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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백악관 압박에 고민 커진 삼성…인텔은 즉각 "차 반도체 증산" 화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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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화상회의로 열린 '반도체 최고경영자(CEO) 서밋'에서 삼성전자 등 19개 기업 경영진을 향해 "우리의 경쟁력은 여러분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는 지에 달려있다"면서 직설적으로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강조했다. 또 "반도체 투자가 미국 일자리 계획의 핵심"이라고도 언급했다.

같은 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독일 하노버 산업박람회(하노버메세) 2021' 기조연설자로 나서 36억유로(4조8000억원) 규모의 시스템 반도체 투자 계획을 밝혔다. 메르켈 총리는 "미국에 뒤처진 유럽의 시스템 반도체 기술 강화와 기술 독립을 위한 투자"라면서 "10억 유로는 독일정부가, 26억 유로는 EU의 27개 기업이 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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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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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백악관 화상회의는 한국 시간으로 13일 오전 1시부터 1시간 40분 동안 이어졌다. 업계에 따르면 서밋은 초청받은 19개 업체의 경영진이 돌아가면서 반도체 수급 문제에 대한 현장 목소리를 전했고, 백악관에서는 이를 청취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바이든 직접 참석해 "공격적 투자" 강조



서밋에 참여한 기업은 삼성전자와 인텔, 대만 TSMC를 비롯해 알파벳·AT&T·커민스·델·포드·GM·글로벌파운드리·HP·메드트로닉·마이크론·노스롭그루만·NXP·패카·피스톤그룹·스카이워터테크놀로지·스텔란티스 등이다. 유일한 한국 기업인 삼성전자에서는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이 참석했다. 최 사장의 발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날 서밋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는 인프라"라고 운을 떼며 "우리는 어제의 인프라를 수리하는 게 아니라, 오늘의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투자가 미국 일자리 계획의 핵심"이라고도 했다. 삼성전자·TSMC·인텔 등 반도체 생산업체가 과감하게 미국 내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을 사실상 압박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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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 국가별 반도체 생산능력 점유율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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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직접 나선다"



미국 기업인 인텔은 즉각 화답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백악관과의 서밋 종료 이후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차량용 반도체 제조에 인텔이 직접 나서겠다"면서 "향후 6~9개월 이내에 실제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목표로 차량용 반도체 설계 업체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인텔은 지난달 200억 달러(약 22조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에 반도체 공장 두 곳을 짓고 '인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서비스'를 신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인텔은 사전에 미국 행정부와 교감을 갖고 서밋에 참여했을 것"이라면서 "시의적절한 메시지를 내면서 정부 발언에 힘을 보태고 삼성과 TSMC에 부담을 주는 게 인텔의 역할"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공격적 투자'를 언급한 데다 경쟁 업체인 인텔이 재빨리 호응하자, 세계 파운드리 반도체 1·2위 업체인 TSMC와 삼성전자도 조속히 '답장'을 보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나마 TSMC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5월 미국 애리조나주에 120억 달러(약 13조5000억원)를 투자해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고, 애리조나주 피닉스시 북부에 반도체 공장 용지를 매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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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반도체 CEO 서밋’ 참여한 기업의 미국내 투자액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외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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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미국 투자 결정에 변수…유불리 판단 엇갈려



급한 건 삼성전자다. 삼성은 미국에 170억 달러(약 20조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 증설을 계획 중인데, 투자 지역과 시점 등을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텍사스·뉴욕·애리조나 등 후보 지역 주(州) 정부와 재산세 감면 같은 인센티브에 대해 줄다리기 중인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은 (텍사스·뉴욕·애리조나 등) 지역 간 유치 경쟁을 유도해 협상력을 높이고 보다 좋은 조건을 얻으려는 속내가 있었을 것”이라며 “대통령의 노골적인 '투자' 압박이 더해져, 오히려 협상을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반면 백악관 서밋을 계기로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 결정 시기가 앞당겨지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이미 계획 중인 투자라면, 바이든 대통령의 요청에 호응하는 모양새를 갖춰 최종 결정을 내린다면 미국 내 세제 혜택이나 팹리스 업체의 주문량 확보 등 인센티브를 최대한 얻어내는 데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도 삼성전자가 자신의 임기 동안 미국에 신규 투자를 해준다면 적극적으로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수는 중국과의 관계다. 미국이 자국 내 투자를 강조하는 것을 넘어 중국 견제를 위한 제재에 협조를 요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삼성전자는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5%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공장 두 곳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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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중국 메모리 반도체 공장. [사진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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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배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는 "강대국의 패권 다툼 속에서 국내 개별 기업에 모든 사안에 중심을 잡고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정부가 외국 정부와 관련된 기업의 모든 사안을 나서서 조율해주긴 쉽진 않지만, 외교적 차원에서 기업 보호와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반도체 부족 현상을 중요 현안으로 인식하고 대응해왔다. '바이든 뉴딜'로 불리는 2조 달러(2250조 원) 규모의 경기 부양안 가운데 500억 달러(약 56조 2500억원)를 반도체 생산·연구 부문에 편성했다. 또 '반도체 생산 촉진법(CHIPS for America Act)'을 통해 반도체 연구개발 확대와 공급망 확보를 위한 인센티브 제공에 대한 입법화를 추진 중이다.



靑 15일 경제장관회의…삼성·하이닉스·현차 참석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15일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해 반도체·전기차·조선 등 주요 전략산업 현황을 점검한다고 청와대가 13일 밝혔다. 국내 대기업 최고경영진으론 이정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 총괄 사장,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 가삼현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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