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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용인 흥덕지구서 벌어진 오피스텔 불법 리모델링 촌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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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름 기자]

오피스는 괜찮은데, 오피스텔은 안 되는 지역에 빌딩이 들어섰다. 조용히 오피스를 오피스텔로 바꾸는 공사가 진행됐고 분쟁이 터졌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분명히 불법인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감독기관은 강 건너 불구경만 한다. 골치를 앓는 건 오피스 계약자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경기도 용인에서 벌어진 '오피스텔 리모델링' 사건을 취재했다. 작은 사무실에서 벌어진 사건이지만 함의가 크다. 누구든 이런 일을 당할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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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를 오피스텔로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선 분쟁이 터질 우려가 많다.[사진=더스쿠프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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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경기도 용인 흥덕지구에 있는 상업용 부동산을 매입한 직장인 A씨. 그가 평생 모은 돈으로 산 오피스는 '복합상가'에 있었다. 더구나 그 상가가 상업지구 안에 있어 '주택'이 아닌 '사무실'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A씨는 남에게 빌려주기보단 직접 사업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요양병원이나 학원이 대부분이었다. A씨는 공부방을 열기로 했다. 업무시설이어서 분위기가 조용하다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준공을 손꼽아 기다리던 A씨는 입주를 2개월 남짓 앞둔 최근 '오피스' 상태를 확인하기로 했다. 그는 "시공이 거의 끝난 상태이니 내부 인테리어만 하면 당장이라도 '공부방'을 열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품었다.

하지만 오피스의 문을 연 A씨의 눈엔 당황스러운 장면이 꽂혔다. 천장 내장재는 떨어져 있었고, 구멍이 난 천장엔 설계도에 없던 '오폐수관'이 만들어져 있었다. 심지어 사무실 벽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오염 물질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화가 치밀어오른 A씨는 '천장에 난 구멍'의 원인이 '위층 호실'에 화장실과 싱크대를 설치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렇다면 A씨는 해결방안도 쉽게 찾았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지 않다. '오피스텔'을 만들 수 없는 오피스 건물에 '주거용 인테리어' 공사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데도 인허가권자(기흥구청)는 팔짱만 꼈고, 시행사 등 사업관계자는 "우리가 개입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발을 뺐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쟁점❶ 책임 소재 = 문제의 단초는 '사무실 주인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느냐'였다. 자신이 구입한 오피스가 이리저리 훼손됐음에도 A씨는 '오피스의 주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잔금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A씨가 "허락 없이 왜 남의 오피스에 들어가서 공사를 진행했느냐"고 숱하게 따졌음에도 사업주체가 "아직 공사 중이고 소유권이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사유재산 침해라고 볼 수 없다"며 버틸 수 있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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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기서 따져볼 게 있다. 위층 계약자가 잔금을 납부하지 않았다면 그에게도 소유권이 없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위층 계약자도 잔금을 완납하지 않았다. 관례적 보증장치인 '예치금'조차 걸어놓지 않았다.

시행사 관계자는 "예치금을 받진 않았지만 인테리어 동의서는 받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 동의서는 법적 효과가 없다. 혹여 효과가 있더라도 절차상 문제가 있다. 공사 흔적을 발견한 A씨가 문제를 제기한 후 작성된 동의서이기 때문이다. 이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

■쟁점❷ 개조 범위 = A씨 사건엔 '책임 소재'만큼 중요한 게 있다. 오피스를 오피스텔로 전환할 수 있느냐다. 일단 위층 호실에 싱크대·샤워실 등이 설치됐으니 오피스를 오피스텔로 리모델링했다고 봐야 한다.

이 호실의 인테리어 설계도면에는 '주거'라는 단어까지 적혀 있다. A씨는 "상식적으로 주택으로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면 뭐 하러 이런 공사를 하겠느냐"며 "오피스를 오피스텔처럼 리모델링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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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수분양자가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으려면 소유권 이전 절차를 먼저 밟아야 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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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합법적인 공사일까. 개념부터 알아보자. 오피스와 오피스텔은 건축법에서 '일반업무시설'로 묶인다. 차이가 있다면 오피스와 오피스텔의 주용도가 업무와 주거로 다르다는 점뿐이다. 이 때문인지 일반업무시설 안에서 둘의 용도는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다. 가령, 오피스텔 조건에 맞춰 오피스를 리모델링하면 '오피스텔'로 이용할 수 있다. 의문을 제기한 A씨에게 기흥구청이 답변한 내용도 이와 맥락이 같았다.

"위층 호실에 주방·샤워실·세탁설비를 설치하더라도 일반업무시설에선 오피스와 오피스텔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으니 막을 방법이 없다. 오피스텔 기준에 맞춰 만들기만 한다면 문제될 부분은 없다."

큰 틀에선 틀린 설명이 아니다. 하지만 '지구단위계획'까지 검토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용인시청 측은 기흥구청과 다른 답변을 내놓았다. "문제가 된 복합상가는 지구단위계획상 상업지구에 있다. 여기선 오피스텔을 건설할 수 없다. 오피스를 오피스텔로 바꾸는 행위는 규제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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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기흥구청의 주장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까. [※참고 : 지구단위계획은 도시관리를 위한 세부적인 계획으로 토지이용을 구체화하기 위해 수립한다. 단독주택용지, 근린생활시설용지, 공동주택용지, 상업업무용지, 도시지원시설용지 등을 나누는 상위개념이다. 일반업무시설은 상업업무용지에 들어간다.]

■쟁점❸ 분쟁 해결 = 이처럼 명확한 기준이 없으니 분쟁이 쉽게 해결될 리 없었다. A씨도 그랬다. A씨의 민원은 '핑퐁게임' 하듯 여기저기로 떠넘겨지기만 했다. '동의서를 받아 인테리어 공사를 승인했다'는 관리사무소는 권한이 없었다. 분양대행사는 사업주체가 아니다 보니 책임을 회피하기 바빴다. 시행사 측도 "두 계약자가 서로 합의할 일"이라며 "인테리어 공사를 승인한 건 우리가 아니다"는 변명만 늘어놨다.

더 큰 문제는 이를 감독하고 분쟁을 해결해야 할 기흥구청에 있었다. 구청 관계자는 "오피스텔로 사용하는 걸 눈으로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행정조치를 하는가"라면서 "민원을 받았다고 모든 현장에 방문할 순 없다"고 말했다. '인테리어 도면에 주거라고 쓰여 있지 않은가'란 질문에도 "다 만들어진 다음에야 확인할 수 있다"며 이상한 변명을 늘어놨다.

A씨가 분양받은 오피스에 '구멍 난 천장'을 막을 수 있는 단계는 숱했다. 애초부터 오피스텔로의 리모델링을 막을 '지구단위계획'이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시행사는 '인테리어 동의서'를 언급했지만 예치금도 마련해놓지 않았다. '오피스텔로 리모델링한다'는 민원이 들어갔어도 주무관청은 강 건너 불구경만 했다.

여기서 문제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신축 오피스텔'인 줄로만 알고 입주계약을 체결할 것이다. 불법개조 사실을 나중에 알아채면 애먼 피해를 입을 게 뻔하다. A씨의 오피스에 난 구멍이 단순한 구멍이 아니란 거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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