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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단독] '年 90% 이자'에 불나방 투자…코인예금에 달려든 700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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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홀 된 가상자산 ◆

매일경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가격이 고공 행진을 거듭하면서 최근 은행 예금처럼 가상자산을 일정 기간 맡겨두면 최대 연 90%가 넘는 높은 이자를 주는 신종 투자 상품이 블랙홀처럼 시중 돈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가상자산은 현재 관련 규제나 법령이 없어 예금과 같은 '원금 보장' 등 소비자 보호가 전무한 상황이어서 주의가 요구된다.

15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판매되는 일종의 예금 상품인 '스테이킹(staking·예치)'의 누적 예치 금액이 확인된 것만 7000억원에 육박한 것으로 파악됐다. 스테이킹은 투자자가 특정 코인을 구매한 후 이를 거래소에 맡겨두면 정해진 기간 후 약속한 이자만큼의 코인을 더해서 주는 일종의 금융 상품이다.

가상자산거래소인 고팍스는 지난해 12월 18일부터 코인 예치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해 이날 현재까지 불과 4개월 만에 누적 예치금 3500억원(가상자산을 원화로 환산한 금액), 누적 가입자 5000명을 기록했다. 총 33개 예치 상품 중 연 이자가 90% 넘는 고금리 상품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예를 들어 고팍스에서 지난 8일부터 이틀간 판매한 상품은 코인 '베리'를 4개월간 예치하면 만기 시 예치한 코인에 연 90% 이자(코인 개수 기준)를 붙여주는 것이었다. 베리 100개를 넣으면 4개월 후 130개를 준다는 얘기다. 이 상품은 이틀간 당초 최소 모집 코인 수량(100만개)보다 30배 많은 3000만개가 모집됐다. 또 다른 가상자산거래소인 빗썸과 코인원은 이 같은 상품의 누적 예치금이 각각 약 1877억원, 1401억원에 이른다. 앞서 고팍스의 누적 예치금까지 합치면 거래소 3곳에서만 6778억원이다. 다른 거래소 수치까지 합산한다면 국내 누적 예치금은 1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가상자산 예치 상품에 대한 열풍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거래소인 바이낸스를 비롯해 여러 글로벌 거래소에서 연 이자 100% 안팎을 내세운 상품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가상자산 데이터 제공 업체 '스테이킹리워드닷컴'에 따르면 전 세계 예치 가상자산의 가치는 1623억달러(약 181조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전 세계 국가들의 평균 국내총생산(GDP)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 같은 상품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연 이자 90%를 약속했지만 운용사가 가상자산을 운용하면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또 현재 가상자산은 금융 상품으로 정부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관련 법령이 적용되지 않아 규제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가상자산 투자·매매로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윤원섭 기자 / 이새하 기자]

예금보호 안되는데…당국 우물쭈물하다 코인 투기판 키워


규제 사각지대 가상자산

금전으로 분류 안된 가상화폐
유사수신행위로 처벌도 못해

맡긴 코인 운용방식도 깜깜이
가치 하락땐 큰 손실 불보듯

사업자 신고기한인 9월 이후엔
중소거래소 폐점·피해 우려

매일경제

가상자산 스테이킹 상품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15일 서울 한 가상자산거래소 전광판에 코인 스테이킹 상품 관련 광고가 나오고 있다.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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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투자에 이어 가상자산을 은행 예금처럼 활용하는 투자상품이 시중자금을 급속히 빨아들이고 있다. 이들 시장이 무섭게 달아오르는 배경에는 부동산, 주식 등 제도권 투자보다 가상화폐 투자가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다. 아울러 정부가 가상자산 업계를 규제의 '사각지대'로 방치한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법망을 피해 가상자산 관련 유사수신이나 불법 다단계 사기 등을 저지르는 업체도 많아졌다. 실제 금융감독원에는 이자를 얹어주는 가상자산이라고 홍보하며 사실상 '돌려 막기'를 한 불법 다단계 사기 민원 신고가 수차례 접수되고 있어 당국이 더 이상 나 몰라라 하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현재 가상자산을 '법정화폐'나 '금융투자상품'으로 볼 수 없다는 방침을 견지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15일 가상자산에 대해 "적정 가격을 산정하기 어렵고 가격 변동성도 매우 큰 특징이 있다"며 "가상자산 투자가 과도해지면 투자자 관련 대출 등 금융 안정 위험이 커진다"고 염려했다.

정부는 대신 지난 3월부터 거래소 등에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한 '특정금융정보법'으로 가상자산 업계를 우회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가상자산거래소 등은 오는 9월 25일까지 금융정보분석원(FIU)에 가상자산사업자 신고를 하지 않으면 폐업해야 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거래소 신고 절차를 앞두고 최근 사기가 더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만일 거래소가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신고를 못하게 되면 해당 거래소를 통해 투자했던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현재 가상자산거래소의 핵심 신고 요건 중 하나인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를 갖춘 곳은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네 곳에 불과하다. 가상자산을 맡기면 고금리를 주는 투자상품은 '깜깜이'로 운용돼도 규제가 없어 운용사들이 망하면 투자자들이 투자한 코인 전액을 잃을 염려도 제기된다. 투자자들은 가상자산거래소를 믿고 맡기지만 정작 거래소들도 운용 방식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곳이 상당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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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기를 끄는 '스테이킹(staking)'과 '예치' 상품은 은행 예금처럼 가상자산을 맡긴 뒤 이자를 받는 상품이다. 스테이킹은 소비자가 가상자산을 맡긴 보상으로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지급한다. 반면 예치 상품은 일종의 펀드 개념이다. 가상자산거래소가 소비자와 가상자산 운용사를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운용사가 코인을 굴려 이자를 준다. 통상 스테이킹은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따라 연이율이 달라지는 반면 예치는 운용사가 고정된 이자를 지급한다.

이들 상품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도 나온다. 예금자 보호가 안 되고 투명성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고객들이 거래소에서 상품에 가입하지만, 정작 거래소는 제3의 기관인 자산운용사에 운용을 맡기면서 실제 운용 내용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은행에서 펀드에 가입했지만, 정작 은행도 펀드가 어떻게 운용되는지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 때문에 운용사가 가상자산 운용을 잘못하거나 망하면 대규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염려가 나온다. 판매사는 고객을 끌어모으려고 최대한 높은 이자를 내세워 홍보하지만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는다. 유사수신행위법에 따르면 금융당국 인허가를 받지 않고 투자원금을 보장하거나 수익 지급을 약정하면 유사수신행위로 처벌받는다. 하지만 가상자산은 '금전'이 아니라 이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

블록체인 자문을 주로 하는 조재우 한성대 교수는 "고수익의 연이자를 지급하는 작은 규모의 가상자산 스테이킹 상품은 가격 변동도 심하다"며 "예를 들어 100만원어치 토큰 100개를 연이율 100%라서 200개로 받았는데 토큰 가격이 10분의 1로 돼 100만원이 20만원으로 떨어지는 일도 많다"고 말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고객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액 이상 손해를 보면 거래를 중단하는 등 내부적인 장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서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해외 사례처럼 고객 자산에 대한 안전한 보관 의무와 보안 시스템 구축·관리 의무, 손해배상 관련 제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원섭 기자 / 이새하 기자 / 한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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