 신화를 만들어내기 일쑤입니다.

이처럼 빠른 완공을 강조하다 보니 부실공사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겠지요. 2014년 5월 평양시 평천구역에서 건설 중이던 23층 아파트가 무너진 사건들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또 새로운 대규모 건설이 진행되는 지역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갈 데가 없어서 고통을 겪는 일종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북한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이 12일 "철거가 끝난 대동강구역과 사동구역 일대 주민들은 돈이 부족해 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창 넘어 북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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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pzcmari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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