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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A제약사, 8월 백신 대량생산" 정부의 발표 무리수, 뒷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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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중앙일보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일원에코센터에 마련된 강남구 백신접종센터에서 의료진이 화이자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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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15일 오전 기자단 대상 백브리핑(배경 설명회)에서 폭탄성 발표를 했다. 백영하 범정부 백신도입TF 백신도입총괄팀장은 "국내 A제약사가 해외에서 승인된 백신을 위탁 생산하는 것에 대해 구체적인 계약을 체결 중이며 8월부터는 국내에서 백신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깜짝 놀란 기자들이 질문을 퍼부었다. 백 팀장은 “자세한 건 기업 간 계약상황이라 지금 상황에서 말하긴 곤란하다. 백신을 특정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양해 부탁한다”고 답했다. 기자들이 물러나지 않았다. 백 팀장은 “국내 백신 생산 기반이 조금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추가로 설명한 것”이라며 “백신 수급과 관련해 추가로 진행되는 사안이 있을 때마다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청와대·중대본·복지부·질병관리청 등 관련 부처는 입을 닫았다. 팀장급 공무원의 실언이었을까. 그게 아닐 가능성이 크다. 계약 당사자간에 비밀 유지 서약이 있는데도 이런 설익은 사실을 무심코 내뱉을 리가 없다. 게다가 협상이 진행 중인 사안을 과장급 공무원이 공개한다는 건 공직사회에서 전례가 없다시피하다. 여기저기에 따져물었지만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다 아시잖아요"라고 말을 돌렸다.

그간 정부는 백신 도입 일정 관련, 계약상 비밀 유지 조항을 들어 비공개로 일관해왔다. 그러다 이번에 그 원칙을 허물었다. 도입 예정인 백신이 하나씩 멀어지고 있으니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이번에 무리수를 둔 것처럼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특별방역점검 회의에서 “다방면의 노력과 대비책으로 백신 수급 불확실성을 현저하게 낮추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5일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 “차질 없는 백신 도입으로 상반기 1200만명 접종, 11월 집단면역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그 목표를 더 빠르게 달성하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 자신감은 온데간데 없고 상거래 원칙을 깨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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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스테판 반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와 화상 통화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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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온종일 혼란스러웠다. 당장 주식시장부터 달아올랐다. 녹십자는 전 거래일 대비 10.15%, 프레스티지바이오로직스는 전일 19.61%, 엔지켐생명과학은 7.67%,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3% 올랐다. 동아쏘시오홀딩스 계열사인 에스티팜은 주주 문의가 잇따르자 아예 홈페이지에 공지사항을 띄워야 했다. 한 제약회사 임원은 “정부가 과장해서 발표한 것 같다. 계약이란 게 도장을 찍을 때까지 모른다. 무수한 변수가 있다"며 "하도 몰리니까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주식 게시판에 야단이 났는데 기업 입장에서도 부담된다. 제약 관련 애널리스트도 업데이트 상황을 물어보고 비상이 걸렸다”고 토로했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코너에 몰린 정부의 처절한 노력이긴 하지만 불확실한 정보를 흘리게 되면 오히려 국민에게 신뢰를 잃을 확률이 높다”라며 “위탁 생산을 한다고 해서 물량 결정권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백신 물량이 기대만큼 못 들어오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11월 집단면역 못지 않게 중요한 건 정부의 솔직한 태도와 정확한 정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이번처럼 스텝을 꼬이게 한다. 정부는 그동안 백신 수급 실패를 인정한 적이 없다.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한 뒤 차선책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훨씬 믿음직할 것이다.

이우림 복지팀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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